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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사안을 두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의견들이 나올 수 있고, 또 이를 어떤 방향으로 이해하고 인식했는가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것처럼, 인물에 대한 평가 역시도 아마 그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부차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본질을 호도되지 않도록 하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평가를 보면, 많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정도로 자신의 역량과 업적이 뛰어났음에도 어떠한 이유에서 인지 사실이 곡해되어 세인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가 있는 반면에, 그 사실과 내용이 과대포장 되거나 왜곡되어 잘못 알려지면서 후대에 이르러 본의 아니게 추앙을 받는 인물들이 있을 것으로 본다. 정치적인 인물을 빼고 조선 시대의 여성 중에서 우리에게 알려진 그나마 유명한 인물을 말하라고 한다면, 대개 많은 사람은 신사임당이나 황진이 정도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에서 끝나버린다. 의아한 것은 당시에도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비범한 능력을 보인 여성들이 분명히 여럿 있었을듯한데,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것은,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만큼 우리들의 관심과 또한 여성인물에 대한 평가가 올바르게 이루어져 있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따라서 그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을 짚어 본다면 바로 허난설헌이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은 조선의 천재적인 여류시인이라고 평가받는 허난설헌이, 자유로운 가풍 속에서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자랑하며 당대의 시인으로 알려졌던 손곡 이달에게 시를 배우면서 자신의 기재를 펼쳐가던 중에, 15세가 되어 안동김씨 가문의 며느리가 된 이후로 그녀의 삶의 방향이 바뀌면서 불행하게도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그녀의 일대기를 소설화함으로써 시인이자 문학가로서 그녀의 생애를 오늘의 시각에서 재조명하고자 했다. 사회적 제약이 유독 심했던 조선 시대에 태어난 재능 있는 많은 여성은, 자신들이 처한 환경을 생각해보면 대부분 불우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시대적 여건이나 가치관이 여성의 처지에서 볼 때, 그들에게는 체계적인 교육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을뿐더러, 더구나 전통적 관습에 따라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게 됨에 따라, 시댁에서의 낯선 환경과 엄한 위계 속에 편입된 채 살아가는 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던 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 속에도 자세히 나와 있듯이 수많은 여성이 그래 왔던 것과 같이, 허난설헌 역시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으면서도 그녀의 남편이나 시댁에 의해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남편이 몇 차례의 과거 시험에서 낙방함으로써 글공부를 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따로 떨어져 홀로 지내야 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 때문에 호된 시집살이 와중에도 틈틈이 남편을 그리워하는 글을 지었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음탕한 여자로 취급받았으며 이후 어렵게 두 아이를 낳았지만, 이마저도 시부모에 의해 자신의 품속에서 키우지 못하고 결국 이승으로 보내야 하는 뼈아픈 고통 속에서 지내야 했다. 더불어 그러한 고통에 더하여 그동안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고 아낌없는 사랑으로 보살펴주었던, 그래서 그녀에게는 정신적으로 큰 버팀목이 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 허엽과 그녀의 오빠 허봉이 뜻하지 않은 객사를 당하게 되었던 것도, 그녀에게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하나의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작품 속에 간간이 등장하는 허난설헌의 글들을 보면 자신의 그러한 슬픔과 회한을 미학적으로 표현되었음을 볼 수 있고, 현실에서 이루지 못했던 행복한 삶을 동경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갈구했음을 엿볼 수 있지 않나 싶다.
이 작품은 조선의 봉건주의적 사고를 은근히 비판하면서, 허난설헌의 기구한 인생을 사실과 허구를 적절하게 조화시켜 드라마틱하게 펼쳐나가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잔잔한 여운과 함께 심금을 울리게 한다. 특히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그녀의 천재적인 문학의 재능이 이제는 대중들에게 폭넓게 알려져야 하지 않을까 싶고, 허난설헌이라는 인물에 대해 평가가 왜곡되지 않도록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더욱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작품의 내용을 통해서 볼 때, 그녀의 처지에서 보면, 자신이 말했던 여자로 태어난 것, 그것도 조선의 여자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이 후회된다는 말은 괜한 것이 아닌듯해 보인다. 허난설헌은 분명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행한 삶을 살았던 듯하다. 하지만 시대가 바뀐 만큼 이제는 그녀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잘못된 인식들은 바뀌어야 할 것이다. 조선의 으뜸가는 명문장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을 발견하고도 이를 활짝 피워보지도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그녀의 넋을 기리며, 아무쪼록 독자들이 이러한 책을 통하여 그녀의 문학적인 진가를 다시금 되새겨보는 좋은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