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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양상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11월
평점 :
시대가 변하고 언제부터인가 다양한 문화로의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우리의 음식문화도 한층 다변화의 양상을 띠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우리나라의 어느 도시를 가도 각 지방의 특색 있는 음식을 거의 모두 접할 수 있고, 심지어 외국의 전통적인 음식점들도 하나 둘씩은 들어서 있게 마련이어서,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원한다면 손쉽게 다양한 요리들을 즐길 수 있는 듯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꼭 필요한 것이 의식주인 것에서 보듯, 먹을거리는 우리 생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아무리 영양가 있고 몸에 좋은 음식이라 하더라도 매일 같은 형태의 식사를 먹다보면, 간혹 오늘은 무언가 특별한 것을 먹어 볼까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미각이 어느 순간 불현듯 무덤덤해짐을 느끼게 되거나 하여 입맛을 잃어 버렸을 때, 이를 보완해줄 방편으로 색다른 자신만의 음식을 찾게 된다. 비록 남들의 눈에 보기에는 작고 초라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음식을 매개로 잠시 동안만이라도 가슴 푸근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우리에게는 상당히 의미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일본의 대표적인 감성작가로 알려진 에쿠니 가오리가 새롭게 발표한 ‘부드러운 양상추’는, 음식을 소재로 작은 음식 하나에도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 자신의 삶이 때로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시간을 통해 기억되는 일상이 훗날 아름다운 추억으로 새겨질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에세이라는 생각이어서,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때로 메말라져 있는 정서에 따뜻하고 촉촉한 감성을 전달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책속에서 맛있는 생선 요리 중에 하나로 꼽히는 대구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작가는 추운 계절이면 자주 먹게 된다는 대구를 바라보면서, 대구는 촐랑거리지도 않고 마음씨가 고우며 그래서 대구를 사려 깊은 물고기라고 스스로 규정지으며, 이를 통해 여러 물고기들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연어는 친절하며, 정어리는 느긋하고 명랑하며 전갱이는 성실하지만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따끈하게 데워진 정종의 안주에 어울릴 것 같은 대구를 보고, 한편 투박해 보이지만 지성과 품위가 있어 보이는 그것을 멋진 생선으로 묘사하고 있다. 과일과 연관한 이야기에서도 그녀는 과일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계절별로 등장하는 과일들을 열거하면서, 과일에 따라 익는 속도도 다르지만 이를 적절하게 나누어 무르지 않게 먹을 수 있는, 식용기한도 각기 다른 과일을 일일이 파악해 내어 과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당일치기로 신칸센 열차를 타고 짧은 여행을 하는 동안, 도시락을 즐기는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기차 여행을 즉시 떠나게 만들 만큼 정겹게 느껴지지 않나 싶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그래서 위를 채우기보다 혀의 욕구에 이끌려 생선 구이와 샐러드를 만들고, 어느 책속에 등장하는 버터밀크의 이야기에 기억하면서 우유를 싫어함에도 왠지 버터밀크가 맛있을 것 같다고 생각할 만큼,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작가의 음식이야기는 한편으로 너무 담백하고 때로 시큼하기도 하며 달콤해서 그 맛이 생생하게 전해져 오는듯하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대하게 될 때, 간혹 그 음식으로 인해 깊은 사연이나 특이할 만한 사건이 자신과 연관되어 있는 경우, 문득 과거의 사실을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쓴 웃음을 짓게 되거나 행복감에 잠시 젖어드는 묘한 감정 상태를 한두 번쯤 경험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설사 그런 경우가 없다하더라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왠지 파전과 함께 동동주 한잔이 생각나는 것처럼, 진수성찬이 아닌 평범한 작은 음식 하나가 은연 중 우리의 삶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본다. 기쁨이란 것이 또한 행복이란 것이 어디 먼 곳에 있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어디론가 훌쩍 여행길을 떠난 후, 그곳에서 우연하게 만나게 되는 향토색이 짙은 음식에서 여태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맛을 음미하게 될 때, 혹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나 연인과 함께하는 오붓하게 즐기는 식사시간은, 굳이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얻게 되는 우리 삶의 기쁨이고 행복의 하나라고 생각 된다. 이 책 작가의 말대로 자신이 좋아 하는 음식이란, 한 입 먹으면 마음이 푸근해지고, 훈훈하게 몸을 데우는 동시에 허기를 살짝 채워주며 울적한 기분을 달래주고, 우리로 하여금 기운을 내게 하는 바로 그런 것이다. 작가 에쿠니 가오리가 좋아하는 음식에 얽힌 사연과 추억, 풍경 그리고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영혼과 마음이 따뜻해지는 정겨운 시간을 즐겼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