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망명 - 인도네시아의 대문호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와의 대화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안드레 블첵.로시 인디라 지음, 여운경 옮김 / 후마니타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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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간의 석유와 사막이 대표적인 이미지로 부각되는 중동 지역의 여러 나라의 정치 상황들을 살펴보면, 그동안 장기 독재정권에 핍박을 받으며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아랍 국민들이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고조에 이르면서, 향후 민주적인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세계 각국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 1월 튀니지 시민혁명으로 시작된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민주화에 대한 열풍은, 이른바 '아랍의 봄'이 가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도한 바와 같이 지금까지 그렇게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이러한 걷잡을 수 없는 아랍 민주화 시위를 두고 현재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국민들이 행여 그 영향을 받게 되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도네시아는 이미 1997년 국가부도위기에 몰리면서 이를 계기로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국민들의 불만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32년간 군부 독재를 자랑하던 수하르토 정권을 무너트리는 결과를 낳았지만, 당시 반 수하르토 노선을 택했던 대부분의 군부 엘리트들에 의한 정치적 영향력은 민주화 이후에도 지속되었고, 새롭게 등장한 메가와티 정부는 여전히 군과 경찰에 의해 자행되는 무자비한 불법연행, 납치, 고문은 물론 심지어 살해 등의 초법적인 만행에 대해 묵인하는 모습을 취해왔다. 결국 지금의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전 정권이 행해왔던 것과 별다를 바 없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부정부패의 만연과 점차 늘어나는 실업률과 물가압박으로 건전하지 못한 불안한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과거 독재정권을 걷어내고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민주화로의 성공을 지금껏 제대로 이루지 못한 것은, 과연 어떤 연유에서 기안한 것인지 그 내용을 잠깐이나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인도네시아의 대문호이자 사상가이며 역사학자 그리고 한때 언론인으로까지 활동했던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가, 말년에 자신이 태어나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하기까지 식민지배에서 이후 독재정권 시절 고통스럽고 암울했던 지나온 자신의 삶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 직접 눈으로 보고 실제 경험한 여러 사실들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적인 측면에서 인도네시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망해 보고자 했던 대담집이다. 그는 네덜란드에 의한 식민통치에 대한 투쟁과 이후 수하르토의 군사독재체제에 반대하여 온몸으로 저항하며 맞서다가 결국 체포되어, 강제수용소 생활과 가택연금과 같은 가혹한 인권유린을 당하면서도 자신에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고민했던 저항적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인물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작가와 사상가로서 알려져 왔지만, 인도네시아 정부의 철저한 언론통제와 물리적인 압력으로 정작 자국 내의 국민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그의 문학작품 중 대표작으로 꼽히는 부르 4부작은, 어느 자바 지식인이 식민 제국주의에 저항하면서 민족주의 운동가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아내면서 식민주의와 자본주의 잔혹함을 나타내어 세계 각국으로 출판되어 호응을 받았고, 그 외의 여러 작품들을 통하여 1995년 언론 문학 창작 분야에서 그 업적을 인정받아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으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거론될 만큼 해외 문학계와 언론으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2006년 내적 망명객이 되어 쓸쓸히 그의 생을 마감해야 했다.

그는 이 책에서 자국의 국민들이 한때 민주화의 열망을 가지고 수하르토 독재 정권을 무너트리기는 했지만, 오늘날 과거와 비슷한 전철을 또다시 되밟고 있는 것은, 식민 지배체제하에서 일시적으로 불었던 사회 구조적인 개혁이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고, 한편 식민 정권에 일조했던 일부 엘리트들이 권력을 쟁취하면서 당시 새로운 사회 문화로의 생산이 이루어지지 못함에 따라, 이후 대부분의 국민들이 정부가 조장하는 소비문화에 심취되어 개혁적인 동력이 점차 소멸되었음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는 1940년 후반 급진적인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운동이 있었을 때, 새롭게 들어선 수카르노 정부가 친 식민주의에 앞장섰던 세력들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던 것에, 오늘날 문제의 핵심에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물론 당시 시대적인 상황에 비추어 세부적인 문제를 두고 이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여러 논란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는 당시만 해도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자신의 문학 작품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면서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찾고자 했던 듯하다. 이후 그는 수카르노 정권을 옹호하면서도 그 안에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자 했지만, 1965년 수하르토를 주축으로 군부의 쿠데타에 의한 집권을 시작으로, 그가 시도하고자 했던 모든 것이 좌절되는 불행과 아울러 유배와 강제노동, 그리고 가택 연금에 시달리는 혹독한 시기를 보내게 되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그는 서구 열강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새로운 군부정권이, 당시 2백만 명에 가까운 공산주의자와 급진주의자, 그리고 개혁 운동가 등 수카르노를 지지했던 세력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등의 만행을 벌인 것을 두고, 그러한 공포, 탄압정치가 결국 자국의 문화 기반이 거의 없는 오늘의 허약한 인도네시아를 존재케 했다고 말한다.

그는 국제사면위원회 등 여러 국제단체의 도움으로 마침내 구금에서 풀려나온 후,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자신에 조국의 현실을 목도하면서, 결론적으로 젊은 청년들이 이제라도 하루빨리 낡은 소비문화에서 탈피해 생산적이고 주체적인 인도네시아만의 새로운 문화 창조와 사회개혁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이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당시 대담을 통해 자신의 조국에 현재 발을 내디디고는 있지만, 내적으로는 스스로 망명 상태에 놓여있음을 아쉬워하면서, 다시는 자신과 같은 똑같은 전철을 밟는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래왔던 듯하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하며 비판하고 올바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국민으로서 당연한 일임에도 단지 이를 반대한다고 해서 자신의 조국으로부터 버림받고 외톨이로 살아가야 하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비록 짧은 대담집에 불과하지만 이 책에서 그가 말한 내용을 토대로 우리의 처지에서 주목하고 일깨워야 할 점은, 오늘날 우리가 민주화를 위해 그동안 많은 피를 흘리며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아직까지도 과거 잔재에 대한 청산의 문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법의 집행에 있어 민주주의 원칙과 상식에 어긋난 일들이 여전이 일어나고 있으며, 또한 사회 경제적인 측면에서 양극화 현상이 날로 심해지고 있는 등의 사회 불안적인 요소들을 어떻게 해결해 갈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특히 젊은이들로 하여금 정치 불신과 혐오를 안겨주었던 기성세대들의 안일하고 무책임한 정치적인 행태들은 분명 비판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민주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에 비추어 자신을 되돌아보는 하나의 계기로 삼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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