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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이야기꾼들
전건우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평점 :
여타의 독자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장르소설을 선호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르의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를테면 미래와 관련한 디스토피아적인 내용을 다룬 공상과학의 이야기나, 소름이 돋을 만큼 오싹한 공포를 자아내게 하는 호러물의 경우는 어지간해서는 손이 가는 편이 아니어서, 정말 손에 꼽을 만큼 어쩌다가 한번 정도 접하는 것이 고작이다. 물론 그러한 독서의 자세가 편협적인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습관이 되어서 일까 이상하게 그와 같은 장르는 선택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그런 개인적 연유 때문에 의외로 좋은 작품임에도 애매모호한 선입관에 의해 읽지 못하고 놓쳐버린 작품들이 꽤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도 아마 평소와 같았으면 그냥 흘려버릴 가능성이 많았던 편에 속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이 작품을 읽어보는 기회를 얻었고, 애초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그리 크지 않았음에도, 잠깐 동안이나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흥미로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이 소설은 어떻게 보면 공포적인 요소가 짙은 괴기적인 이야기를 담았음에도, 부차적으로 미스터리나 스릴적인 분위기를 복합적으로 느끼게 하는 다양한 감상의 포인트를 제공해 주고 있지 않나 싶다. 특히 작품 속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사실 같으면서도 사실이 아니며 믿고 싶지 않지만 믿겨지게 할 만큼의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은근히 줄거리 속으로 집중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으로 보인다. 따라서 다양한 흥미의 요소를 갖춘 이 작품에 독자들이 한번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작품의 내용은 계곡으로 가족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로 부모를 잃게 된 한 남자아이가, 어느새 성인으로 자라 조금은 특별한 분위기를 풍기는 모 출판사에 취직을 하면서 첫 취재를 떠나게 되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작품 속 주인공이 도착한 첫 취재의 장소는 일반인들이 접근을 꺼리는 어느 낡은 폐허였고, 그곳은 밤의 이야기꾼들이라는 일종의 친목모임 회원들이 1년에 한번 비밀스러운 모임을 갖는 날이기도 했다. 이들 단체가 특이하게 여겨지는 것은, 참가자들 스스로가 경험한 불가사의하면서도 괴기스러운 일들을 서로가 함께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공유하고 바깥에 널리 알리는 것이며, 작품 속 주인공은 그런 일환으로 참가하게 된다. 이윽고 모든 회원들이 모이면서 곧바로 사회자의 주도하에 각 회원들은 순서대로 괴담 같은 신기한 경험담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작품 속 첫 번째 회원의 이야기는 아무런 흔적도 없이 결혼한 남편들이 갑자기 실종되어 버림에 따라 졸지에 과부가 되는 기이한 현상을 소개하고 있어 흥미롭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가 있다는 착각에 빠져 이를 회피하기 위해 마침내는 성형중독에 빠져버리는 한 여인의 기구한 사연을 담았으며, 이어지는 단편에서는 사업에 실패하여 어렵게 마련한 자신의 집을 타인에게 넘겨줘야만 했던 한 남자가, 자신의 집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급기야는 광기적인 행동을 일삼게 되는 애틋하면서도 쇼킹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외에도 주목되는 단편은 웃는 여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내용인데, 가정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학교에서 마저 왕따 취급을 당하게 되는 여학생이, 동물을 학대하는 이상한 취미에 몰두하게 되면서 벌이는 학교괴담에 가까운 내용을 담아 독자의 눈길을 이끈다.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지만, 구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살펴보면 옴니버스 구성으로 이루어진 다섯 편의 각기 다른 내용을 담은 일종의 공포문학 단편집이라고 봐야 할 듯싶다. 그리고 작품의 공통적인 부분에는 두려움이나 오싹함 같은 긴장감과 스릴을 느끼게 하는 공포적인 이야기가 펼쳐져 있는데, 각각의 짧게 전개되어 있는 단편의 내용에는 저마다 신비스러우면서도 괴기하고 또한 흥미로우면서도 이채로운 느낌을 갖게 한다. 더불어서 하나의 이야기에서 전이된 공포의 정도가 또 다른 단편에서 오는 그것에 자연스럽게 추가되는 경향을 보임에 따라, 독자의 입장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 점차 확대되는 특징을 나타낸다. 또 한 가지 주목되는 점은 각 내용에서 펼쳐지는 개인의 사연이나 경험담이 생동감 있게 다가오는데다가 책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강한 흡인력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일부의 이야기에서는 몰입에 방해가 될 만큼의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해서, 행여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될 수 있다는 우려스러움이 있는데, 문제는 그에 따른 영향으로 재미를 반감시키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실로 오랜만에 접해보는 공포소설이었지만, 이야기의 흐름에서 느껴지는 적당한 긴장감의 여운과 함께 마치 사실적인 이야기인 것처럼 착각을 하게 할 만큼 재미있고 인상에 남는 작품으로 기억된다. 인간은 통상 무지의 대상에 대해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실제 하는 것처럼 상상함으로서 말이다. 과잉된 공포의 조성은 우리에게 그다지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즐길 수 있는 정도의 공포는 따분하고 건조한 우리의 일상을 전환시키는 하나의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내재된 공포의 기운을 잠시나마 체감해보는 시간을 한 번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