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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줄 몰랐어
모르강 스포르테스 지음, 임호경 옮김 / 시드페이퍼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범죄란 사전적 의미로 보면 국가가 보호하는 사회적 이익내지는 가치를 침해하거나 위협하는 반사회적이고 반규범적인 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법규 규정에 따라 사법부의 결정으로 그에 상응하는 형벌의 조치가 내려진다. 범죄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의 범죄의 양상을 보면 전에 없던 외국인 범죄가 날로 증가하는 추세에 있고, 아울러 그 방법도 과거와 달리 점점 교묘해지고 묻지마 살인과 같은 경우처럼 대범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며칠 전 외신보도에 따르면 프랑스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가 발생하여 사회의 큰 충격을 주었으며, 향후 이에 대한 문제의 대책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프랑스에는 대략 60만에 가까운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특히 지난해 7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이 이유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올해 들어서 유대인 증오에 기인한 범죄가 많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러한 부분과 관련하여 이 작품의 내용은 2006년 프랑스 사회를 온통 들끓게 만들었던, 파리 남쪽 교외의 철로 변에서 참혹하게 고문되어 살해당한 유대인 납치사건의 그 실상의 과정을 세부적으로 다루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사건은 애초 인질의 몸값을 요구한 단순 납치강도 사건으로 생각되었지만,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인종, 종교적인 동기도 어느 정도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사건이 주목되는 것은 단지 일반적인 사건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칫 사회를 분열시키는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이 소설을 한번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작품 속 사건의 주요인물은 야세프라는 20대 중반의 청년으로, 그는 부모를 따라 아프리카 코트디브아르에서 프랑스로 건너와 정착한 이주민 가정의 아랍계 프랑스인이다. 하지만 프랑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범죄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데, 처음에는 일반인들 상대로 자잘한 강도와 폭행, 자동차 절도와 같은 범행을 일삼으면서 체포되어 2년간의 교도소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만기 출소 후에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 정상적인 생활을 위해 철도청에 지원했다가 과거 범죄사실이 문제가 되어 거부를 당하게 되면서 비정규직의 저임금 노동자로서의 비루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가 원했던 인생은 돈을 많이 벌어 훗날 자신의 조국인 코트디브와르에서 부유한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현재의 상태로는 그와 같은 희망의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돈 많은 유대인을 납치하여 엄청난 몸값을 받아낼 수 있는 일을 계획하는 것이었고, 마침내 자신의 친구들을 회유 협박하여 그가 구상해 놓은 범죄에 가담하도록 만든 뒤에 이를 직접 실행에 옮기는데 착수한다. 한편 외향적이고 과시적인 성격을 지닌 십대 소녀인 젤다는 휴대폰 대리점에서 근무하던 순진한 청년 엘리를 유혹해서 데려오면 큰 돈을 주겠다는 야세프의 약속에 따라 그를 끌어들이게 되고, 이후 야세프는 그의 부모에게 비밀스럽게 접근하여 엄청난 돈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몸값을 제시받은 그의 부모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찰에 신고하게 되지만, 의외로 사건은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일련의 범죄내용은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실제 납치사건을 토대로 했으며, 당시 사건개요에 맞게 시간과 장소, 범죄가담자를 중심으로 추적하는 방식의 르포형태를 취하고 있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범행 사건당시 목격자가 일부 있기는 했으나, 자정이 넘은 캄캄한 밤이어서 자동차로 납치를 하던 가해자의 얼굴을 확인하는데 시야확보가 어려웠고, 피해자를 납치, 감금하는 과정에서 증거를 남기지 않는 치밀함을 보임에 따라 경찰의 입장에서는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얼핏 생각하면 돈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인질납치 행각을 벌이는 단순한 범행처럼 여겨지지만, 그 내용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인종이나 종교의 문제가 관여된 외국 이주민 노동자들의 실상과, 사각지대에 놓인 인권유린의 현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사회문제로까지 확대된다는 점에서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지 않나 싶다. 더불어 범인을 색출하는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피해자의 안위가 무시되는 공권력의 부당성을 간접적으로나마 비판하고 있기도 해서 의외로 의미가 있는 작품으로 생각된다. 소설의 내용과 관련하여 최근 우리나라에도 외국인들의 이주가 예전에 비해 많아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러한 사건의 전말은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만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이 소설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사건을 재구성하여 빈곤, 차별 그리고 인간의 탐욕에 관한 다양한 소재들을 흥미로운 흐름으로 펼쳐져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여러 사회문제의 근간을 다시금 새로이 인식해보는 계기로 삼아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