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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주의 인물
수잔 최 지음, 박현주 옮김 / 예담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표지와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느낌은 솔직히 그랬다. 왠지 추리와 연관된 긴장감을 주는 장르분야의 소설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분명 내용에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고, 발단이 된 사건의 이야기를 통해 책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은 그런 생각을 가지게 했던 책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그런 나의 애초의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해야겠다. 가끔은 독서가 무척이나 하고 싶어질 때, 문득 느낌만으로 혹은 분명 머리로는 아닌데, 무의식적으로 손이 먼저 가게 되는 책들이 있게 마련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그런 선택으로 인해 읽게 된 책들의 내용은, 이상하게도 나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어떤 알지 못한 묘한 기운의 존재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 책은 내게 있어 뜻하지 않은 선택의 대상이 되었지만, 의외로 흥미롭고 의미가 있는 독서의 즐거움을 갖게 했으며, 그 내용으로 인해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 충분한 여지를 주었기에 그런 분류에 집어넣고 싶은 몇 개 안되는 작품으로 남아 있을듯하다.
사실 개인적으로 처음 보는 낮선 작가인데다가 무려 600여 페이지가 넘는 상당한 분량을 자랑하는 이 작품은, 앞부분의 내용이 테러와 관련한 사건이 모티브가 되어 전개되어 있기는 해도, 보통 장르소설이 주는 대중적인 흥미의 요소들을 찾기에는 거리가 조금 있는 편이다. 더구나 책의 전개 흐름이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현재로 반복되는 부분이 많아서, 생각만큼 빨리 읽혀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보통 추리작품을 기대했던 독자들이라면 다소 실망감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지나치고 외면하기에는,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내용이 너무 매력적이고,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가 강렬하지 않나 싶어 가급적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이 작품은 미국의 한 대학에서 종신 교수로서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지만, 타인에게 있어 동양인이라는 태생적 외모와 원어민이 아니라는 선입관적인 인식의 틀에 갇혀, 이방인의 굴레를 쓴 채 고통스럽고 고독한 삶을 영유하는 한 인간의 내면을 철저하면서도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작품 속 이야기는 학생들로부터 신임이 높고 대학에서 촉망받는 교수에게 누구가로부터 우편물이 보내어지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사제폭탄이었고 이로 인해 해당 교수가 사망하는 테러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사건이 벌어진 그 옆방에는 자신의 연구실을 두고 있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그는 당시 사망한 교수를 선망하고 질투했었던 적이 있으며, 더구나 학생들과 이웃 사람들에 의해 좋지 않은 평판을 전해들은 경찰로부터, 불행하게도 사건에 관한 요주의 인물이라는 딱지를 부여받기에 이른다. 결국 처음에는 별 의미 없이 받아들이다가 급작스럽게 발생한 사건의 중심에 자신의 존재가 서서히 부각되고 있음을 깨달은 주인공은, 점점 옥죄어 오는 불안감에 자신은 이번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밝히기 위해, 스스로가 예전에는 남들에게 전혀 보이지 않았던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부단한 움직임을 보인다. 작품 속 이야기 흐름의 진행은, 하나의 우연한 사건에서 출발하여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주인공의 왠지 부자연스러운 행동들과, 그의 진짜 속내를 현재와 과거를 쉼 없이 교차하여 들여다보는, 섬세하면서도 치밀한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어 작품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바라던 학문적 위치에서는 나름 성공했다고 볼 수 있으나, 그 과정에서 두 번의 결혼실패와, 남들로부터 조그마한 틈도 보이지 않으려는 마치 강박적인 모습을 가슴 속에 숨기며, 이를 기반으로 한편으로는 위선적이며 가식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행위는 스스로가 미국 사회의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으로서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감추기 위한 자구책이다. 하지만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러한 자신의 의도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방향에서 자신을 보아주는 것이 아닌 다른 시각에서 그를 바라보고 인식한다. 결국 주인공은 타인으로부터 떼래야 뗄 수 없는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히고, 작가는 이러한 부분을 집요하게 파헤쳐 독자들을 향해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볼 것 인지를 의미심장하게 묻고 있는듯해 보인다. 이 책을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 작품 속 주인공이 겪고 있는 삶의 이야기는,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환경에 간접적으로 대입하여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겨진다. 아마도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의 실제 모습을 감추고 마치 가면을 쓰고 거짓된 인생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가면의 모습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으며, 우리를 때로 불편하게 만들기도 해서 언젠가 자신을 옭아매는 피폐한 인생으로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작가의 진정한 메시지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서, 많은 독자들이 나름대로 이유 있는 독서의 시간을 가져 보았으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