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성당 이야기
밀로시 우르반 지음, 정보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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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한 도시에서의 펼쳐지는 잔인한 폭력이 연상될 정도로, 어두운 지하세계의 암흑가의 이야기를 다룬 것을 느와르라고 한다면, 중세시대의 성이나 수도원을 중심으로 신비적인 세계의 환상적인 내용과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를 나타내는 것은 로망 느와르 혹은 고딕소설이라고 불린다. 고딕소설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까지 프랑스에서 유입되어 영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려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중세의 오래전에 지어진 고성을 배경으로 음울하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가운데, 드라큘라나 마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고 하면 대개 고딕소설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기에 독자들이 이 작품에 대해 한층 흥미로운 감상을 위해서, 고딕소설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고 읽어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사실 개인적으로 고딕소설로 분류되는 몇몇의 작품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처럼 직접 접해보기는 처음이었는데 여타의 작품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그 느낌은 기억에 오래 남을 만큼 상당히 인상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듯하다. 고딕소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작품 역시도 중세의 대표적인 건축물에 해당하는 고딕성당에 관한 것으로, 그 배경은 체코 프라하에 자리 잡은 6개의 성당과 관련한 미스터리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이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은, 줄거리의 전개가 진행되면 될수록 독자로 하여금 증폭되는 긴장감과 스릴의 재미를 전달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바탕에 매끄럽고 정교한 문체 그리고 치밀한 구성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더불어 작품 줄거리에 은연 중 드러내고 있는, 오늘날 일시적이고 무분별하게 세워지는 현대건축물에 대한 신랄하고 비판적인 시각이 내포되어 있어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런 이유에서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한 번 읽어보기를 권유하고 싶은 작품이다.


작품 속 이야기는 한 때 경찰관이었던 주인공 K가, 중세에 지어진 프라하의 어느 고딕 성당의 종루에서 거꾸로 매달린 채 머리로 거대한 종을 치고 있는 한 남자의 광경을 우연히 목격하고, 그를 극적으로 구출하면서부터 시작한다.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인 것으로 보이는 이러한 잔인한 사건은, 그 후로도 시체의 다리를 고급 호텔의 깃대에 꽂아 놓는다든가, 10대로 보이는 소년의 신체의 복부에 스케이트보드 반쪽이 복부에 박힌 채 발견되는 기이하면서도 끔찍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인다. 사실 K는 사건발생 이전에 살해위협을 받는 한 시민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경찰직을 물러난 과거 경력이 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첫 목격자로 참고인이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경찰서장으로부터 한시적이지만 경찰에 복직하여 사건을 담당하라는 제의를 받고 사건해결에 참여하는 계기를 맞게 된다. 그런데 K는 본인은 잘 의식하지 못하는 남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능력을 한 가지 지니고 있다. 그것은 오래전에 지어진 건축물에 손을 대면 그 시기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회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편 중세의 건축물 중에서 성당에 대단한 애착을 가지고 있지만, 반면에 현대건축물에는 이상할 정도로 악의적인 증오를 품고 있는 그뮌드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귀족출신의 재산가로서 오래전부터 K가 지닌 놀라운 능력을 유심히 지켜봐 오다가, 접근을 목적으로 자신을 경호해 달라는 의외의 제안을 하게 된다. K는 딱히 할 일이 없기도 했지만 중세 시기의 역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를 흔쾌히 승낙하게 되는데, 이후 K는 그를 경호하는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고, 소설의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독자들이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흥미롭게 전개된다.


이 작품은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신비스러우면서도 엄숙하고 기이함이 느껴지는 고딕소설의 전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지만, 이에 더하여 범인의 흔적을 알 수 없는 연쇄적인 미스터리사건과 베일에 가려진 음모적인 내용을 조화롭게 결합함으로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강력한 흡입력을 자랑한다. 특히 작품 전반에 풍부한 서사를 바탕으로 섬세하고 사실적인 배경묘사는 작품을 대하는 독자로 하여금 감상의 묘미를 한층 풍요롭게 만드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다만 작품 곳곳에 함축적이고 암시적인 내용으로 인해 다소 껄끄러운 면이 없지는 않다는 것이 조금 염려스럽기는 하다. 이 작품의 내용에서 주목되는 것은 우아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자태를 자랑하는 고딕양식의 성당의 주변지역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살해사건과 관련해 이를 추적해 가는 과정, 그리고 결말 즈음에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는 반전을 통한 장르적인 면도 이채롭지만, 한편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오랜 역사를 지닌 건축물을 허물고, 단지 개발이라는 이유로 도시의 미관은 아랑곳 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을 담은 건축물로 대체되어가는 오늘 우리의 메마른 도시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서 작품 말미에서 역자의 설명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소설은 보수주의적인 유토피아주의의 정서를 바탕에 깔고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독자들은 이기주의적 세태에 점차 고립되어가는 개인의 일상에 대한 회복을 은연 중 드러내고 있는 작가의 메시지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인문학적 가치의 의미를 일깨울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 작품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실존하는 6개의 성당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에 성당의 실체를 찾아나서는, 아기자기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미스터리적인 이야기와, 실로 오랜만에 소개되는 고딕소설의 묘미를 더불어 즐기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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