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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죽길, 바라다 ㅣ 소담 한국 현대 소설 4
정수현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12월
평점 :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랑을 받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분명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설사 권력이나 명예 혹은 많은 부를 지녔다고 해도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행복이 반드시 사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이 언제나 행복을 동반하는 가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우리의 삶에서 다른 어떠한 것보다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만은 틀림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사랑이 충만하게 되면 그것은 때로 우리에게 놀라운 기적을 가져다주지만, 반면에 사랑이 결핍되면 그것은 언제나 우리를 비참하고 힘들게 만들기도 하며,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이 사랑답고 온전하게 양방향으로 자유롭게 표현될 때, 비로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지금보다 한층 조화롭고 아름다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압구정 다리어리, 페이스 쇼퍼 등의 작품으로 솔직하고 거침없는 내용의 전개를 통해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정수현 작가의 최근 신작이다. 이 소설은 작가가 그동안 발표했던 기존 작품과는 조금은 색채를 달리하는, 긴장감과 미스터리의 부분을 가미시켜 장르소설의 느낌을 주면서도, 한편으로 우리의 존재가치가 무엇인지, 또한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하는 것일까 하는 삶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어서, 독자들이 한번 주목해 볼만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소설 속 주인공 재희는 집안의 배경이나 외모적으로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여성이다. 그러한 가운데 이제 그녀가 바라는 유일한 꿈은 뮤지컬 배우가 되는 것이고,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객석의 청중들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일이다. 하지만 그녀가 간절히 원했던 그녀의 소망은, 끝내 오디션에서 탈락되었다는 소식을 함께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고, 낙심하여 집으로 가던 도중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지게 된다. 한편 민아라는 친구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대단한 배경에 아름다운 외모는 물론이고, 현재 촉망받는 변호사로 남부럽지 않은 부유한 삶의 소유자다. 그런데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가던 두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뇌사 상태에 빠져있던 재희의 영혼이 민아의 육체로 빙의되는 묘한 상황을 맞게 되면서 서로 곤란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길이 전혀 달랐던 두 여성은, 갑자기 빙의라는 예상치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재희는 민아의 몸을 빌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숨겨져 있던 자신의 본능을 점차 표면에 드러내게 되고, 반면 민아는 자신의 몸으로 들어온 재희를 어떤 방법으로든 떨쳐내어, 그동안 자신이 이루어 놓았던 위상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후 이 두 여성은 서로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차지하기위해 질투와 시기를 벌이며 이기주의적인 인간으로 변모하게 된다.
흥미진진하고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배경으로, 다소 독특한 두 명의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킴으로서 독자들로 하여금 주목을 끌게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탐욕스런 욕망을 결코 올바르지 않는 방법으로 추구하려는 이기주의를 간접적으로 비판하면서도, 외부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콤플렉스를 숨기고 가식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의 우리 자신이 아닌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특히 잔잔한 로맨스를 밑바탕으로 스릴과 미스터리의 요소를 담아 속도감 있게 표현한 이 소설에서, 독자들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작가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작품에 등장하는 두 여성의 중요한 매개체가 되는 빙의와 해리성 정체 장애라는 부분이 독자들에게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어서 과연 얼마나 공감을 가질까 하는 의문과, 이야기 도입부분에서 중간까지 이야기의 흐름을 통해 점점 증폭되는 기대감에 비해, 결말 부분이 의외로 너무 싱겁게 끝나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은연중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타인과 비교함으로서, 그로 인해 자괴감을 느끼게 될 때, 상처를 받거나 심한 경우 불행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곤 한다. 물론 자신이 남보다 모든 면에서 조금은 우월해지고 싶은 일종의 본능적인 욕망이야 누구나 지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욕망을 억지로 채우려고 한다거나 집착한다면, 자신의 선의적인 의도와는 상관없이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간과해 버린다. 또한 자신에게는 콤플렉스가 될 수도 있는 부분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함으로서, 이를 억지로 무마하려든다든지 이를 숨기기에만 급급하게 된다면, 언젠가 그러한 가식적인 삶에 회의감에 의도하지 않았던 고통에 함몰될지도 모를 일이다. 작품의 말미에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표현되지 않는 사랑, 그리고 사랑이 결여된 행동은 결국 비극을 불러 올 수 있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음을,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듯하다. 따라서 우연한 사고로 하루아침에 육체를 공유하게 된 두 여성의 기막힌 운명을 흥미롭게 펼쳐간 이 작품에 많은 독자들의 관심이 있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