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사랑해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유혜자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좋은 말도 반복해서 여러 번 들으면 나중에는 기분이 좋아지기보다는 짜증나거나 지겨운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해도 과하게 되면 애초 좋았던 느낌의 상태가 시간이 지날수록 덜하게 마련이고 종국에는 하찮거나 차라리 이전에 부족함이 있었던 상태를 더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격언 중에는 차고 넘치면 오히려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감정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관심이 있으며 흠모하는 이성으로부터 가슴이 따뜻하고 달콤한 사랑을 나누고 싶은 것이 누구나 마음속에 소원하고 바라는 일이 될 것이지만, 혹시라도 그러한 사랑의 행위가 행여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배려의 정도를 넘어 과도하고 집요한 집착의 형태로 변모해간다면, 상대가 아무리 사랑하는 관계에 놓여있을지라도 이를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너그러이 받아들이게 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소설은 두 남녀를 주인공으로 하여 사랑에서 시작하여 행복한 순간을 넘어 집착의 과정으로 이르게 되는 내용을 사실적이면서도 흥미롭게 전개하고 있어서 작품을 읽는 이로 하여금 주목을 이끌게 만든다. 작품 소개에 따르면 이 소설은 작가가 법원의 통신원으로 17년 동안 근무하면서 실제의 사건을 토대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어보면 느낄 수 있겠지만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에는 남녀 간의 아기자기한 로맨스 흐름의 이면에 사랑이 집착으로 변화되어 가는 연인관계의 미묘한 부분과,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생각지 못한 의외의 반전이 펼쳐져 있어서 매력적이면서도 한편으로 색다른 로맨스 스릴러의 세계를 체감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 속 주인공 유디트는 조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조명가게를 인수받아 지금까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운영해오며 나름대로 자신만의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는 30대 중반에 접어든 독신 여성이다. 그녀의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녀는 남자와 만나 사랑에 빠져보고 싶다거나 혹은 결혼에 관하여 깊은 고민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며 현재 생활에 충분한 만족을 구가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치즈를 사기 위해 슈퍼마켓에 들렀다가 처음 보는 남자로부터 뒤꿈치를 밟히는 불쾌한 일을 겪게 된다. 정중한 사과를 받고 별생각 없이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부활절 휴일을 보내고 평상시처럼 가게에 출근하여 하루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하던 도중에 슈퍼마켓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잠깐 접촉이 있었던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 남자는 유디트에게 지난 일에 관해 다시 한 번 사과를 드리기 위해 가게 앞에서 기다렸다면서, 자신은 근처에 있는 건축사무소에서 일을 하며, 앞으로 조명을 사게 되는 일이 있을 때면 꼭 찾아오겠다고 말을 건네며 다소 호감적인 면모를 보인다. 남자에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았던 그녀는 그가 독신으로 혼자 살고 있다는 것과, 슈퍼에서 보았던 첫 인상과는 달리 의외로 순수하고 신사적인 그의 태도에 호기심을 갖게 되면서 그 남자와 가벼운 만남을 시작한다. 이후 남자로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꽃 선물을 받게 되고, 종종 자신을 놀라게 하는 감동적인 이벤트와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깔끔한 매너로 점차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하지만 만남을 지속하면 할수록 그 남자로부터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집착의 느낌을 받게 되자 더 이상의 만남을 지속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서서히 정신적으로 피폐해져간다.


이 소설은 독신여성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유디트가 우연하게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이후 남자의 과도한 사랑의 배려가 결국 집착으로 이어지는 남녀 간에 통상적인 로맨스가 펼쳐져 있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부터는 그러한 분위기에 덧붙여 심리적인 스릴의 요소가 접목됨으로 해서 결과적으로 충격적인 반전의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이채롭다. 특히 작품 속 줄거리에서 두 남녀가 만나 연인이 되어 친밀한 관계를 이루어가는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누가 과연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를 짐작치 못하게 만드는 작가의 치밀한 구성과 서술로 인해, 이 소설이 단순한 로맨스 장르가 아님을 짐작케 한다. 아울러 사랑과 집착 그리고 증오로 표출되는 심리적인 묘사에 있어서도 독자들이 공감을 느끼게 할 만큼 섬세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다가온다는 점도 이 작품이 지니는 특징이자 장점이 아닐까 싶다. 다만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발단에서부터 매끄러운 흐름으로 보이던 서사과정이 결말 부분에 이르러 다소 생략되어 버린 내용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급박하게 끝을 맺고 있어서 독자의 입장에서 당황스러우면서도 허탈함을 지울 수 없다는 점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다. 그래서 사랑에서 우러나온 배려의 행동일지라도 타인이 그렇게 느끼지 못해 부담스러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상대를 향한 일종의 구속이고 집착이 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사랑의 신뢰적 관계를 무너트리는 직접적인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이 작품은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사랑과 집착의 경계에 갈등하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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