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재판 -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2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책을 폭넓게 읽기를 바라면서도 장르분야의 작품을 오래도록 손에 놓지 못하는 이유는, 그 내용에 장르의 본질적인 요소인 스릴이나 반전 그리고 미처 생각지 못한 트릭의 묘미가 흥미롭게 여겨지는 부분도 있지만, 작품 속 사건과 관련하여 등장하는 여러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보면서, 일종의 선입견 같은 고정관념을 일깨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새로운 작품들이 꾸준히 출간이 되고 있다고는 해도 이런 나의 기대와는 달리 적잖은 실망감을 주는 작품도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의외의 좋은 작품을 만난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 작품은 근래에 내가 접했던 여타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여, 내용면에서의 몰입도도 상당히 좋았으며 작품 이면에 담겨 있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감안해 볼 때, 조금은 후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싶은 작품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사실 이 소설을 읽어보기로 선택하게 된 주된 이유는, 법정스릴러물을 본격적으로 다루어 왔던 존 그리샴의 작품들을 오래전에 읽었던 기억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그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게 있어서 이 작품은 줄거리 전개방식이나 미국의 법제도 차이점에서 기인하는 약간의 이질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기대 이상의 흡족한 만족감을 안겨주지 않았나 싶다. 물론 같은 작품을 두고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독자의 평가는 제각각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 법정스릴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이 작품이 나름대로의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으리라 여겨지기에 조심스럽게 추천을 권해본다.


우선 대체적으로 법정스릴러를 기반으로 한 기존의 작품들이 배심원제도와 관련이 많았다고 본다면, 이 작품은 그러한 제도와 연관한 내용을 다룬 것이 아닌, 1960년대의 일본법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품 속 이야기는 무라타 가즈히코라는 한 남성이 두 번의 연속살인과 시체유기라는 사건의 범죄용의자로 지목되어 검찰의 기소로 재판에 회부됨으로서 시작한다. 그는 재판부 앞에 나와 간곡하게 증언하기를 첫 번째 살인이 일어난 후 시체를 유기했다는, 단 한 건의 범죄 사실은 인정하지만 나머지 3건의 범죄에 대해서는 자신과는 전혀 무관하다면서 확신에 찬 무죄를 호소한다. 그러나 사건의 여러 정황상으로 볼 때, 어느 누구도 그의 무죄를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많았다. 이 사건에 두 명의 피해자는 바로 그가 한 때 목숨을 다해 사랑했던 내연녀와 그녀의 남편이었고 더구나 범죄 현장에 그의 소지품이 발견되었던 까닭에, 그의 유죄는 당연한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건의 당사자인 피고인의 증언에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한 하쿠타니라는 변호사는 그의 변호인이 되기를 자청했고, 이후 피고인에게 불리했던 일방적인 재판의 흐름은, 그의 노련하고 치밀한 조사에 의해 새로운 사실들이 하나 둘씩 표면위로 드러나면서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게 된다. 이 작품의 특징은 다른 여타의 작품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법정 내부에서 벌어지는 증인들의 진술과 더불어 검사와 변호인 간의 증인들을 향한 반대심문의 이야기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건과 관련하여 으레 전개되는 범죄과정의 행위나 공권력을 통한 범죄자를 추적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전혀 그려져 있지 않다. 그런 이유로 장르가 주는 흥미의 요소가 다소 반감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독자들이 작품 속 내용을 들여다보면, 다른 어떤 스릴러물 이상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듯하고, 특히 피고인의 무고와 관련하여 펼쳐지는 이야기는, 독자들이 한번 되새겨 볼만한 의미 있는 것을 시사하고 있어서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간주된다.


이 작품은 법정을 취재하는 기자의 눈으로 보는 시각에서 전체적인 줄거리가 전개된다. 그리고 내용은 오로지 검사와 변호인의 변론과 그리고 증인들의 증언을 기반으로 이 사건의 판결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에 모든 것이 맞추어져 있다. 그렇다보니 이 작품을 읽는 독자의 입장은 마치 법정의 배심원이 되어 재판을 참관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런데 이점은 작가가 애초 독자들로 하여금 사건을 가급적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하려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이 작품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이 많다. 그 중에서도 작품의 내용적인 부분과 관련하여 독자들이 유의해 볼 것은, 자신도 모르는 그릇된 우리의 선입관이 때로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작품 속 피고인으로 지목된 주인공은 봉건제도의 오래 잔재가 일부 남아 있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주위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심한 차별을 받게 되는데, 그 원인은 그의 집안이 대대로 하층민출신이라는 신분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이로 인해 주인공은 자신의 개인적 능력과는 별개로 사회생활은 물론 군대에서도 자연스럽게 따돌림을 당할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는 자신의 부인에게까지 업신여김을 받게 되기에 이르자, 그 충격으로 사람에 대한 신뢰를 그만두고 마침내는 스스로를 고독한 섬에 가져다 놓게 된다. 결국 이러한 피고인의 태생적 배경은 그로 하여금 이번 사건의 비참한 현실을 부르는 참극의 대상이 되게 만들었고, 재판의 과정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결과를 이어지는데, 이 작품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사실적인 묘사와 함께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음을 독자들은 확인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읽으면서 새삼 느꼈던 것은 사건의 실질적이고 세부적인 내용이 없이도 기대 이상의 짜릿한 스릴과 반전의 묘미를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존의 장르내용과는 색다른 독특한 전개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뛰어난 작품의 완성도를 선보이고 있는 이 작품에, 독자들의 많은 관심이 있었으면 싶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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