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담은 배 - 제129회 나오키상 수상작
무라야마 유카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사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아무리 남과의 관계가 돈독하다고 해도 혈육을 나눈 것에 미치지 못하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 연유로 어느 누구에게나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낮선 타인으로부터 기인하는 어떤 부정적인 시선이나 행동에 상관없이, 자신을 보호해주고 감싸주며 진정한 사랑의 기운을 느끼게 만드는 가장 든든하면서도 신뢰할만한 한 대상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상대적인 면도 있어서 기대가 많으면 그만큼 실망도 커지는 것처럼, 행여 가족 간에 뜻하지 않은 불미스러운 문제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면, 상처를 받는 그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다른 무엇에도 견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스런 아픔으로 남게 될 것이고,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만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때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뜻하지 않은 문제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거나, 혹은 자신에게 더 이상의 유의미한 것으로 인식되지 못할 때, 언제든지 자신의 의지로 그 인연의 끈을 과감하고 냉정하게 잘라 내버리고는 한다. 하지만 가족의 경우에는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고 또한 인위적으로 회피한다고 해서 결코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에 가족이라는 관계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항상 긍정적인 면만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실 우리에게는 유교라는 전통적인 가치관에 대한 영향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가족에 대한 그동안의 우리의 대체적인 인식은 다소 폐쇄적이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이유로 아무리 불편하고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도 참아야 하고 설사 상처받는 일이 있다 해도, 그것을 혼자 속으로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왔는지 모른다. 그런 관점에서 이 작품은 한 가족의 불행하고 어두운 질곡의 역사를 애틋하면서도 섬세하게 다루어 내어, 독자들로 하여금 가족과 자기 자신이라는 관계의 설정을 다시금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의미 있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은 3대에 걸친 어느 가족이 겪어야만 했던 가슴이 아릴만큼의 애틋하면서도 고단한 삶을 회고한 것으로, 회한과 비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화해와 희망을 음미할 수 있는 조금은 특별한 느낌의 가족사를 담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모두 6편의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각각의 단편 그 자체만으로도 한편의 작품성 있는 소설로 치부해도 될 정도로 문학의 풍미를 자랑한다. 소설 첫 꼭지의 이야기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 한때 깊은 사랑에 빠진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가족이라는 둥지를 떠나 방황하는 둘째 아들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이어지는 두 번째와 세 번째의 내용은, 사랑 하나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즉흥적이면서도 일시적인 사랑을 즐기는 것에 이미 익숙해진 집안 막내의 이야기와, 자신의 친오빠인줄 모르고 사랑에 빠졌다가 나중에서야 밝혀진 가족사의 비밀을 알고, 타인과의 이성적인 관계에 불편함을 느끼는 셋째의 안타까운 심정이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연이어 등장하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장남의 이야기는, 아내와의 권태기를 이기지 못하다가 급기야는 사내 여직원과 불륜에 빠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외유하는 모습이 나타나있고, 한편 고등학교 학생인 그의 딸은 어린 시절 단짝 친구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지만 외면을 당하고, 설상가상으로 학급에서 왕따로 취급되는 등의 혼란스런 청소년기를 보내는 가슴 아픈 상황이 전개되어 있다. 이 작품은 어느 단편을 딱 꼬집어서 말하기 힘들만큼 저마다의 이유 있는 사연들이 눈에 띄지만, 아무래도 이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아버지가 과거를 회상하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그는 전쟁이라는 아비귀환의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참혹하고 끔찍한 위안부의 실상을 접하게 되는데, 이 점은 훗날 자신의 불행한 가족사와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다른 어떤 부분보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아버지라는 한 개인의 인생으로부터 파생된 질곡의 역사가, 이후 세대로 침착되어 전이되는 과정이 애잔하게 다가오는 이 작품은,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그 본연의 가치와 목적이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보게 한다. 또한 이 소설은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각 단편의 유기적인 구성의 묘미와, 이를 바탕으로 공감을 느끼게 하는 감성적인 문체와 서술, 그리고 무엇보다 그 내용 안에서 독자들이 몇 가지의 의미 있는 작가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 아닐까 싶다. 아울러 가족이라는 테두리에 얽매여 가족의 구성원이 겪어야만 하는 희생과 파멸의 비극적인 일면을,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홀로 감수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우리 현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도, 독자들은 주목해 볼 만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결말의 과정에 펼쳐져 있는, 아버지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비교적 객관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위안부와 관련한 내용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작가는 이 부분과 연관해서 전쟁의 추악함이나 잔인성을 비판하고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더러워진 몸으로 다시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어느 위안부 여성의 비참하고 처절한 절규의 모습을 통해, 가족을 향한 일종의 보이지 않는 소명의식 같은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의 구성원이 되어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부모로부터의 아낌없는 사랑과, 형제와 자매라는 관계에서 형성되는 친밀한 유대감을 기반으로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로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가족이라는 것은 예기치 않은 불행한 일이 있는 경우에라도, 그것을 포용할 수 있는 충분한 여지를 마련해 줄 수 있어야 하고, 또한 그 안에서 누구든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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