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쌍하구나?
와타야 리사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살아가는 요지경 세상 속에 많고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사랑이야기 만큼 우리의 귀를 솔깃하게 하고, 주목을 이끄는 것도 별로 없을 것이다. 사랑은 이상하게도 두 가지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사랑을 마주하면 그 무엇보다 달콤하고 행복한 것이지만, 그것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가슴 아픈 상처에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눈물을 쏟아내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한순간 급작스레 변해버릴 수도 있는 미묘한 사랑의 흐름에 따라, 그에 따른 극에서 극으로 가는 감정의 체험을 하게 마련이다. 과거 고전문학 안에서 다루었던 사랑의 내용을 보면, 젊은 베르테르가 로테와 우연하게 만나 깊은 사랑에 빠지지만, 그 사랑을 얻지 못해 끝내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되는 저돌적이면서도 지고지순의 일관적인 사랑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든지, 로미오와 줄리엣의 경우, 서로가 간절히 원했고 그래서 이들은 사랑을 쟁취하게 되지만, 양가 집안의 문제로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 주로 비극적이면서도 승화된 사랑의 이야기들이 많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과거에 비해 사상이나 가치관이 달라졌다고는 해도,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나 시각은 크게 다르지는 않은듯해 보인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랑과 관련한 아련하고 애틋한 추억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마는, 그 흔해빠지고 닳고 닳은 그 누구누구의 사랑의 이야기도, 왠지 남의일 같지 않고 때로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며 동감을 표시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작품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인들 간의 풋풋하고 거침없는 사랑과 관련한 이야기를 화려한 문체로 흥미롭게 담아냈다. 두개의 중편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 속에는, 주인공 여성이 겪는 연애과정에서의 심리적 내면의 세계를 정교하면서도 솔직담백하게 그려가고 있어, 독자의 주목을 이끈다. 첫 편에서는 우유부단하면서도 자신의 고집을 쉽게 꺾지 못하는 나약한 남자와 대책 없는 만남을 지속하는, 한편으로 어리숙하면서도 천진난만하지만 자신의 사랑을 확신하는 여성의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코믹하면서도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두 번째 편에서는 빼어난 미모를 바탕으로 뭇 남자들의 시선과 관심을 받는 여자와, 그리고 그런 친구를 옆에 두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은근한 질투의 시선을 보내는 여자, 이들은 서로단짝이자 베프의 관계를 유지하지만, 연애감정에서 만큼은 보이지 않는 경쟁을 펼치며,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미묘한 신경전을 펼쳐나가는 것이 이채롭게 느껴진다. 책 속의 두 작품은, 주인공을 통해 사랑이라는 그 대상으로 하여금, 마치 작가의 감정을 직접 이입시켜놓은 것처럼 비교적 진솔하고도 설득력 있게 전개되고 있기도 하지만, 반면 독자들에게는 당신의 사랑은 지금 어떠한가를 떠올리게 하고,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묻고 있는듯해 보이기도 한다. 더불어 남녀사이에서 종종 야기될 수 있는 갈등의 문제를, 여성의 입장에서 유쾌하면서도 공감할 수 있도록 감성을 담아 적절하게 풀어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사랑에 직면하게 되는 복잡다단한 여자의 내면을 예리하게 집어내어 설득력 있게 전개한 것도 좋아 보였지만, 작품 전반에 걸쳐 작가에 의한 언어의 조화랄까 싶은, 문체가 상당히 맛깔스럽고도 경쾌함이 돋보였다는 점이다. 책 속 이야기에서처럼 사랑은 자신이 생각한대로 그리고 의도한대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때로 사랑으로 인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누구는 사랑으로 인해 세상을 조금 더 배워가지만, 누구는 사랑 때문에 삶을 등지기도 한다. 이것은 그만큼 사랑의 힘이 강렬하기에 우리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작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경향을 보인다고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그 감정을 숨기고 이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그리고 논리적으로 바라보고 생각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조건에 따른 계산적 선택이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랑은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이기에, 마땅히 혼자 모든 것을 감내해야만 한다. 하지만 작품 속 주인공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랑에 실패했다고 해서 그것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인생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사랑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향후 조금씩 성숙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사랑이야말로 모든 것을 다 감싸 안을 수 있는, 그 진정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그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러는 멀리감치 떨어져서 보는 지혜도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의 사랑이 지금보다는 조금은 더 아름답게 잘 가꾸어 갈수도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