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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유물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7 ㅣ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7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은 공포를 느끼게 될 때, 공포가 일으킨 여러 가지 생리적인 반응들을 상쇄하기 위해 엔돌핀 같은 호르몬을 생성하게 되며, 공포가 사라진 다음에도 그 물질들은 사라지지 않고 잔존해 있으면서, 우리들로 하여금 일종의 쾌감이나 성취감을 느끼게 해준다고 한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몰라도 공포가 주는 짜릿함을 느껴보려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듯해 보인다. 그런데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공포를 잠시 느껴봄으로서, 억제되어 있던 자신의 욕구나 혹은 해소되지 않았던 스트레스를 푸는, 긍정적인 차원에서 하나의 대안적인 방법으로 삼아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듯하다. 악녀의 유물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작품은, 작가치고는 다소 어울려 보이지 않는 실제 의사라는 다소 특이한 전문적인 직업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외과 의사라는 작품을 통해 공포, 호러 분야에서 이미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테스 게리첸의 최근 신작이다. 그녀의 작품들이 갖는 장점이자 특징은, 다루고 있는 주요 내용의 밑 배경에 다른 작품에서 보기 힘든 의학스릴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인데, 이 점은 독자들이 여타의 작품과는 차별화 되어 있으면서도 신선하고 색다른 감상을 할 수 있는 핵심적인 부분이기도 해서,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이점을 중시해 그녀의 작품들을 한번 눈여겨 볼만 하다.
작품 전반에 걸쳐 공포와 스릴의 재미를 느껴볼 수 있는 이 소설의 일부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어느 날 미국 보스턴의 크리스핀 박물관에 지금으로부터 2천년이 지난 미라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언론보도를 통해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일명 마담X라고 불리는 미라는, 겉으로 포장되어 있는 재질의 경우 방사성 탄소측정법에 의해 고대의 것임이 밝혀졌지만, 실제 몸체에 대한 CT촬영의 과정에서, 마우라 법의관은 미라의 내부에 금속으로 보이는 의문의 작은 물체를 발견하게 되면서, 또 다른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계기를 맞는다. 이후 경찰은 이 의문의 금속이 과연 무엇일까를 두고 자체 조사를 한 결과,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은 권총의 총알이었음을 밝혀낸다. 결국 경찰은 이 미라는 고대에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마치 고대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교묘하게 위장된 사체라는 것에 심증을 굳히고 곧바로 수사에 착수한다. 그리고 형사 리졸리와 그녀의 파트너 프로스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미라가 최초 발견된 크리스핀 박물관의 지하를 수색하다가, 이번에는 신체부위가 없는 시체의 머리 하나를 찾아내면서, 이 사건이 단순한 범죄가 아닌 동일범에 의한 연쇄살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사체에 대한 신원확인은 물론, 박물관 직원들을 대상으로 탐문조사를 벌이게 된다.
범죄수법이 기존의 연쇄살인범들이 저지른 살해방법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가운데, 경찰은 이 사건이 미라와 연관하여 고고학의 전문적인 지식 없이는 이루어 질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주요 인물이 되는 모녀 메데이아와 조세핀의 슬픈 과거의 운명적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들과 직접적인 관계의 축을 이루는 제3의 등장인물이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사건 자체가 이미 오래전에 저질러진데다가 사건의 진실을 가로막는 새로운 방해자가 나타나면서 사건은 의외로 난항을 겪는다. 그렇다면 자신의 모습을 결코 드러내지 않으면서 잔인하고 해괴망측한 살해방법을 택한 범인은, 무슨 이유로 이와 같은 끔찍한 연쇄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며, 조심스럽게 그의 뒤를 쫓는 형사 리졸리는 복잡하게 얽힌 이 사건을 과연 어떻게 해결해 가는 것일까.
테스 게리챈의 마우라 아일스 시리즈로 일곱 번째에 해당하는 이 소설은, 공포 호러물의 대표작가라는 그녀의 명성에 어울릴 만큼, 탄탄한 스토리와 치밀한 구성, 그리고 무엇보다 결말 부분에서 펼쳐지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의 묘미를 선보이고 있어, 개인적으로 여타 독자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날지 그 귀추가 주목되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번 그녀의 작품은 연쇄살인 사건의 배경에 고고학에서 흔히 다루어지는 이야기를 연관시킴으로서, 고대 이집트의 미라 제조 과정과, 남아메리카의 일부 부족에서 행해졌던 잔차라는 독특한 전통풍습을 담아, 이전 작품에서 보듯 단순한 추리 차원의 재미를 넘어 고대 역사와 과학을 아우르는 폭넓은 시도가 돋보이는 듯하다. 특히 작품 초반에 깔려 있는 복선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듯, 중반 이후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여러 악의적인 모습들은 독자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해 보인다. 물론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던 이야기가, 끝부분에 와서 다소 맥이 풀어지는 아쉬운 점이 없진 않지만, 인간 본연의 극단적인 내면을 깊이 파헤치면서도, 이를 교묘하게 공포와 스릴로 연결시키고 있어서,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한번 읽어 볼만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다. 더불어 연쇄살인범에 의해 저질러지는 독특한 살해방법과, 그런 추악한 고리의 끈을 자르기 위해 집요한 추적에 나서는 형사의 숨 막히는 대결로 압축되는 이 작품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공포가 주는 색다른 매력에 잠시 빠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