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터 킹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1 아서 왕 연대기 1
버나드 콘웰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세계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며 명망을 떨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위대한 인물들은 수없이 많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대에는 영웅으로 취급되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런 저런 이유로 그 지명도가 떨어지거나 혹은 불명예를 안고 있는 인물들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부정적인 면이 많음에도 이를 슬그머니 감추고 좋은 부분만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어이없게도 위인으로 추앙 받는 이도 더러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와는 별개로 역사 속의 실존인물인지 아닌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음에도, 후대로 내려오면서 해당인물과 관련한 이야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각색되어져, 실제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우리에게 잘못 알려져 있는 인물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이 범주 안에 들어갈 인물들은 여럿 있을 것이지만, 그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5세기에서 6세기경 영국의 전설적인 왕이며 나라를 살린 구국의 영웅으로 묘사되고 있는 불굴의 전사이자 기사도의 상징이었던 아서왕이 아닐까 싶다.

저자 역시도 이 책의 말미에서 밝혔지만, 브리튼의 역사 중에서도 특히 아서왕이 존재했던 시대는 암흑의 시대였고, 그런 이유로 그 시대의 사건과 성격에 대해 알려진 역사의 근거자료가 희박하여 아서가 정말로 실존했던 인물이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라고는 말할 수는 없으나, 6세기 초 즈음에 아서와 유사한 이름을 가진 브리튼의 한 영웅이 있어 색슨 침략자를 막아냈다는 역사의 내용으로 볼 때, 그 개연성을 있어 보인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아서왕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내거나, 또는 그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신화적인 시각이나 판타지적 것에 의존하여 아서왕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당시 역사의 사실에 최대한 근접하여 이를 바탕으로, 독자로 하여금 흥미진진하면서도 스릴을 만끽 할 수 있는 근래 보기 드문 역사대작으로 엮어져 있어서, 역사소설을 좋아 하는 독자라면 꼭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이 작품의 1부 ‘윈터킹’에서는 브리튼의 왕이었던 유서가 죽고 난 뒤, 그가 늘그막에 얻은 갓난아이에 불과한 모드레드 왕자가 그의 뒤를 잇게 되지만, 불안한 왕권을 틈타 왕위를 노리는 브리튼 내의 모종의 세력들이 준동하게 되고, 한편으로 비록 유서의 서자로 태어났지만 불굴의 전사로 성장한 아서는 어린 모드레드의 수호자가 되어 이를 지켜나간다. 그러나 아서는 이웃 왕족의 공주였던 자신의 약혼녀를 배신하고 몰락한 왕족의 공주 귀니비어를 택함으로서, 이문제가 빌미가 되어 결국 같은 브리튼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게 되는 사분오열의 과정을 겪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아서가 중심이 되어 브리튼을 하나로 통합해가는 내용이 흥미 있게 그려져 있다.

2부 ‘에너미 오브 갓’에서는 브리튼 간의 최대 전투였던 러그 계곡에서의 싸움에서 멀린의 도움으로 승리를 거머쥔 아서가, 브리튼 땅에 다시 평화를 가져오지만, 아직 완벽하게 봉합되지 않은 브리튼의 내부적인 문제들, 다시 말해 아서와 그의 조력자가 되는 마법사 멀린과의 보이지 않는 미묘한 갈등, 그리고 브리튼 내의 기독교도와 드루이드 간의 알력으로 서로를 무시하고 배척하는 알력과, 또한 아서가 왕으로서의 자질을 지녔으면서도 왕권에 관심이 없는 자신과 반대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부인과의 심각한 문제 등이 나타나 있다.

대단원이 되는 3부 엑스칼리버에서는 아서가 색슨족을 등에 업고 돔노니아의 왕이 되려했던 란슬롯을 물리치고 왕이 역할을 대신하기로 마음먹지만, 브리튼 내부의 문제는 아물어지기보다 오히려 아서를 더욱 어렵게 만든 상황으로 치닫는다. 이에 아서는 내부의 문제를 외부에서 풀기로 하고, 결국 그동안 벼르고 별렀던 색슨족과의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일생일대의 전투를 벌이게 된다. 여러 면에서 아서는 불리한 입장에 놓여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전쟁에서 다시 한 번 멀린의 도움으로 아서는 이 전쟁에서 어려운 승리를 거두고 애초 모드레드를 왕위에 앉힌다는 자신의 서약을 지켜냄과 동시에, 그는 가족과 함께 돔노니아를 떠나 평화로운 생활에 만족한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는 달리 시간이 가면 갈수록 브리튼의 포위스는 날로 쇠퇴하여가고 돔노니아는 무법천지의 아수라장이 되고 마는 엉뚱한 결과를 낳으며 또 다른 분열의 조짐을 보인다.

이 작품은 모두 각각 3부로 나뉘어져 이천여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엄청난 규모의 스케일은 물론이고 마치 한편의 영화 장면을 보는 것과 같은 호쾌한 액션,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은밀하게 전개되는 사랑과 우정, 음모와 배신 등의 이야기가 조화롭게 잘 어울려져 있다. 특이할 만한 것은 기존 다른 책이나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아서왕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과는 다른 상당한 변화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일례로 멋지고 훌륭한 기사로 생각되었던 란슬롯은, 권력을 탐하는 기회주의자로 등장하고, 아서의 부인 귀니비어 역시 아름답고 고귀한 여성스러운 모습과는 달리, 권위와 부를 사랑하는 탐욕적인 인물로 그 속내를 드러낸다. 아서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때로 영웅으로서 품위가 느껴지는 것도 있지만, 현실과는 괴리된 이상주의자의 모습이 간간히 나타남을 볼 수 있다. 또 하나 이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은, 작품의 화자를 아서의 충직한 부하였던 데르벨로 지정해, 가급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아서의 이야기 풀어가려 했다는 점과,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본래의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내, 그동안 신화적인 요소가 가미되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주로 남성들의 거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작품을 대하는 독자들의 폭이 다소 제한적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량 있는 작가에 의해서인지 몰라도 누구나 쉽게 책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명작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어, 독자들이 이 작품을 통해 아서왕 이야기에 대한 재미를 한껏 누렸으면 싶은 생각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