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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양우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내게 있어서 국가와 정부를 바라보는 인식이랄까 가치관에 혼란을 가져왔던 잊지 못할 기억이 하나 있다. 그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여 한 학기가 지나갈 즈음, 학생회주최로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의 시기에 벌어졌던 영상과 화보자료를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전시된 내용을 보고 무언가에 얻어맞은 것 같은 강한 충격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정말로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인 것인지 하는, 당황스러움에 의심 아닌 의심을 몇 번이고 되뇌었던듯하다.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 기본 이념에 따른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와 권리를 누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군부독재에 항거하면서, 안타까운 목숨을 잃기도 했고 또한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던 것이 분명한 사실임에도, 우리는 어느덧 이를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본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적대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우리의 안보 현실을 볼 때, 다른 무엇보다 국가 안보가 최우선이 되어야 함은 마땅하다 하겠다. 그러나 생각해 볼 것은 그것이 애초의 목적과는 다른, 이를테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고 압제하는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된다면 된다면, 이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럼에도 과거 군부독재시절에는 안보를 빌미로 언론을 통제하고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많은 부당한 일들이 행해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소설은 최근 영화로 국내 개봉되어 흥행의 돌풍을 일으켰던 변호인의 원작으로, 그동안 국가안보라는 명목아래 자행되었던 과거 공권력의 남용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서, 다시는 이와 같은 불행한 사건이 생기지 않도록, 우리의 의식을 일깨우는데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전개되는 줄거리의 원작을 바탕으로 이미 극장가에서 상당한 흥행의 성과를 얻었기에, 아마도 일부 독자들은 책의 내용에 익히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부의 내용은 영화에 나오지 않은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소설 속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주인공 우석은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독학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판사에 임용되었다가, 학벌 중심의 관료체제에 회의를 느낀 후에 속물 변호사로 살아가던 과정에서,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대학생을 만나면서 돌연 인권변호사가 되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의미심장하게 펼쳐져있다. 또한 독자들이 작품내용의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그 안에서 주인공의 행적에서 오는 모습을 보고 극명하게 겹치는 현대사의 인물을 찾아볼 수 있기도 하다. 그런데 우선 이 소설에서 독자들이 유의해서 볼 것은, 과거 우리의 군부독재정치의 실태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데 있다. 소설 속에서 대학생으로 등장하는 진우는 어머니의 가게를 도우며 살아가는 성실한 모범생이지만, 야학에서 공부를 가르치던 중에 국가보안법을 어겼다며 이유로 공안부 소속 경찰에 의해 불법으로 체포된다. 하지만 이 배경에는 당시 부산에는 군부정권에 항거하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런 분위기가 점차 확산되어가는 경향을 보이자 권력유지를 위해 사전에 조작된 공안사건이 필요했고 진우는 바로 그 희생자의 제물이 되었던 것이다. 주인공 변호사 우석은 이 사건에 모종의 음모가 있음을 인식하고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원이 한통속이 된 재판에서, 피해자에 대한 고문과 강압에 의한 무죄임을 확신하며 변론에 임한다.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을 망각하고 이를 무참히 유린했던 군사독재정권이 막을 내린지 올해로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늘날 우리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완전한 민주주의가 정착되기까지 그동안에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보면서 일부 독자들은 설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비록 각색된 허구적인 것이 분명해 보이지만, 최근 법원에서 무죄로 판결되었던 인혁당 사건에서 보듯 단순이 근거 없는 이야기로 치부하거나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의미 있게 여겨지는 것은, 과거군부독재시절에 잔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마당에, 언제 그와 같은 일이 현실에서 또다시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해마다 투표율이 조금씩 감소추세에 있는 것을 보면, 정치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정치란 것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현상은 심히 우려되는 부분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소설은 불의에 눈감지 않고 행동하는 한 인물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친밀감 있게 그려냄으로서, 때로 우리들이 간과하는 민주시민으로서 의식을 고취시켜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우리의 어둡고 불미스런 정치사의 치부를 과감히 드러내어, 이를 통해 보다 나은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도움을 주는 유익한 작품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이냐 아니면 공안당국에 의한 고의적인 무고죄인가를 두고 다섯 번의 재판을 통해, 국가의 존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이 작품에 독자들의 많은 관심이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