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새 여인이 죽기 전에 죽도록 웃겨줄 생각이야
바티스트 보리유 지음, 이승재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어떤 이는 세상이 힘들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세상은 아직 살만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어느 쪽이 더 맞는 표현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은듯하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가끔은 지루하고 따분한 날이 지속되면서 불현듯 인생에 대한 회의와 공허가 느껴지거나 삶의 의미가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질 때, 이를 상쇄할 만큼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어 주는 내용을 담은 책을 찾게 되는 일이 있다. 아마도 독자들 중에도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하면 내게는 이 책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누군가가 이미 경험했던 피부에 와 닿을 정도의 진솔하고 안타까우면서도 애틋한 에피소드를 듣게 될 때, 이에 공감을 표하며 그동안 메말라져 있었을 자신의 감성을 일깨우려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어쩌면 물질적이었든 정신적이었든 우리가 무언가를 함께 나누고 공유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로 권장 되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이 작품은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 앞에 직면하여 극단적인 체험해야 하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저자가, 병원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다양한 이야기를 솔직담백하면서도 유쾌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어서, 독자들로 하여금 적잖은 흥미로움과 함께 힐링을 가득 채워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에 더하여 책의 내용을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다가도, 한편으로 어느새 숙연한 마음에 조심스러워지기도 하고 마침내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잔잔한 감동의 여운이 복합적으로 감상할 수 있기에, 이 책을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 한번쯤 일독해 보기를 권해본다.


이 작품은 의사를 직업으로 하는 저자가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전개되는 모든 내용은 허구적인 이야기가 아닌 실제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병원의 응급실에서부터 호시피스 병동에 이르기까지 모두 7일 동안 인턴으로서 저자가 경험했던 의사생활이 흥미진진하면서도 생동감이 전해지는데, 어떤 면에서 보면 마치 누군가가 써내려간 일기장을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솔직담백한 느낌을 주고 있어서 조금은 이채롭기까지 하다. 작품 속 주인공인 나는 의대를 졸업하고 프랑스의 어느 종합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는 27세의 젊은이다. 하지만 겉모습은 나이와는 다르게 할아버지들이나 입을 법한 셔츠를 걸치고 있으며 저음목소리에 검정색 뿔테 안경을 쓰고 황금빛 수염을 기르고 있는데, 이런 모습을 하는 이유는 환자로부터 조금은 더 인자하고 신뢰받는 의사로 보이기 위함이지 결코 가식적인 것이 아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서 활동함에 있어 가급적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보려는 그에게는, 자신이 맡고 있는 여러 환자들 중에 유독 애착을 가지고 있는 한 노부인이 있다. 그녀는 말기암을 앓고 있는 환자인데 한때 붉은색 머리를 했다는 이유로 그는 그녀를 불새여인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불과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아들이 곧 찾아올 것이라며 웃음을 잃지 않고 암과의 투병을 버텨내는 그녀를 위해, 그는 임종을 맞는 날까지, 병원에서 겪은 그동안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서 어떻게든 그녀의 죽음을 연장시켜보려고 애쓴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녀는 그에게 자신을 엄마처럼 여기라며 살갑게 대하고 그는 그런 그녀에게서 오래전 돌아가신 엄마의 따뜻한 품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간호사로부터 그녀가 임종했다는 소식을 전하던 날, 그는 그녀가 말하지 않은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이 작품은 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사실 그 내용을 읽다보면 소설이라기보다는 마치 정겨운 목소리를 가진 내레이터를 통한 한편의 의학 다큐멘터리를 본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그리고 독자들이 저자가 펼쳐내는 흥미로운 줄거리를 따라 가다보면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환자를 돌보며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해프닝을 전해 듣게 되는데, 그 이야기들 중에는 웃음을 참지 못하게 하는 코믹스러운 것도 있지만 반면에 콧잔등이 시큰해질 만큼 애잔한 부분도 적지 않아서, 자그마한 아픔이라도 함께 위로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설 속에는 이런 저런 고통을 이유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위해 진정성을 가지고 치료에 임하는 저자의 인간적인 소통방식은, 독자들에게 교감을 넘어 훈훈한 감흥을 안겨주기에 충분하지 않나 싶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이 작품은 나만 아니면 괜찮다는 극단적 이기주의나, 내가 올라서기 위해서 남을 밀어 넘겨버려야 하는 과도한 경쟁주의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더불어 죽음을 앞둔 암말기의 환자와 이를 곁에서 돌보는 한 젊은 인턴의사와의 안타까운 인연을 중심으로, 24시간 쉼 없이 병원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표현된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은 힐링을 느끼는데 적잖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더욱이 다른 무엇보다 소설 속의 내용이 의미 있게 여겨지는 것은, 환자를 대하는 인턴의사의 모습에서,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긍정적인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들에게 심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작품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웃음과 사랑, 그리고 희망과 감동을 여운을 잠시나마 가슴 깊이 느끼는 따뜻한 감성의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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