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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스
어빈 웰시 지음, 김지선 옮김 / 단숨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우선 트레인포스팅이라는 책이나 영화를 혹시 보아온 독자들이 있다면, 아마도 이 작품의 작가를 금방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경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밀려나와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젊은 청춘들의 모습을 냉정한 시각으로 파헤친 당시의 작품은,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그들의 현실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여 우리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며 많은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던 것으로 기억 된다. 작품의 내용을 통해 상대적인 선은 존재할지 모르나, 절대적인 선은 결코 없다는 작가의 단언적 외침에서 보듯이, 이번에 새롭게 발표된 필스라는 작품은, 어떻게 보면 그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또한 우리 사회의 현실에 대해 신랄한 독설로 퍼부음으로서 그 비판의 힘이, 이전의 작품에 비해 더 강하고 무겁게 실려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이전 작품에서 느꼈던 것 이상으로 적잖은 충격과 당황스러움에 한동안 아득한 혼미가 있지 않았나 싶다. 그렇지만 작품을 읽는 내내 주인공의 동선을 따라가면서 과연 이러한 삶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하는 의아함을 뇌까리며 몰입해서 읽는 동안은, 의외의 흥미로움과 함께 즐거운 독서의 시간을 가지지 않았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이 소설은 대책이 없는 어느 부패한 경찰관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영상미가 느껴지는 사실적 묘사와, 한 인간의 끝없는 추락의 과정을 적나라하면서도 실감나게 전개함으로서, 어느새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버린 부조리의 일상을 직시하게 만든다.
작품 전반에 걸쳐 일종의 마초적인 냄새가 물씬 풍겨지는 이 작품은, 작가 특유의 개성 있는 문체에 힘입어 시작부터 끝나는 부분까지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여러 사회적 범죄의 내용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주인공은 경찰관이라는 직업의 특수성을 이용하여 범죄자로부터 마약을 얻어 복용하고, 동료의 부인과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불륜을 저지르기도 하며, 자신의 업무와는 전혀 무관한 일을 하면서도 이를 초과수당으로 청구하여 불법적인 금전적 이득을 얻는 등의 극도로 타락한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절도와 살인, 협박과 같은 범죄를 막아야 할 공적인 신분의 위치하면서도, 오히려 범죄자보다도 더 심한행위를 벌이면서도 이를 마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생활의 일부분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이 세상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작품의 말미에 주인공 부르스가 왜 자신의 그릇된 행동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파괴적인 삶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지 그 이유를 명시하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읽는 일부 독자들에게는 상당한 불쾌감을 주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감이 들 정도로 그 전개내용이 노골적이면서도 파격적인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드러내고자하는 그 본질적인 내용을 깊이 생각해본다면, 오히려 그러한 반감보다는 인간에 의해 저질러지는 도덕적 타락과 부패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서, 그 바탕에 도덕적 불감증에 걸린 우리의 행동양식에 일깨움을 주고 있지 않나 싶다.
우리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지난 과거의 오랜 우리의 역사를 거슬러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도덕적 타락과 부패의 실상은, 시대와 상관없이 꾸준히 진행되어져 왔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국가나 공권력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그 타락의 강도는, 일반의 그것에 비해 훨씬 교묘하고도 잔혹하게 이루어진다. 이를 광범위하게 확대해보면 체제불법의 한 형태로도 볼 수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분에 대한 범죄적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의 정립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사실 이런 일은 정당하지 못한 집단에 의해 그 사회가 유지될 때 혹은 민주화가 더딘 사회일수록 그 내용이 훨씬 더 심각하고 다양하게 나타난다. 문제는 그 대상에 대한 실질적인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고, 설사 처벌한다 해도 미미한 부분에 그친다는데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은 단순한 어느 경찰관 개인의 문제로 넘겨볼 것이 아닌,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까지 접근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고 해야 할듯하다. 개인적으로 작품 속 주인공의 모습은 예전 투캅스에 등장했던 안성기가 역할을 맡았던 부패한 형사의 이미지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그런 느낌이다. 아마도 작가는 작품 속 주인공을 통해 공권력의 부조리한 부분을 한껏 부각시켜 독자들에게 그 실상을 알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공권력은 결코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나 수단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아직 접하지 않은 독자들이 있다면, 다른 어떤 부분보다 이러한 내용에 중점을 두고 읽혀졌으면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