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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두렵고 무섭게 느껴지는 것 중 하나는,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순간, 즉 죽음의 과정일 것이다. 그것은 삶에 대한 욕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과 관련하여, 죽음이란 것이 우리의 의지로 거부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그 때가 되면 쉽게 수긍하고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심리가 우리 내부에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어찌 되었든 죽음은 의학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조금은 늦출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현재까지 없는듯하다. 죽음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달갑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 한번쯤 시간을 내어 고찰해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많은 것을 의미하고 시사한다. 이를테면 지나간 자신의 인생의 모습이 과연 어떠했는지를 곰곰이 반추해보면서, 소중한 시간을 너무 헛되이 소비해버린 것은 아닌지, 혹은 삶의 목적이나 이유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만약에 자기 자신에게 언제쯤 죽음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사전에 인지하게 되는 경우, 죽음 앞에 맞서 당당하게 이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고 의연하게 대처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만큼 우리로 하여금 심리적 중압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들 대부분은 죽음에 임박했음을 느낄 때, 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던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게 되는데, 특히 그중에서도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신을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특별히 무엇이 달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신에게 기대지 않으며 겸허히 죽음을 마주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주목된다.
이 책의 저자는 리처드 도킨스와 함께 이 시대의 대표적인 무신론자로 알려져 있는 크리스토퍼 히친스다. 사실 그는 자신의 저서 신은 위대하지 않다 라든가, 논쟁이라는 책을 통해 광신과 독선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거침없는 독설로 인해,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꺼려지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비평가로서 현학적인 말솜씨와 많은 기고문을 통해 방송과 언론에 노출됨으로서 우리 사회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는데, 불행하게도 62세라는 나이에 식도암말기 판정을 받은 직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생을 마감했다. 이 책은 당시만 해도 칼럼니스트이자 자신의 저서 출간과 관련하여 의욕적으로 바쁜 활동을 보이던 중에, 식도암이라는 뜻하지 않은 발병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얼마 안남아 있던 짧은 시간동안, 죽음을 눈앞에 둔 그의 마지막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아져 있어 눈길을 이끈다. 무신론자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그는 살아생전에 유독 종교에 관한 날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는데, 아마도 이를 의식했던 것일까 책 속에는 신에 의지하려는 조금의 호의적인 모습도 보이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죽음을 눈앞에 둔 현실을 부정하는 등의 갈등하는 태도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여러 치료의 과정을 거치면서 몸에 나타나는 여러 변화들을 통해, 죽음이 곧 자신에게 닥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인식했었던 듯하다. 그러나 책 속 그의 글을 읽다보면 마치 죽음은 자신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어떤 불안감이나 두려움을 호소하거나 심지어 일말의 고뇌도 없는 것 같은 자세를 보인다. 그러면서도 한편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무력감을 떨치기라도 하듯 블랙유모를 섞어가며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낸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일반 독자들에게 있어서는 아무래도 친숙하게 느껴지지도 않을뿐더러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면서 관조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히친스는 죽음 앞에서도 연약한 모습은 고사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도 정상인과 다름없는 조금의 흔들림도 보여주지 않는다. 물론 식도암의 증상이 점차 깊어지면서 앞으로 더 이상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에 잠시 빠지기도 하지만, 이는 죽음과는 또 다른 별개의 문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저서와 칼럼과 강연 등을 통해 신의 존재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독설을 퍼부어왔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서 전 세계 기독교 신자들로부터 참기 힘든 모욕과 저주의 발언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책 속에는 이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자주 언급되어있음을 볼 수 있는데, 당신이 그토록 신을 모독했기 때문에 신이 당신에게 식도암이라는 벌을 내려주었을 거라는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들에 대해, 그는 경전과 종교의 가르침에는 수백 년 동안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는 심보를 주류신앙으로 만들어버린 구절들이 수 없이 많다는 식으로 가볍게 넘겨버리고 만다. 죽음을 앞에 두고 신을 의지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우리들 각자의 판단에 따른 저마다의 몫이다. 하지만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에 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통념을 깨트리며 죽음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그의 삶의 자세는, 그저 단순하고 가볍게 넘길 만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신에 대한 통렬한 비판만큼이나 죽는 순간까지도 인간의 삶에 강한 애착을 보였던 그의 실존주의적인 모습을 독자들이 한번 깊이 사유해 볼만하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