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과거에 비해 고도의 경제성장에 힘입어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우리의 사회가 전반적으로 어느 정도 풍요로워진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얻은 것이 있으면 그만큼 잃은 것도 있게 마련이어서, 우리 고유의 정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우리라는 개념의 울타리 문화가 근래 들어 이기적 개인주의가 팽배해짐에 따라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그런 이유로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타인의 아픔이나 고통을 가까이 보고 있으면서도 마치 먼 산 바라보듯 하는 경향이 날로 확대되어 가는 듯해서 마음 한편으로 안타깝게 여겨진다. 물론 무엇이든 넘칠 만큼 과도한 것은 문제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서로가 따뜻한 정을 나누고 베풀려하는 인식 자체가 날이 갈수록 희미해진다면, 향후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할 세상은 점점 삭막하고 건조해진 환경 속에 놓여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스러움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소설은 정확히 그 시대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전개되는 줄거리의 양상으로 볼 때, 한창 산업화가 진행되었던 1970년대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어느 도시 마을의 소박하고 고즈넉한 풍경에 감춰진 고단하고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사실적이고도 인상적으로 그려냄과 동시에, 작품 전반에 상실의 아픔과 관련한 우리의 지나온 시대를 관통하는 질곡의 역사에 한 단면을 날카롭게 파헤쳐, 결코 쉽게 넘겨버리기 힘든 애잔함의 극치를 독자들은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은 산 정상 위에 세 개의 바위가 솟아 있다는 삼악산 밑으로 도로를 따라 집들이 지어져, 그 형상을 위에서 보면 한 마리의 애벌레처럼 보인다고 해서 불리는 삼벌레 고개마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너무 오래되어 지금은 이용되지 않는 마을의 우물가에 집을 소유하고 있는 순분의 집에는, 영과 원이라는 자매를 둔 새댁이 세를 들어 살고 있다. 그리고 작품 속 이야기의 주인공인 되는 순분의 둘째 아들 은철이와 원이는 이제 7살의 어린아이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매일 매일 동네 사람들의 이름을 알아내거나 비밀을 조사하는 스파이놀이에 심취하며 즐거운 하루를 보내게 된다. 주인집 여자 순분은 동네에서 계주모임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 관계로 그 집에는 언제나 이웃부녀자들이 모이곤 했는데, 이들은 그 자리에서 간밤에 일어났던 동네의 이런 저런 소식을 전하거나 혹은 일상생활에서 겪는 일들에 관해 수다를 늘어놓는 만남의 장을 갖는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동네에 생각지 못한 불운한 일이 연이어진다. 마을의 터줏대감이었던 뚜벅이 할배가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게 되고 순분네의 둘째아들 은철이는 철없는 형의 잘못으로 다리를 심하게 다쳐 정상으로 되돌아오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는다. 게다가 그해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접어들면서 원이의 아버지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게 공안형사로부터 체포되어 끝내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불행한 일을 당한 것도 모자라, 그의 아내 새댁이 남편의 부재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정신이상의 문제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삼악산 기슭 주변 삼벌레 마을에서 펼쳐지는 한가로운 일상생활의 부분을 생동감 있으면서도 감각적인 흐름으로 흥미롭게 담아낸 것이 도드라져 보인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이 곧 타인의 형상이 아닌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과도 같은 동질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소설 속에는 오늘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층의 다양한 생활 모습을 시종일관 아이들의 시선으로 따라가며 비교적 객관화 된 평범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그들만의 일상이 다채롭게 그려져 있지만, 그 이면에 겉으로 드러내 보일 수 없는 고통의 아픔을 스스로 감내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쓸쓸함과 암울하고 어두운 그늘이 은연 중 묻어나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이 작품을 읽으면서 타인에 대한 아픔을 어떻게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하는 고민을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부여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내용에 있어서 줄거리 흐름의 맥락이 다분히 암묵적이고 모호한 부분도 없지 않아서 어떤 면에서 보면 다소 몰입에 방해가 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작가는 작품의 말미에 줄거리 내용과 연관해서 그들의 고통은 물론이고 내 몸에서 나온 그 어린 고통조차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아마도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의 내용을 통해 삼벌레 마을 사람들이 차마 떼어낼 수 없는 숙명적으로 짊어져야 하는 고통의 무게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게 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싶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을 통해 혹시 모를 상실에서 오는 아픔의 과정을 잠시나마 함께 공감해보면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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