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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삼킨 소녀 ㅣ 스토리콜렉터 28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북로드 / 2015년 1월
평점 :
일본과 영미 국가의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들이 국내에서 한창 인기를 구가하고 있을 즈음에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이라는 작품으로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며 화제가 되었던 독일 장르소설의 대표적인 대중작가로 알려진 넬레 노이하우스가 새로운 신작으로 다시 독자들을 찾아왔다. 사실 그동안 작가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냉철한 카리스마 수사반장 보덴슈타인과 감성적인 면이 많은 형사 피아가 콤비를 이루어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던 타우누스 시리즈를 통해서였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 다른 무엇보다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기존의 미스터리스릴러와 같은 범죄의 내용을 다루고 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기존의 장르와는 사뭇 다른, 어린 시절 부모의 죽음으로 인해 다른 가정으로 입양되어 어른으로 거듭나기까지의 한 소녀가 겪어야만 했던 아찔하면서도 충격적인 인생의 한 단면을 흥미롭게 펼쳐낸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볼 때,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롤링이 자신의 작품에 다양한 변화를 주기 위해 판타지의 내용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르로의 변화시도를 꾀하면서 많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느낌을 전해 주었던 것처럼, 이번 그녀의 작품 역시도 그런 관점에서 이전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색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그녀의 작품을 접해본 독자들이 있다면 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로서 그녀의 새로운 면모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유지해왔던 장르의 유형에서 체감할 수 없었던, 또 다른 매력적인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작품 속 배경은 미국 네브라스카 주에 있는 페어필드라는 어느 작은 마을이다. 이곳은 여타의 마을과는 다르게 여전히 오랜 보수적 전통의 색채가 짙게 묻어나 있는 곳으로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 중심인물이 되는 새리든은 사춘기의 시기에 한창 접어든 15살의 예쁜 미모와 영민한 두뇌, 그리고 한편으로 당돌하면서도 자유로움을 갈구하는 한마디로 겁이 없는 반항아적인 기질이 있는 소녀다. 그녀는 마을의 대지주이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랜트가의 외동딸이라는 남부럽지 않은 집안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태어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를 잃고 우여곡절 끝에 이곳 집안으로 입양된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현재 가장 고민이 되고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정숙하고 바른 생활만을 강조하며 요조숙녀가 되기를 강요하는 엄마와의 불편한 관계다. 그런 이유로 새리든의 가슴속에는 하루빨리 어른이 되어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어느 날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이 방과 후에 자신의 친구들과 비밀리에 그들만의 아지트에서 재미있게 놀다가 경찰에 발각되는데, 그 과정에서 몰래 도망가던 도중에 경찰에게 상해를 입혀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버지가 손을 써서 손쉽게 풀려나올 수는 있었지만 그 일을 계기로 한 번도 손찌검을 하지 않았던 아버지에게 뺨을 맞으면서 전에 없던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엄마로부터는 이전보다도 더 심한 학대와 수모를 당하게 된다. 이후 그녀는 지금은 이용하지 않는 집안의 별장에서 울적한 마음에 자신을 낳은 부모에 대해 원망 섞인 푸념을 하다가 우연하게 오래된 누군가의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안에서 그동안 자신이 모르고 있었던 자신의 친어머니에 관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사춘기에 접어든 한 소녀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격정적인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펼쳐낸 이 작품은 포괄적인 측면에서 성장소설처럼 보이지만, 작품이 담고 있는 내용에는 미스터리적이면서도 긴장감이 넘치는 장르의 요소가 곁들여져 있어서 어떤 면에서 보면 스릴러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딸을 마음속으로 사랑하면서도 겉으로 살갑게 표현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무관심과, 입양되었다는 이유로 갖은 모욕과 학대를 일삼는 엄마와의 관계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그 어떤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주인공 세리든이 어린 나이에 낮선 남자와 만나 엉뚱한 일탈을 일삼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희망을 잃지 않고 주위의 혹독한 편견에 맞서 담대히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시사해주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후기를 통해 주인공 셰리든 그랜트는 마음속에 아주 오래전부터 살고 있던 인물이라고 말하면서, 미국 중서부를 여행하던 중에 네브라스카의 광활한 땅과 거기 사는 사람들의 협소함에 매혹되어,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이 작품을 집필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그럴까 몰라도 탄탄한 이야기 진행에 따른 치밀한 구성이 작품 전반에 드러나 있어 상당한 심혈을 기울여 왔음을 짐작케 한다. 물론 작품의 곳곳에 갈등이 드러나는 부분에서 개연성이 떨어지는 작위적인 느낌이 없진 않지만, 기존의 다른 성장소설에 비해 독자들에게 다각적인 감상의 묘미를 제공해 주는 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이지 않나 싶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손에 한번 쥐면 쉽게 손에서 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가독성을 자랑하는 이 작품에 한번 주목해 보았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