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향기 - 어떤 기이한 음모 이야기, 개정판
게르하르트 J. 레켈 지음, 김라합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전 세계인이 좋아하는 기호식품 중 하나를 꼽는다면 아마도 커피라고 해야 할까 싶다. 커피와 관련한 통계상의 지표들의 일부를 잠깐 살펴보면 세계 각국에서 하루에 팔리고 있는 커피를 모두 합치면 대략 25억 잔 가량이며, 현재 지구상에서 거래되고 있는 수많은 품목 가운데에 커피는 석유 다음으로 교역량이 많을 정도로, 커피는 우리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상품으로 취급되고 있고, 또한 그 종류도 이제는 사람들의 각 취향에 맞게 점점 다양해지고 고급화 되어가는 경향을 띠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커피가 도입되게 된 시기는 구한말 고종이 을미사변으로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에 1년가량 머무르게 되었을 때, 당시 제공된 커피를 처음 맛을 보게 된 고종이 환궁 후에도 이를 애용해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유길준의 서유견문에 따르면 서양 사람들은 우리가 식사후에 마시는 숭늉처럼 커피를 즐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커피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6.25 전쟁 후 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하게 되면서부터 인데, 그들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도 이후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커피에 대한 수입도 자연스럽게 증가하게 되자, 한때는 정부에 의해 외화를 낭비하는 품목으로 지정되어 수입이 금지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현재는 원두거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체인점을 전국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각광받는 대중적인 기호식품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이 오늘날 전 세계적인 기호식품이 되어버린 커피를 소재로 하여, 이를 둘러싼 음모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쳐냄으로서, 커피가 우리 인류에게 끼친 다양한 역사와 유래, 그리고 커피가 우리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까지를 고려한,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조금은 독특하고 매혹적인 소설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독자들이 이 한권의 책을 통하여 커피에 담긴 여러 문화사에 대한 풍부하고 폭넓은 이야기를 잠시나마 만끽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 된다.

 

크리스마스를 불과 일주일 남겨두고 독일에서는, 노동자의 복지 지원을 삭감하려는 정부의 대개혁 법안을 둘러싼 혼란스러운 정국이 연일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등에서 커피를 마신 250여 명이 독극물에 중독되는 예전에 없던 기이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경찰은 백주대낮에 그것도 인구 유동성이 많은 대도시 한복판에서 진행된 놀랍고도 충격적인 이 사건의 주요 용의자로, 커피에 대한 애호를 넘어 광적인 경향을 보이며 그동안 커피의 생산과 유통과정에서 엄청난 이득을 챙겨왔던 대기업에 횡포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커피로스터 한스 브리오니라는 사람을 지목하여 긴급 수배령을 내리게 된다. 한편 초보 수습기자로 이제 막 방송국의 발을 디디게 된 아가테라는 여기자는, 이 사건을 취재하던 도중 우연하게 브리오니를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가 이번 사건의 어떤 관련이 있다고 보고 확실한 증거를 잡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에게 접근하여,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의 정체를 확실하게 밝혀내어 유능한 기자로 거듭나기 위한 특종을 잡고자 한다. 서로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함께하게 된 이들 두 사람은, 이후 커피독극물 사건이 일어났던 여러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이번 사건의 배후에 시간 늦추기 연합이라는 단체가 암암리에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 단체가 커피 박탈 영향에 대한 연구를 위해 상당한 돈을 투자했다는 뜻하지 않은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고, 이것이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모종의 은밀한 음모가 실제 진행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기에 이른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커피를 둘러싼 이해당사자 간의 알력과 음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실제 내용은, 커피에 관한 인류 문화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등장인물을 통해 커피를 진정 사랑하는 애호가의 커피를 향한 소박하고도 뜨거운 열정, 그리고 커피를 생산하는 대기업들의 이윤획득을 위한 탐욕에 이르기까지, 검은 물방울이라고 일컬어지는 커피에 대한 이모저모를 담아내고 있어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마시는 한 잔의 커피와는 달리, 작품 속 주인공 브리오니가 자신에게 맞는 커피 고유의 순수한 맛을 찾아내기 위해 쏟아내는 남다른 열의와 애정, 또한 250년 동안 커피가 우리의 정치 과정에 어떤 영향과 결과를 낳았는지 등의 여러 이야기는, 커피가 지닌 그 자체의 여러 특성과 지금처럼 일반화되기까지 커피의 지나온 파란만장한 역사를 독자들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날 사람들은 보다 새롭고 맛있는 커피의 맛을 느끼기 위해 커피를 볶는데 필요한 많은 기술들을 개발해오며, 커피 본연의 깊은 향취에 매료를 느끼고 커피를 마시는 그 잠깐의 시간동안 아늑하고 편안한 행복감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커피가 그동안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아는 이는 드물다. 이 작품은 어느 날 커피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하는 작가의 상상력에 기인해, 커피를 어느 한쪽 면이 아닌 다각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게 하는 문학의 깊이가 느껴지는 소설이다. 따라서 독자들이 이 책을 계기로 커피에 대한 다양한 문화사와 함께 커피의 진면목을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잠시나마 갖는 것도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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