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 1 버지니아 울프 전집 17
버지니아 울프 지음, 진명희 옮김 / 솔출판사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20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작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버지니아 울프를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실험적인 형태의 다양한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의식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소설 형식을 추구하고 이를 완성시킨 그녀의 여러 작품들은, 당시에는 문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다소 파격적인 것이었지만, 문단에서나 대중적으로도 작품 속에 드러나는 청각적이고 시각적인 문체의 진행과 운율적인 요소에서는 상당한 호평을 받아왔기 때문이고, 특히 1970년대 이후 페미니즘 비평이 대두되면서 그녀의 작품에 대한 재평가에서 작품성을 크게 인정받아 왔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그녀의 작품내용을 두고 편협한 시각이라든지, 또한 일정한 플롯이 없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적인 부분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난해하고 건조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없진 않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문학의 장르를 시도하고 이를 구축해왔다는 점에서, 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울프의 처녀작인 이 작품을 계기로 그녀의 여러 작품들을 두루 살펴보고 감상해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출항이라는 이 작품은 1915년에 발표된 그녀가 오랜 퇴고를 거듭한 끝에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게 된 데뷔작으로, 울프의 생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작품의 내용을 통해 그녀가 살아온 인생의 일부가 투영되어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녀의 회상록에 따르면 울프는 저명한 문인이었던 아버지와 가정적인 어머니 밑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성장과정에서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과 이후 의붓오빠로부터 뜻하지 않은 성적학대를 당했다고 한다. 따라서 독자들 입장에서는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레이첼이라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울프가 추구하고자 했던 문학적 사상이나 서술 기법 그리고 그녀의 삶에 대한 가치관 등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작품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주인공 20대 중반의 숙녀인 레이첼은, 일찌기 어머니를 잃고 해상무역업자이면서 여러 척의 선박을 보유하고 있는 아버지와 그녀를 돌봐주는 두 명의 고모들과 함께 생활을 해오다가, 우연한 기회에 아버지의 선박 유프라지니호를 타고 남미의 산타 마리나로 휴가를 떠나는 외숙모 헬렌과 외삼촌 리들리와 동행하게 된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며 오로지 피아노 연주와 고전음악에만 매달리던 레이첼의 이번 여행은, 정치에 야망을 가진 아버지의 의도에 따라 자신에 부인 역할을 대신했으면 하는 개인적 욕망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며, 한편 외숙모 헬렌은 레이첼의 엄마가 한때는 자신의 친한 친구였던 관계로 순박하게 자라난 그녀에게, 그녀의 아버지가 생각하고 있는 의도와는 달리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아님을 알려주고자 한다. 이후 이들은 몇날 며칠의 따분하고 지루한 선상생활 도중에 뜻하지 않은 거센 풍랑을 만나게 되는데, 레이첼은 이 과정에서 중간 기착지에서 탑승했던 보수성이 강한 40대의 전직 국회의원 댈러웨이에게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기습적인 키스를 당하게 된다. 내성적인 경향을 보이며 이성에 대해 무지했던 그녀는 갑작스런 생애 첫 키스를 경험하게 되자, 이 일을 계기로 한동안 정신적 충격과 함께 심한 악몽에 시달리며, 당시의 상황이 뇌리에 지워지지 않은 채 마음의 상처로 남아 괴로움에 시달리며 불안한 방황의 시간을 보내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후 레이첼은 산타 마리나에 도착해 그곳에서 일정한 직업이 없고 소설가가 되기를 갈망하는 양성애자인 테렌스를 만나면서 사랑에 빠지고 고가구상을 운영하는 플러싱 부인의 주선으로 약혼까지 하게 되지만, 이들의 관계는 사랑이라고 하기보다 우정에 가까운 그런 형태를 띠게 되고, 마침내는 레이첼이 아마존 상류 원주민 마을로 탐험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열병에 걸려 죽으면서, 이들의 사랑은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고 아쉽게 끝나고 만다.


이 작품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한편으로 해상사업으로 선박을 타고 외지로 다니는 아버지의 직업 탓에 자연스럽게 가정생활에 불충분할 수밖에 없는 레이첼 이라는 20대여성을 주인공을 내세워, 순박하게 자라나 세상 물정에 어두운 그녀의 순탄하지 못한 젊은 시절을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작품 속 내용은 이야기의 전개상으로 보면 그리 복잡하지 않은 매우 단순한 구성임에도, 일정한 플롯의 형식을 띠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내면적 심리묘사가 위주로 되어 있어 일부 독자들의 경우 약간은 지루하게 읽혀 질수도 있을듯하다. 그러나 이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당시 사회상의 문제점들, 이를테면 남성위주의 가부장적인제도의 불합리성과, 그에 따라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외부로 자유롭게 표출하지 못하는 폐쇄적인 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는 기구한 사회적 삶의 내용을 일부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그녀가 오늘날 페미니스트의 대표적인 인물로 부각된 것도, 바로 작품 속에 일종의 여성들과 관련한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 그러나 이 작품 역자의 말에 따르면, 독자들이 울프의 문학을 단지 모더니즘이나 페미니즘이라는 규정화 된 틀에 묶어 살펴볼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그녀의 작품 속에 사랑과 이타주의가 은연 중 녹아 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울프의 문학은 역자의 말대로 고정적인 시각이 아닌 다양한 측면에서, 그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의 내용을 독자들이 살펴보고,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울프의 문학세계를 이 작품을 계기로 정독해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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