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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의 증언 - 나는 왜 KBS에서 해임되었나
정연주 지음 / 오마이북 / 2011년 12월
평점 :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격언에서 보듯, 정권이 새로이 바뀔 때마다 으레 행해지는 것 중 하나는, 지난 정권에 대한 철저한 비리조사를 통해 이에 대한 잘잘못을 바로 잡는 일이고, 또한 새로이 주어진 임기동안 자신이 구상해왔던 정치 철학을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내세웠던 공약을 무리 없이 신속하게 실천하기 위해, 권력자가 자신의 코드에 맞는 사람들을 선택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정치 행위들은 권력자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며, 국민들 역시 그것이 정당한 절차에 의한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힘을 실어주고 응원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그 진행과정에 있어 민주주의에 의거한 합리적이고도 온당한 절차가 지켜지지 않고 탈법이 자행되는 식의 통치권자 의지에 따른 권력 남용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면, 이는 어떤 형식으로든 분명 제고되어야 할 것이며, 더불어 잘못된 부분이 드러난다면 성역에 관계없이 법에 근거하여 단호하고도 엄격한 처벌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지난 1월 12일 국내 언론에 큰 이슈가 될 만한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배임 혐의에 대해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내린 일이다. 하지만 국민들 대부분은 이 사건의 결과를 두고 그 본질적인 배경이 무엇이며,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사실 이 사건은 2008년 당시 선거를 통해 새로이 들어선 현 정권이, 공영방송인 KBS에 대해 검찰과 감사원을 통해 조사를 벌인 뒤, 당시 KBS 사장이었던 정연주씨가 공영방송의 책임자로서 위법적인 사유를 범했다는 이유로 사장의 자리를 강제로 박탈당함으로서 촉발된 사건이다. 이 책은 정연주 전 KBS 사장 자신이 잔여 임기 1년여를 앞두고, 감사원에 의한 KBS 특별감사를 통해 감사보고서가 만들어지고, 이를 근거로 마침내 검찰로부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이라는 혐의로 기소되면서, KBS 이사회의 해임 제청으로 해임되기까지, 그 과정에서 자신의 주변에 정치적으로 어떤 미묘한 사안들이 있었고, 또한 그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당시의 여러 상항들을 종합하여 독자들에게 상세하게 밝힌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그동안 말로만 전해 듣던 권력에 의한 방송 장악의 실체의 과정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 왔으며, 그 결과 언론의 자유가 퇴행함으로서 여론이 어떻게 왜곡되어지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잇을 것으로 생각 된다.
이 책의 저자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말에 따르면,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자신의 퇴임을 압박하는 모종의 여러 움직임들이 있었는데, 그 움직임의 시작은 KBS의 노조에 의한 정연주 퇴진 운동이었으며, 이것을 발판으로 이후 집권여당과 수구언론들이 이에 가세함으로서 그 압박의 세기는 점점 커져갔고, 급기야는 감사원과 검찰까지 동원되면서 최종적으로 KBS 이사회를 통해 강제 해임이라는 불미스러운 일을 자초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의 당시 정국이 돌아가던 상황을 살펴보면, 그 시기에 청와대는 국민의 동의 없는 일방적인 광우병과 연관한 미국과의 소고기 수입 협상 문제를 타결한 뒤에, 이것이 동기가 되어 전국이 촛불정국으로 급작스럽게 변하면서, 대중의 여론이 정권을 불신하는 좋지 않은 상황으로 돌아가자, 언론대책회의를 통해 부정적인 여론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적극적인 관리의 필요성이 시급했던 듯하며, 시국이 혼란스러웠던 당시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정부 개입에 의한 정연주 전 사장의 강제 퇴임의 압력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대목으로 여겨진다. 특히 현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내각 개편에서부터 여러 국내외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대다수 국민들이 동의하기 힘든, 강압적이고도 고압적인 자세로 시종일관 밀어붙임으로서 국민들의 신뢰를 쌓기는커녕 소통의 부족을 드러내며, 오히려 국민을 향해 정부의 의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변명을 둘러대는 안하무인격의 행태를 수차례 보여 왔던 것을 보면, 이 책 저자가 주장하는 정부가 방송을 장악해 인위적으로 여론을 호도하려 했다는 의견의 요지는, 독자의 입장에서 단순한 의혹을 넘어선 상당히 신뢰할 만한 것으로 보여 진다.
이 책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몇 가지 중요한 사항들을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생각되어 지는데, 첫째로 국민의 여론을 정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정부 기관을 동원한 강압적이고 인위적인 방법을 통해, 언론과 방송을 장악하려는 정부의 오만 불손함이 여전히 아무 거리낌 없이 획책되고 있다는 것과, 둘째로 정권을 등에 업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기존 수구언론의 그릇된 행태와 어용 노조의 탐욕적이고 추악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그리고 끝으로 무고한 사람에게 범죄의 올가미를 씌워 서슴없이 저질러지는 마녀 사냥식의 인격살인이,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고 하는 오늘 우리 사회에서 부끄럼 없이 자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의 내용에서 보듯 해임되어야 할 특별하고도 구체적인 사유 없이 정권의 외압에 의해 강제적으로 물러난 정연주 전 KBS사장은, 최근 사법부로부터 무죄라는 최종적인 결과를 얻어냈지만, 정권에 의해 이미 그는 처참하도록 무자비하게 난자당한 지난날의 상처는, 아마도 씻을 수 없는 개인의 불행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이러한 일로 인해 엉뚱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근본적인 정치 개혁과 아울러 민주주의를 가장한 잘못된 행태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엄격한 사법적인 제재가 가해져야 할 것으로 본다.
이 책 저자가 말한바와 같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중요한 기능은, 사실에 근거한 정확한 보도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또한 정권의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는 자세로 잘못된 부분에 대해 비판 기능을 제대로 수행해 낼 때, 비로소 그 존재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고, 그것이 바로 국민을 위한 언론의 본질적인 사명이고 책임이라고 생각 된다. 더불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을 받아 대통령의 직위에 오른 권력자가, 원칙과 상식을 바탕으로 나라와 국민의 희망적인 미래를 위해 정치를 하지 않고, 사리사욕에 심취한 나머지 탈법과 불법을 저지르고 여론을 호도하려 한다면, 그것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도 상당히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는 노릇이다. 결국 이런 일이 사전에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이를 마냥 터부시 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올바른 방향으로 국정이 전개될 수 있도록 깨어 있는 의식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