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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역사 - 왜 상식은 포퓰리즘을 낳았는가?
소피아 로젠펠드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상식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대개 어떤 사실이나 가치에 대해 사회구성원들로 하여금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동서양에 구분하지 않고 동일하게 적용한다 해도 아마 무리는 없을 것이다. 만약에 보편적이지 않은 극단적인 내용의 것을 가지고 상식이라고 주장한다면, 아마도 일반적인 가치관을 부정하는 곤란한 상황에 우리가 직면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의 일면을 보면 상식에 어긋난 억지에 가까운 많은 일이 벌어지면서, 이를 두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대중들의 열망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인터넷 확장에 따른 미디어의 보급으로 정보의 대중화에 힘입어, 정치권에서는 포퓰리즘, 즉 대중들의 의견을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정치에 반영한다는 하나의 전략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형태가 각종 정책 마련에 현실성이나 가치판단, 옳고 그름 등 본래의 목적을 외면하고, 일반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하여 이를 호도하여 지지도를 이끌어내어 권력을 쟁취하려는데 그 중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상식이 아닌 것이 상식으로 왜곡된다거나 혹은 상식을 위장한 편견에 불과한 것이라면 이는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상식이라는 개념의 흐름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서, 상식이 시대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정의되고 이용됐는지,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의 변화된 내용을 통해 독자들이 상식의 본질과 그 의미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책 저자에 의하면 상식은 매우 오래된 용어이며, 그 기원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태어나면서 5가지 기본적인 감각을 지니게 되는데, 이 감각들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에는 공통감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통감각의 이해는 중세를 거쳐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학문 분야와 맞물리면서 다양하게 논의되기 시작했고, 이것은 다시 철학의 사상으로 이어져 오면서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상식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근대 초기 유럽에서 상식을 거론하는 것은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지혜에 호소하는 지름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상식은 너무 자명한 진리 혹은 특별한 지식이 없이도 누구나 파악할 수 있는 통념을 의미하게 되었으며, 정치영역으로까지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인들이 평범한 지식이라고 말했던 상식에 대한 개념이, 근대로 넘어오면서 정치적인 포퓰리즘으로 변화할 수 있었던 그 이면에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었는데, 그 하나는 도시들의 성장이었다. 이들 도시의 특징은 주로 상권과 연결된 런던과 파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상들이 형성될 수 있는 공간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당시 다양한 종교와 사상이 혼재했던 도시들 안에 새로운 사회적 세력들, 즉 소설과 연극, 그리고 신문기사, 철학적 논문, 강의 등을 통해 자신을 진리의 대변자라고 자처했던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높은 사회적 지위 또는 지적 영향력을 누리던 일부 특권층에게 도전하면서 정치판으로 적극 참여를 도모했던 것이다. 일례로 17세기 영국은 명예혁명을 거치면서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어느 정도 정착시켰고, 이때 이질적인 사회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한 목적으로 떠올린 것이 바로 상식이었음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상식은 18세기 초부터 이미 역사와 법, 관습, 신앙, 논리, 이성 등 기존의 권위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는 인식적 권위로 평가받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20세기 무렵에는 민족주의와 연결되면서 많은 정치인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왔다. 물론 다다이즘을 통한 상식의 권위를 포함한 모든 권위의 구조를 해체하려 노력이 없진 않았으나 그 힘은 미미했고, 이후 파시즘과 공산주의에 맞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면서, 오히려 새로운 상식의 정치이론이 민주정치의 버팀목으로 탄생했음을 볼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상식은 보편적이고 영원하며 그 누구의 공격대상이 되지도 않고, 이데올로기에도 초연하며 모든 사람의 경험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어서, 오늘날 정치인들과 광고업자들은 이를 이용하여 원하는 바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며, 또한 상식은 도시에 집중해 있으면서 언론과 같은 인쇄매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엘리트들에 의해 정의되고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한다. 그리고 실제 계급 간 유대 또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 못지않게 새로운 형태의 배제를 만들어 낸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테면 어떤 사항을 두고 논쟁이나 새로운 갈등이 생겼을 때 이를 봉합하기 위해 상식에 호소하게 되는 경우, 이를 종식하기보다는,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서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공통가치의 촉진이 필요하고, 동시에 정치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상식이라 불리는 무언가가 있다는 인식이 분명히 있어야 하겠지만, 반면에 비공식적인 시스템과 정치권위로서 언제나 민주주의 이상들을 훼손시키겠다고 위협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가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상식이 자주 동원되고 있는 오늘날의 정치지형에서 우리로서는, 프랑스의 대표적 사회주의 이론가 피에르 부르디가 ‘상식은 우리가 모두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돕는 한편으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말과 들을 수 있는 사람을 제한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던 내용에 그 진정한 의미를 깊이 상기시킬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