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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죽었다
론 커리 주니어 지음, 이근애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현실적인 것을 넘어서는 가능하지 않은 사안을 두고, 다른 방향으로 가정하여 전제해 놓은 후에, 그래서 만약 그러한 전제대로 어떤 일이 벌어진다는 상상을 누구나 한두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엉뚱한 생각에 대해 대부분 조금은 색안경을 끼고 이상한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이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듯해 보여도, 우리가 한편으로 생각지 못했던 또 다른 새로운 관점을 도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자그마한 의의를 부여하는 것도 가히 나쁘지는 않을듯하다. 물론 지나간 과거 사실에 대해서는 관두고서 말이다. 이 책은 우선 제목에서부터 조금은 도발적으로 보이는데, 실제 그 내용을 살펴보면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무뎌진 정신을 강하게 자극한다고나 할까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 독자들에게 생각지 못했던 정신적 문제의식을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다소 독특한 소설로 기억 된다.
이 책은 신이 인간의 몸을 빌려 하늘에서 내려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고, 그 죽음이 인간에게 알려졌다고 가정 하에 생각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아 독자의 눈길을 끈다. 제목에서 보여 지는 것처럼 책의 내용이 종교적인 색채가 많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지만, 실제 그 내용에 있어서는 어떤 종교적 비판의 내용을 담은 것도 아니며, 더군다나 심오하고 철학적인 진리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지 않는다. 단지 신이 이미 죽고 따라서 그 존재의 가치가 없을 것이라고 가정 한다면, 그 여파로 우리들이 생각지 못했던, 여러 인간들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어서 의외로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이 책은 신이 죽은 후에 예상 가능한 일상생활에서의 인간 군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개의 단편으로 엮어 놓았다. 우선 첫 번째 단편에서 신은 어느 날 인간인 여자의 몸을 빌려 하늘에서 내려와 아프리카 난민이 되어 나타난다. 그리고는 볼품없는 초라한 옷차림에 수없이 꺼내 먹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탕수수가 담긴 마대자루를 하나 달랑 들고서, 난민의 대열에 끼어 무슨 목적에서 인지 남자아이를 하나를 찾아 나서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신은 종교와 인종 간의 갈등으로 빚어진 극심한 내란으로 헐벗고 굶주리는 난민들을 보면서, 이러한 현실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향하여 죄책감, 자괴감을 토로한다. 신은 결국 약하고 약한 아프리카 난민의 모습으로, 며칠 동안의 굶주림과 방황 끝에, 마침내 들개에게 잡아먹히며 쓸쓸히 죽는다. 그리고 이후 단편들은 신이 없는 세상이라는 가정 하에 인간 사회에의 여러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 중에서 결손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정신적으로 의지할 곳이 없어지자 마침내 공황상태에 빠져,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일종의 자살 게임을 벌이는 이야기와, 신의 부재를 알고 문득 두려움을 느낀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온당하게 보이지 않음에도 새로운 신을 찾아 나서게 되는 등의 내용은 독자의 입장에서 다소 충격적으로 읽히지만, 그럼에도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듯해 보인다.
작가는 이 책의 말미에서 말하기를,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라는 소설 속 인물의 주장을 전제로 ‘신이 죽었다면 모든 것이 허용될까?’라는 질문에 근거를 두고 상상력을 기반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말한다. 유신론자이든 무신론자이든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그 일면에 인간 본능에 의한 탐욕의 모습이 가득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쉽게 찾아 볼 수 있기도 하다.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남을 짓밟아야 하고 단지 권력이나 자신의 명예를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저질러지는 것처럼, 과거 역사에서 그리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오늘날에도 우리는 이미 수차례 보아왔고 경험해왔다. 즉 인간 스스로가 신의 가르침대로 간혹 정의나 양심에 호소하고 있기는 해도, 우리 사회의 나타나는 결과를 보면 대개 그러한 것과 결코 부합되지 않는 많은 일들이 생기곤 한다. 따라서 그런 이유에서 보면 결국 신이 있다고 믿는 세상이나, 신이 없다고 가정 하에 진행되는 세상은 어쩌면 그리 큰 차이가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과 연관하여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것은,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점에서 행여 원치 않는 극한의 상황에 처해 있을 때, 희망적인 무언가를 기대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신의 존재에 대해 그래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단순히 어떤 목적을 위한 도구 차원에서 이용되지 않는 순수한 관점에서 말이다. 이 작품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다소 엉뚱한 전제하에, 가능성 있는 몇 가지의 내용들을 펼쳐냄으로써 독자들에게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풍자가 가득한 유쾌한 소설로, 독자들로 하여금 색다른 느낌을 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