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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인간 ㅣ 한스 올라브 랄룸 범죄 스릴러 시리즈 1
한스 올라브 랄룸 지음, 손화수 옮김 / 책에이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의 문화들이 때로 유행을 타는 것처럼, 추리소설의 경우도 최근 등장하는 많은 작품들이 과거에 선보였던 내용들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는듯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엘러리퀸, 애거서 크리스티 등과 같은, 고전추리작가들의 명작들은 그런 추세와 별도로 많은 독자들의 뇌리에서 점차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이 적잖은 호응을 얻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럴까 일부 독자들이 예전의 그러한 역작들에 대한 향수를 느껴보고 싶은 것처럼, 고전추리를 다시 찾아보는 독자들도 제법 있을 것으로 본다. 이 작품은 표지의 그림도 그렇지만 ‘파리인간’이라는 다소 독특한 제목과 함께, 또 그 내용에 있어서는 역사고전추리의 형식을 따르고 있기에, 예전의 추리소설들을 즐겨했던 독자에게는 반갑게 다가서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고전추리소설이 독자들에게 주는 묘미는, 아무래도 작가가 작품 속에 교묘하게 펼쳐놓은 여러 장치들을 통해서, 독자들이 그 진실의 부분이 어디 일까를 찾아내는데 있다. 다시 말해 작가와 독자들 간의 보이지 않는 치밀한 눈치, 혹은 두뇌싸움을 벌이는 식의 형태로 전개되는 것이 바로 그 특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 이 작품 역시 이와 비슷한 형식의 줄거리와 고전특유의 흐름이 적절하게 조합되어 있어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한번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작품 속 사건의 배경이 시작되는 곳은 1960년대 말 노르웨이의 어느 작은 아파트단지다. 경적을 깨트리듯 ‘탕’ 하는 소리와 함께 현장에는 가슴에 총을 맞은 한 노인의 주검이 발견된다. 긴급한 전화를 받고 출동한 크리스티안센 경감은, 주변 상황을 조사한 결과 좀처럼 보기 힘든, 외부 침입이 전혀 없는 전형적인 밀실살인 사건으로 규정하고, 즉시 근처 이웃탐문에 나서 나름대로의 심문을 펼쳐보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아파트의 주민들은 모두 7가구였고, 저마다 수긍할만한 알리바이들이 있었으며, 더불어 사건현장을 세밀하게 조사했지만, 사건해결에 도움이 될 만한 그 어떤 증거물이나 특이사항은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곤란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 얀센 경감은, 이 사건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난감한 처지에 놓이지만, 마른땅에 마치 단비가 내리듯 그에게 도움을 주는 한 여성이 문득 등장한다. 그녀의 이름은 파트리시아로 불의의 사고로 횔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몸이지만, 4개 국어에 능통하고 빠른 판단력과 놀라운 논리력을 자랑하는 우수한 두뇌를 지닌 소유자다. 그렇다면 얀센 경감은 그녀와 함께 아무런 단서도 그리고 증거도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이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 나가게 될까.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우선 제목에서부터 확연히 눈에 띠었었다. 제목이 사건의 내용에 어떤 복선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고,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과는 아니었다. 그러나 작품 전체적으로 보면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하는 작가의 나름대로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함축된 메시지를 독자들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추리 작품과 달리, 이 작품 속에 전개되는 줄거리를 토대로 몇 가지 주목해 볼만한 부분을 찾아보자면, 먼저 밀실살인사건과 관련하여, 이 사건은 단순한 한 노인의 쓸쓸한 죽음에서 시작하지만, 이와 연관된 내용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작가는 노인의 죽음을 2차 세계대전 당시 발생했던 지울 수 없는 안타까운 에피소드와 연결지어, 작품을 한층 흥미롭고도 애잔하게, 그러면서도 지적호기심을 유발하는 매력적인 내용으로 채워 넣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제목과 관련하여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작품 중간쯤에 ‘파리인간’에 대한 구체적 의미를 설명해 놓았는데, 이 작품을 계기로 독자들로 하여금 인문학적 가치의 소양을 되새겨보게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무엇보다 주목했던 점은, 고전추리소설의 재탄생이라고 할 만큼 그 내용이 치밀하고 논리적이라는 것, 그리고 끝부분에 가서야 비로소 범인의 윤곽을 알아낼 수 있을 만큼 군더더기가 없는, 중간 중간 추리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적절하게 배치해놓아 흡인력 있는 스토리의 구성을 이루어 냈다는 것이다.
이 작가의 작품은 아직 국내 소개된 적은 없는듯하다. 그래서 아마 독자들에게는 이 작품이 처음 대면하는 것이고, 그래서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국에서는 이미 상당한 호평과 함께 대중적인 추리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작품을 계기로 국내 추리독자들에게도 좋은 호응이 뒤따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작품은 실제 있었던 역사의 사실에서 동기를 얻어 구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지 언론을 통해 나타난 그의 평가를 보면, 이번 그의 작품은 정통고전추리소설의 맥을 이어가는 어쩌면 새로운 시도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마치 유에서 유를 창조하듯 하나의 사건을 두고 천천히 한 발자국을 내딛으며, 마침내 결론을 향해 내닫는 작가의 정교하고 세밀한 배려가 돋보이는 이야기 전개와, 추리의 내용을 역사의 배경 속에 녹아내어 신선하면서도 흥미롭게 펼쳐낸 이 작품에, 많은 독자들의 관심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또한 이 작품을 시작으로 추후 그의 작품이 시리즈 형태로 소개 될 것으로 보여 그 귀추가 주목된다. 애거서 크리스티, 아서 코난 도일 등 유명추리작가의 여러 작품들이 우리에게 추리를 읽는 즐거움을 준 것처럼, 이번 ‘파리인간’을 시작으로 아직 소개 되지 않은 그의 작품들이 출간되어 독자에게 선보였으면 싶고, 개인적으로 이후 작품에서 사건 해결에 주인공이 되는 얀센 경감과 파트리시아의 활약이 어떻게 펼쳐질지 자못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