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뜬금없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만약에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행로의 과정을 점수나 등급으로 나타내기를 묻는다면 당신은 과연 스스로에게 얼마만큼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그동안 성실한 자세와 근면한 정신으로 다른 이들로부터 모범이 되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왔고 아울러 법 앞에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자부한다면 넉넉한 점수를 줄 것이고,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인생으로 살아왔다면 그에 훨씬 못 미치는 박한 점수를 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자신의 인생을 평가함에 있어 그 평가의 기준을 딱히 점수로 구분하여 확정할 수도 없는 일이고, 객관화하여 포괄시키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기에 어찌 보면 무의미한 일이 될 수도 있겠으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를 통해 지나온 자신의 과거를 곰곰이 되새겨 보면서 향후 보다 바람직한 자신의 삶을 위해 반성과 성찰의 계기로 삼을 수는 있을 듯하다. 표지의 제목이 마치 대학교의 성적표의 등급을 암시하는 것 같은 이 작품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당시 우리 정치사회의 문제점을 부각시켜 사회개혁을 부르짖었던 운동권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지성인으로서 사회를 향한 그들의 열정과 이상,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방황과 좌절을 겪으며 훗날 평범한 소시민으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흥미롭게 그려낸 일종의 자전적 회고록 방식의 소설이다. 이 작품이 이채로운 것은 단순히 작중 인물들의 개인사에 국한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지난 우리 현대정치사의 전반적인 부분을 구체적으로 둘러볼 수 있어서 독자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품 속에 전개되는 줄거리는 지금은 가정을 이루고 다섯 살 딸아이를 둔 한 집의 가장이 되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 박태의가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하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부터 시작한다. 미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막연한 생각으로 설레는 신입대학생활을 하던 그는 학과 선배를 따라 철학연구학회라는 동아리에서 가입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유한 집안배경을 숨기고 자유로운 삶과 페미니스트에 가까운 성격을 지니고 있는 미주, 공대출신이면서도 평상시의 겉모습과는 달리 운동권 투사의 이미지가 풍기는 진우, 시인의 기질을 지녔으면서도 다소 엉뚱한 면을 보이는 현승과 같은 학우선배나 동기를 만나 함께 대학생활을 보낸다. 이후 그는 선배들의 영향으로 정치적 성향을 띤 운동권학생으로 점차 거듭나게 되는데, 대우자동차 매각을 둘러싼 시위를 비롯해 노사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는 이곳저곳의 현장을 돌며 투쟁의 대열에 함께 동참하게 되고, 방학기간동안에는 농촌을 찾아 농활의 경험을 갖기도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는 대우그룹의 해체와 관련하여 김우중 회장의 집을 점거하는 일에 가담하면서, 그 일이 있은 직후 학교 선배가 경찰에 체포되었던 것처럼 자신도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에 형사에 의해 대공 분실로 끌려가 취조를 받게 되는 암담한 현실에 처하게 된다. 당시 동조했던 동료의 이름을 알려주면 단순한 훈방조치로 풀어준다는 조건으로 그는 진우의 이름을 알려주었고,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이유도 자신이 신뢰하던 선배가 밀고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되면서, 친구에 대한 죄책감과 아울러 선배를 향한 배신감이 공존하는 다사다난한 학창시절 개인의 다양한 체험의 소회가 밀도 있게 그려져 있다.


이 소설은 주인공 태의라는 인물을 통해 운동권으로 활약하던 자신의 대학시절의 경험담이 구체적으로 펼쳐져 있지만, 그 이면에 대우자동차의 해외매각, 월드컵, 이라크 파병과 같은 현실정치사에 맞물린 여러 사건이 중첩되어 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이제는 점점 잊혀져가는 우리 과거사의 다양한 부분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저자는 이 작품에 관하여 이 소설 속 이야기는 수십 명의 사람에 의해 쓰였다면서, 주인공 태의를 주목해보면 그와 친분관계에 있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한 몸에 녹아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한 시대의 일지를 기록하고 싶었고, 하나의 이야기에 대한민국을 담아보고 싶었다는 개인적인 피력과 함께, 운동권 조직을 해부하다 보면 대한민국의 민얼굴을 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작품을 대하는 독자들마다 체감되는 부분은 각기 다르겠지만, 이 작품을 접한 개인적인 느낌을 말해본다면, 작가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가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특히 책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을 통해 젊은 시기에 지성인이라는 정의에 입각한 순수한 열정에서 우러나온 그들의 진보적인 신념과 이상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퇴색해져가는 소시민의 모습은 한편으로 안타깝고 쓸쓸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만큼 우리의 사회문화가 다소 경직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보면 작품의 제목이 의미하는 디 마이너스의 수치는 바로 우리의 자화상을 평가해놓은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따라서 이 작품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보다 성숙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살아가려는 의욕의 매개체로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