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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월
평점 :
근대화가 시작된 이후 대한제국을 거쳐 혹독하고 끔찍했던 일본에 강점을 당했던 우리나라는, 이후 독립국으로서의 해방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한국전쟁 이후 해외원조 없이는 단 며칠도 버티기 힘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50여년 정도가 지난 지금, 비록 국제사회의 선두에서 서서 이를 이끌어가는 주도국은 아닐지라도, 세계경제 10위권이라는 위상을 떨치며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국가로 거듭나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경제 강국으로 성장하기까지 그 이면에 가려진 그 동안의 우리의 정치, 사회상을 조명해보면, 생각보다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지금에 와서 그때를 돌이켜보면 길 다면 길고 짧다면 짧게 느껴지는 지난 50년의 기간 동안, 우리 사회는 엄청난 변화 과정의 연속이었고, 그래서 너무 급하게 달려온 나머지 정작 돌아봐야 할 부분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온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적인 면에서 보면 서슬 퍼런 군부 독재의 과정이 있었고, 경제적으로는 산업기지 건설과 수출드라이브를 통한 경제성장 일변도의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국민 대다수가 절대 빈곤의 생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는 했지만, 반면에 그에 따른 대다수 국민들의 엄청난 희생이 뒤따라야 했던, 그래서 일부 권력자나 기득권층을 제외한 국민 개개인들의 본질적인 삶의 측면에서 생각하면, 그 시절은 아마도 험하고 모질었던 인고의 세월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 작품은 근대화 이후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70년대부터 민주주의 항쟁을 거쳐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2000년대 초반까지를 배경으로 하여, 지난 우리의 근대화 과정에서의 행해졌던 어두운 과거사들의 일면과, 이후 격동의 현대사를 장식해온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들을 생생하게 살펴보면서, 동시대를 걸어왔던 한 남자의 기구한 일생을 드라마틱하게 담아낸 낸 소설로,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하는 흡인력이 강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더불어 경제부흥이라는 모토아래 정부의 강압적이고도 일방적으로 행해졌던 여러 사회 제도적 모순과 부조리 속에서, 어쩔 수 없는 힘들고 피곤한 삶을 이어가야만 했던 일반 서민들의 애달픈 모습을, 희극과 비극을 적절하게 섞어내어 씁쓸하면서도 정겹고 안타까우면서도 무언가 모를 애착이 느껴지기도 하는 작품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그동안 여러 작품을 통해 대중적인 요소를 강하게 어필하면서,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사실적이고도 인간미 넘치는 소설을 발표해 온 작가의 이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을 통해 작가로서 그의 새로운 면모를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작품 속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삼촌은 나의 아버지와는 배다른 형제로, 어린 나이에 당시 유교 가풍의 잔재가 남아 있던 집성촌 권씨 가문에 들어와 자라게 된다. 서자라는 굴레를 쓴 채 눈칫밥을 먹으면서도 별다른 문제없이 올곧게 자라던 그에게, 어느 날 영화에서 본 이소룡의 매력에 폭 빠지게 되는데, 이후 그는 이소룡을 자신의 모델로 삼아 우상화하며 무도인의 꿈을 키우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점점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게 되고,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타인과의 구설수에 휘말리며, 마침내는 이상과 현실에서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견디지 못하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의 낮선 서울에서의 생활은 시골에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오히려 홀로 일어서야 한다는 고독과 무료함이 더해지고, 그리고 현실과 적당하게 타협하고 살아가는 유연한 사고의 부족으로 남들로부터 오해와 무시를 당하며, 그를 다시 낙향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몇 년 만에 돌아오게 된 시골의 모습은 예전과는 다른 정부의 산업화 시책에 따라 확연히 변해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일이 문제가 되어 삼청교육대로 끌려가게 되면서, 그것이 계기가 되어 자신의 일생일대에 큰 전환점을 맞게 되기에 이른다.
이 소설이 재미있고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은, 우선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 전개가 마치 한편의 인생극장을 보는 것 같은 사실적인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주인공을 통해 독자들은 그가 접하게 되는 당시 사회상에 따른 다양한 사건들을 만나게 되는데, 주인공이 순정을 잃게 되는 오순과의 풋사랑을 시작으로 충무로 북경반점에서의 고달픈 배달 생활과, 뜻하지 않게 끌려가게 된 삼청교육대에서의 지옥 같이 보낸 나날들,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조폭 세계에 첫 발을 들여 놓게 되기까지 쉼 없이 전개되는 여러 상황들이, 독자들에게는 애틋하면서도 잔잔한 여운을 주고도 남음이 있지 않나 싶다. 또 하나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비주류가 되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의 삶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투영해 보면서, 인생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이 직면해 있는 현실보다 조금은 더 행복하고 편안한, 그래서 가능하면 사회의 주류가 되어 남들보다 우월감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주류가 되어 살아가는 일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주류가 되리라는 꿈을 안고 우리는 살아간다. 이 작품은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현실에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많은 것을 일깨워주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 작품은 풍부한 소재를 바탕으로 대중성과 문학성을 조화롭게 엮으며,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삶을 흥미롭게 그려내어 독자들이 소설을 읽는 재미를 한껏 더해주는 작품으로 생각된다. 덧붙여 작품과는 별개로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국내 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들이 점점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