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
백지연 지음 / 북폴리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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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언젠가 모 방송국에서 조기 유학을 위해 아이와 부인을 외국에 보내고 그 뒷바라지를 위해 국내에서 악착같이 돈을 벌어 송금해야 하는 고독하고 힘든 삶을 견디어내야 했던 한 남자의 안타까운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있다. 물론 그러한 삶의 선택과 판단은 자신 스스로에 의해 결정된 일이기에 그 감당에 대한 결과 역시 자신의 몫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돌이켜보면 다큐 속 주인공이었던 그 남성도 결혼하기 전까지는 그러한 가정생활이 예상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지금 그에게 주어진 삶은 자신의 모든 개인적인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아이의 교육비를 벌어야 하는 일종의 기계와 같은 소모품으로 전락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본다. 개인적으로 그 영상물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몰입되어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던 나는, 이전에는 깊이 생각해보거나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인생에 관하여, 일종의 허무랄까 같은 그리 달갑지 않은 감정의 회오리에 갇혀 잠시 고민의 시간을 가졌던 적이 있었더랬다. 그래서 만약 그가 그와 같은 삶을 선택하지 않고 다른 인생을 살았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제3자로서의 개인적인 아쉬움과, 만약 내가 그 상황에 놓여있었더라면 나는 능히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관조적인 자세로 향후 펼쳐질 내 삶의 모습을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듯하다. 같은 맥락에서 이 소설은 여섯 명의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녀들이 겪어왔던 삶을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의 차이에서 오는 정체성 문제를 흥미롭게 펼쳐내고 있어 독자의 입장에서 눈길을 끌면서도 이채롭게 다가온다.


소설 속 이야기는 사회적 유명인사들과 인터뷰를 하는 인터뷰어로 나름대로 성공을 이룬 커리어 우먼이면서도 독신여성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민수가 자신의 동창생 수경으로부터 생각지 못한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사실 그녀에게는 학창시절 체육시간에 물구나무서기 실기시험 때, 우연한 해프닝으로 맺어진 여섯 명의 단짝 같은 친구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졸업 후에 뜻하지 않은 사소한 일이 오해로 확대가 되어 돈독한 우정이 결국 소원해지면서 지금까지 연락을 하지 않는 불편한 관계로 남아 있다. 수경은 이들 중에 한 친구로, 그녀는 민수를 만나 잠깐의 어색함을 뒤로하고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만나지 못한 아쉬움의 회포를 풀어 가는 도중에, 자신은 현재 재벌가의 며느리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지만, 최근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으며, 또한 자신은 마치 전업주부와 다르지 않은 따분한 삶에 깊은 회의감이 든다면서 나름대로의 개인적인 고민과 함께, 같은 친구였던 하정이가 죽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된다. 민수는 수경이 안고 있는 개인적 고충에 위로와 격려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 언제나 밝고 명랑했던 하정이가 죽었다는 사실에 대해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고 사회생활에 쫓긴다는 핑계로 그동안 한 번도 연락을 하지 못했다는 자신을 원망한다. 그리고 수경에게서 듣게 된 하정이의 죽음을 계기로, 일일이 친구들을 만나 그동안 서먹서먹해진 관계를 푸는 것과 동시에, 과거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현재의 삶으로 정착하기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해 마음으로만 담아 두었던 애틋한 사연을 나누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 책이 소개되었을 때 저자가 한때 뉴스 앵커였으며 인터뷰어로서 활동을 익히 보아온지라 자신의 소회를 담은 에세이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뜻밖에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고 조금은 의외적인 느낌이 없지 않았고 아울러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소설의 내용을 읽으면서 그러한 생각이 선입관에 불과했다는 것임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작품은 인터뷰어로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커리어를 가진 주인공 민수를 중심으로, 그녀가 학창시절 끈끈한 우정을 다져왔던 친구들과 한때의 해프닝으로 관계가 멀어져 있었던 그때의 친구들을 다시 만나 저마다 살아온 인생의 이야기를 실타래 풀어가듯 전개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의미 있는 내용을 담았다. 소설 속에 나오는 여섯 명의 친구들은 겉으로는 별 문제가 없는 만족할만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녀들은 나름대로의 심각한 개인적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누구나의 인생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를 집중인터뷰 하는 것 같은 형식을 취한 이 소설은, 지금 우리의 삶과 과거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해왔던 삶의 모습과 과연 얼마만큼 달라져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지못해 자신이 선택한 삶이기에 어쩔 수 없이 비굴적임에도 이를 감수하고 희생하며 현재의 삶을 계속해서 유지하며 살아가야만 하는지를 작품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되묻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전해준다. 물론 작품 중간 중간에 다소 감성적인 면에 치우쳐 공감하기 힘든 부분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물구나무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을 통해 때로는 자신 혹은 타인의 삶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려는 변화의 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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