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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카린 지에벨 지음, 이승재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요즘 TV에서 방영되는 일부의 예능프로그램을 보면, 사전에 가상의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결과의 향방을 그려가는 심리추리게임의 시나리오로 시청자들을 짜릿하면서도 아찔한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물론 프로그램을 흥미롭게 이끌어 가기 위해 어느 정도의 사전조율과 의도된 기획의 방향으로 설정을 했겠지만, 막상 그 진행과정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새 캐릭터에 몰입되어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러한 계획된 각본의 장치를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던 짜릿한 스릴을 느끼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심리추리의 요소는 이전에 뮤지컬이나 영화에서 많이 간혹 다루어지긴 했으나 이제는 그 영역이 점차 확대되어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듯하다. 그러한 시각에서 이 작품은 인간이 지닌 욕망과 같은 감정의 심리상태에 초점을 맞추어 그 흐름의 과정을 흥미롭게 전개한 심리추리스릴러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작가와 관련하여 많은 작품들이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관계로 일부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다소 낯설 것이라 생각되지만, 이 소설의 저자 카린 지에벨은 현재 프랑스 심리스릴러의 아이콘으로 여겨질 만큼 데뷔 시기부터 지금까지 다수의 추리작품상을 수상해왔고, 프랑스 자국의 문단과 독자들로부터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소설은 한 여성이 과거 한때 자신이 겪게 된 뜻하지 않은 일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우발적인 행동으로 저지르게 되는 과정을 치밀하게 엮어내었는데, 전개되는 내용에서 연약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심리적인 문제를 부각시킴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추리스릴러물의 다각적인 관점의 재미를 제공해 주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작품 속 이야기는 강력반 형사반장으로 일하고 있는 브누와 경감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자신이 어느 외진 곳 지하실 철장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지난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회상하면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된 일을 저지른 적이 없으며 단지 늦은 저녁에 누군가와 잠깐 동안 술을 마신 희미한 기억 밖에 없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매력적인 얼굴을 지닌 리디아가 그의 눈앞에 나타난다. 그녀는 그에게 이곳에 가두어 둘 밖에 없었던 이유와 함께, 앞으로 묻는 질문에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살아서 밖을 나갈 수 없음을 경고하게 된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엉뚱한 상황에 놓여 당황스러움을 느낀 그는, 하루 전날 퇴근길에서 고장 난 차를 손봐달라는 여성이 바로 그녀였으며, 차를 고친 뒤에 차를 한잔 대접하겠다는 그녀의 제의를 받고 시간을 보내다가 지금의 상황에 처해있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한편 리디아는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동생을 죽인 범인이 다름 아닌 브누와 경감이라는 사실을 전해 듣고, 복수에 대한 일념에 사로잡혀 지난 몇 개월 동안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사해왔으며, 마침내 그를 유혹하고 사건의 전말을 밝히려는 나름대로의 계획에 착수하여 현재의 상황을 만드는데 성공하게 된다. 브누와 경감은 그녀와의 대화에서 자신은 결코 그녀의 동생을 죽인 사실이 없으며 잘못된 정보와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설득해 나가지만, 반면에 리디아는 그가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책임을 회피한다고 간주하고 점점 폭력을 동원한 잔혹한 고문을 시행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후 작품 속 이야기는 사건 진실의 향방을 놓고 두 인물 간의 치열한 심리전이 팽팽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미궁의 국면으로 치닫게 된다.
이 소설은 지난날의 아픈 상처를 잊지 못하고 왜곡된 인식으로 비이성적인 방법을 통해 현실을 극복하려는 한 여성과, 한때의 일탈적인 행위가 원인이 되어 생각지 못한 극한 상황에 빠지게 된 남성이,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우연히 맞닥트리면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기대 이상의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독자의 입장에서 이 작품이 조금은 예외적이고 이채롭게 생각되는 것은, 기존의 추리소설이 대개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범인을 추적해가는 통상의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면, 이 소설은 사건에 간접적으로 연루된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그러한 사건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적 배경에 초점을 맞추어 주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과, 사건이 전개되고 압축되어가는 과정에서 전해져 오는 스릴이나 반전의 요소보다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광기나 공포의 상황을 리얼하게 묘사함으로써 파급되는 상황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르를 선호하는 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여타의 추리물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색다르면서도 신선한 스릴의 묘미를 체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 작품은 본격적인 추리물과는 사뭇 다른 전개의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 이를 기대했던 독자들이라면 다소 만족감이 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이 소설은 추리스릴러물에 관해 흥미를 느끼는 시각적 관점의 차이로 인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것으로 여겨진다. 매년 많은 추리스릴러물이 새롭게 발표되고 있지만, 독자의 눈길을 이끌 만큼의 주목할 만한 작품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특이할 것이 없이 매번 반복적인 추리물에 따분한 건조함을 느끼고 있는 독자들이 있다면, 이 작품에 한번 관심을 가지고 일독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