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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의 황제
김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평점 :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고 개중에는 우리의 관심과 주목을 이끌게 만드는 다양한 이슈들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특정한 사건의 경우에는 한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 미주알고주알 하는 식의 저마다 자기 생각과 의견을 표출하게 되고, 때로는 사건의 진위를 두고 난데없는 치열한 토론의 장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몇몇의 관련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대중들의 눈과 귀에서 쉽게 사라지게 되며, 당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로만 기억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보니 나중에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내용이 사실에서 사실로 끝나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엉뚱한 방향으로 왜곡되어 부풀려지기도 하거나 축소되면서 사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로 결론지어져 마치 그것이 사실인양 인식되는 일들도 더러 생기곤 한다. 그래서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하나의 사건에서 파생된 다양한 픽션의 결과가 또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로 재편집되는 어이없는 진풍경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소설은 누구에게는 관심의 초점이 되었지만 어느 순간 기억 속에서 아스라이 멀어지거나, 또 다른 이에게는 애초 관심 밖이었던 어떤 사실에 대하여 소설 속의 허구를 빌려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어 작품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생경스럽고도 이채로움을 주는 작품으로 생각된다.
책 속에는 각기 다른 개별적인 소재를 토대로 사실 같으면서도 사실 같지 않은 9편의 단편적인 소설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 속 각 단편의 내용을 읽다보면 독자의 입장에서 줄거리의 흐름이 다소 생뚱맞기도 하고 혹은 독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에 황당하면서도 파격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치밀한 서사를 바탕으로 색다른 픽션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문학의 재미를 더한다. 표지의 제목에 나오는 라면의 황제에 관한 이야기는 27년 동안 라면을 먹었다는 이유로 라면의 달인으로 불리는 주인공을 내세워, 훗날 라면이 사람들에게 건강에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불량식품으로 인식되어지면서 벌어지는 우스운 촌극의 과정을 다루고 있으며, 두 번째 편에 등장하는 교육의 탄생이라는 단편의 경우에는 일곱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일본 동경대의 수학입시문제를 풀어낸 천재소년에 관한 내용을 시작으로, 그가 미국의 나사에 초빙되어 연구소에서 일하는 동안에 러시아의 과학자와 만나 우연히 알게 된 새로운 이론이 결국에는 국내에서 국민교육헌장을 만드는 단초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해프닝을 논리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 외에도 경이로운 도시와 지상 최대의 쇼에서는 지구에 외계인이 등장하면서 예기치 못한 사회구조의 혼란을 가져오는 SF의 공상과학적인 이야기가 펼쳐져 있지만 줄거리의 내용 이면에는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의 실상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파헤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보면 이 소설은 독자들로 하여금 한층 확장된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게 만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가 흔히 저지르기 쉬운 인식의 부조화를 일깨워 주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하지 않나 싶다.
살아가다보면 현실 속의 내용이지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있고 비현실 속의 상황임에도 실제로 존재하는 믿어지는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이 소설의 이야기는 다양한 소재를 통해 픽션이지만 픽션 같지 않은 그 나름대로 개성적이면서도 윤곽이 뚜렷한 이야기를 담아 신선하면서도 새로운 문학의 풍미를 독자들에게 제공해주고 있다. 사실 각 단편의 내용은 패러디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풍자의 뉘앙스가 느껴지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개연성이 무시된 허구의 분위기가 너무 드러나 있는 관계로 작품 속 내용에 몰입이 쉽지 않아서 다소 거부감이 없진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의 사실에서도 이야기의 흐름을 어떻게 전개하는지에 따라 여러 갈래로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으며, 전후 맥락을 고려한 논리적 구조의 서술이 가미된다면 그것이 설사 픽션으로 일관된 내용일지라도 때로 사실로 둔갑하여 인식될 수도 있다는 것과, 또 한 가지 작품을 통해서 흥미롭게 느껴졌던 것은 우연적인 이야기임에도 그것이 마치 필연적인 것으로 혹은 분명 필연적인 것처럼 생각되는 일들도 결과적으로는 우연의 일치에 의한 것처럼 타자에게 인식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름대로 의식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소설은 줄거리 곳곳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러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조합된 새롭고도 미스터리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차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기존의 소설에서 좀처럼 체감할 수 없었던 독특하면서도 흥미진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각 편마다 색깔을 달리하며 진실과 의문을 오가는 이 소설이 주는 신선한 매력에 잠시 눈길을 두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