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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 - 암을 치유하며 써내려간 용기와 희망의 선언
이브 엔슬러 지음, 정소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평점 :
평상시에는 건강의 소중함을 모르다가 막상 뜻하지 않은 중병을 앓거나 누군가를 통해 건강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마련이다. 건강을 잃는 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그동안 자신이 쌓아올린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며, 그와 더불어 안타까운 것은 죽음에 임박했다는 두려움에 절망과 좌절에 실의에 빠져 있게 될 것이다. 오늘날 의학의 발전에 힘입어 과거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인해 죽음을 맞는 위험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완벽하게 고칠 수 없는 질병이 존재하고 또한 새로운 형태의 병이 등장하기도 한다. 질환으로 인해 자신이 죽음의 문턱에 한걸음 다가서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마련이다. 하나는 그것을 마치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더 이상의 고통을 잊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질병과 마주하여 용기와 의지로 극복하고 새로운 삶의 전환기로 맞이하는 것이다. 그래서 심각한 질병에 걸린 사람들 중에는 오랜 치료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삶을 마감하는 경우가 있지만, 반대로 살아갈 수 희망을 토대로 마음을 긍정적으로 가지며 결코 포기하지 않는 신념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자신의 건강을 되찾고 이전과는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제법 많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내용은 저자가 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고 7개월간의 처절한 죽음과의 사투에서 겪게 된 고통의 과정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담아냈는데, 그 이면에 지금 이 시간에도 외부로부터의 갖은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야하는 아프리카 콩고 여성들의 현실을 결부시켜 공동체 방식의 치유라는 색다른 이야기를 더하고 있어 눈길을 이끈다. 저자는 암으로 인해 자신의 장기 일부 훼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병원에서 침울하고 암담한 입원생활을 해야 했는데, 그 치료과정에서 과거 자신이 가정에서의 견디기 힘든 성폭력을 경험했으며, 어머니의 자유방임적인 양육을 받으면서 이후 젊은 시절 마약과 방탕하고 문란한 생활과 그리고 이후 전 세계를 돌며 가난하고 힘없는 여성들을 위해 헌신적인 삶의 여정을 보낸 다양한 이야기들과 연관하여, 결국 자신의 몸과 세상의 몸은 이질적인 것이 아님을 역설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확대된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책의 내용은 그녀가 암 판정을 받고 병을 치료하기까지의 생생한 과정들이 추보적인 방식으로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다른 무엇보다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의미 있게 여겨지는 것은, 위기의 순간이 다가올 때마다 자신이 오래전 겪어야만 했던 뜻하지 않은 여러 사건들을 중첩시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압에 억눌린 여성들의 실상을 고발하고 있는 것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인 생명력으로 결코 무너지지 않는 자생의 힘으로 희망적인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어서 독자의 입장에서 인상 깊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저자 이브 앤슬러는 여성의 내면에 간직되어 있는 은밀한 부분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은 성에 대한 고백서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발표함으로써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극작가이자 사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을 보다 가까이 들여다보고 가슴 가득 느껴보기 위해서는 그녀가 펴낸 저서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참고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을 가진 여성 200여명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여성의 몸 가운데서도 가장 억압받고 금기시 되어왔던 여성 성기를 둘러싼 그녀들의 고민과 남성 폭력의 기억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성 보고서이다. 위트가 넘치면서도 신랄하게 여성들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이 책은 여성성의 본질과 여성의 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하고자하는데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녀의 저서에서 보듯 이 책의 역시도 겉으로는 암에 걸린 환자가 이를 극복하는 치료의 내용이 언급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세상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몸체 덩어리에 구멍을 내고 파괴하는 인간의 욕망에 의한 탐욕스런 부조리의 일면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여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기도 하며, 이러한 예로 강간과 폭력, 전쟁으로 점철된 아프리카 콩고의 여성들의 삶이 피력되어 있어 그 실체를 독자들에게 알리는데 주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녀는 이 책의 내용에서 자신이 의학적인 도움으로 암을 극복해 낼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 폭력과 억압으로 굴종된 삶을 살아가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 콩고 여성들의 용기와 도전과도 다르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 자신의 치부를 솔직담백하게 밝히면서도 암과의 투병을 통해 세상은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야함을 강조한 이 책에서 많은 독자들이 색다른 감흥의 시간을 한번 가져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