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박
이은조 지음 / 작가정신 / 2014년 3월
평점 :
인간이란 모름지기 홀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처럼,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우리는 이런 저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며, 그러한 만남의 과정에서 누군가와는 인연이 되어 때로 부부나 친구가 되기도 하고 혹은 직장이나 모임에서 선후배나 동료의 관계로 남기도 한다. 저마다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어떤 사람은 고독하지 않기 위해서나 사랑 때문에 혹은 자신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여러 근본적 이유로 말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나 감정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유동적인 것이어서, 이러한 관계가 애초 의도했던 목적이나 방향대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한때는 상대가 그토록 바래왔던 사랑의 대상이 되었다가도 돌연 증오의 존재로 변해버리기도 하고, 마음 속 모든 것을 털어놓을 만큼 서로가 신뢰했지만, 뜻하지 않은 일로 인해 그동안의 관계는 어느덧 사라지고 마침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러한 일이란 살아가면서 으레 생기는 잠시 동안의 가슴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자위하며, 누군가로부터 느끼게 되었던 사랑이나 혹은 우정이라는 기억 때문에, 그리고 가족이라는 특수한 관계에서 기인하는 끈끈하고 애정이 언제나 자기 자신을 포용해주고 위로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런 인간관계가 오로지 나만 겪어야 하는 일이 아닌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일반적인 삶일지 모른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이 비례하듯, 우리 스스로가 만든 타인과의 관계에서 뜻하지 않게 맞닥트리게 되는 마음의 상처는 좀처럼 쉽게 아물지 않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행복과 불행이라는 두 가지 명제를 놓고 나와 타인이라는 인간관계가 빚어낸 다양한 삶의 모습을 통해 마주한 현실을 직시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해보고자 했다.
이 작품은 모두 8개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진 모음집인데, 그 안에 구성되어 있는 각각의 단편이 지닌 주제가 모두 하나 같이 우리들이 흔히 겪게 되는 인간관계에서의 여러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 흥미롭게 다가온다. 또한 친밀감 있게 다가오는 소설 속의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만약 그 상황이 당신의 입장이라면 어떤 고민과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하는 물음을 은연 중 던져주고 있어, 현실을 마주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의미심장함을 담고 있기도 하다. 우선 전원주택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첫 번째 작품은, 여유를 느끼기 힘든 각박한 도시 속에서 삶을 벗어나고자 조용한 교외의 전원주택으로 이사하게 되는 어느 부부의 소박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사한 후에 삶의 과정이 오히려 도시 속에서의 생활보다 더욱 악화되는 아이러니한 광경이 펼쳐져 있어서, 더 나은 행복을 위한 선택이 결국은 불행으로 끝나고 마는 안타깝고 씁쓸한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두 번째의 바람은 알고 있지 라는 소설의 이야기는 과도한 현실의 경쟁에 내몰린 젊은 부부가, 새로운 삶을 위해 대책 없이 무작정 떠난 동남아의 섬에서 경험하게 되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현실도피에 대한 회한과 허무함이 짙게 베어져 있는 것이 눈에 띤다. 작품 중간 즈음에 나오는 비자림과 우리들의 한글 나라의 이야기는 이전 단편과는 달리 암울하고 삶에 대한 의욕이 점차 사라져 가는 따분한 현실 속에서, 우연히 알게 된 타인과의 만남에서 소중한 삶의 의미를 새로이 발견하게 되는 인간관계의 회복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여러 단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관심이 갔던 작품은 표지 제목으로 나오는 수박과 효녀 홀릭이라는 소설이었는데, 이 두 소설의 내용은 가족관계라는 테두리 안에서 보이지 않는 희생을 강요당하는 한 개인의 일면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눈길을 이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른 것은,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보아왔던 소설처럼 우리가 한번 쯤 깊이 생각해봐야 할 가치 있는 의미를 담았으면서도 재미있고 쉽게 읽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누구나 연인이나 가족, 그리고 친구라는 특수한 인간관계의 구성원이 되어 오늘을 살아간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사랑이나 행복과 같은 감정들이 삶의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때로 그러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삶이 멍들고 피폐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게 마련이다. 이 소설은 그와 같은 상황에서 이질적으로 파생되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독자들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여,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지를 궁극적이고 진지한 자세로 성찰해볼 것을 촉구하고 있지 않나 싶다. 물론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오는 뜻하지 않은 문제로 인해 의외의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단순하게 간과하여 넘겨버릴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여러 인간관계에서 오는 문제점을 가급적 감성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조금은 이성적인 시각으로 인식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맺는 인위적인 속성에 너무 종속되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그러한 관점에서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를 조용히 재정립하게 만드는 단초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을듯하다. 따라서 독자들 중에 누군가 인간과의 관계에서 한번쯤 절망과 실패를 맛보았다면, 이 작품의 이야기를 통해 그 해답을 음미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