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길 1 - 노몬한의 조선인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운명이란 것에 대해 누군가는 그것은 이미 정해져 있어 어떤 변화를 모색하기보다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며, 또 어떤 이는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들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에서 많은 사람들에 지나온 삶의 발자취들을 살펴보면, 운명은 후자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왜냐하면 과거 역사의 여러 사실들을 통해, 이를 증명해 주었던 위대한 인물들의 행적을 우리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탈리아의 정치 사상가·외교가·역사학자였던 마키아벨리가 말했던 ‘운명은 우리의 행위에 절반을 지배하고, 다른 절반은 우리 자신에게 맡겨져 있다’는 문구에서 보듯, 운명이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긴 해도, 주어진 운명에 굴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신념과 의지를 우리가 얼마만큼 실천할 수 있는가에 따라 그 변화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우리는 오늘도 선택이라는 갈림길에서 어떤 방향이 나의 삶에 진정한 보탬이 되는지를 두고 적잖은 고민과 갈등을 겪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그러한 선택에 있어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한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며, 실제 모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방영되어 시청자들로 하여금 주목을 이끌었던 ‘노르망디 코리안’ 이라는 프로그램의 내용을 모티브로 하여, 2차 세계대전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독일 군복을 입고 포로가 되었던, 어느 한국인의 기구한 운명을 드라마틱하게 다룬 이야기로, 독자들의 가슴에 충격과 감동의 여운을 전해주고 있는 역사소설이다. 더불어 일본에 의해 나라를 잃고 그로 인해 이산가족이 되어 철저한 이방인의 삶으로 살아야만 했던, 한 인간의 고통스런 슬픈 현실을 현장감 있게 담아내고 있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애틋하고 안타까운 가족애가 느껴지는 휴머니즘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서는 독자들에게 우리가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러한 역사를 통해 무엇을 깨닫고 인식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고 있기도 하다.

소설은 자유를 찾아 가족과 함께 남한으로 탈북 하는 과정에서 홀로 남게 된, 어느 노인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한다. 작품 속 주인공이 되는 길수는, 신의주에서 자신과 아들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아내를 원망하며 대장간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던 도중, 당시 전쟁 광기에 사로잡혀 강제징집에 열을 올리던 일본군에 납치되다시피 끌려가, 8살의 아들과 뜻하지 않은 생이별을 겪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조국을 배신하고 일본군의 앞잡이가 된 스키타 라는 인물에 의해 만주행 열차에 몸을 실음으로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을 맞기에 이른다. 그는 추위와 배고픔을 안고 떠난 만주로의 험난한 여정 속에서, 이제 막 소년의 티를 벗어난 영수와, 장차 가수가 되기를 꿈꾸며 일본군을 자원했던 짜즈보이 경식, 그리고 정미소에서 배달 일을 하며 주인집 아가씨를 연모했던 정대라는 청년 등, 저마다 가슴 아픈 개인적인 사연을 가진 이들과 정신적인 유대감을 나누게 된다. 이후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군과 러시아 군대 간의 노몬한 전투에 일원이 되어 참가하게 된다. 일본군이 완패한 이 전투에서 운 좋게도 살아남은 길수는, 러시아 군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 갇히게 되고, 자신의 아들을 찾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던 그는, 그곳에서 러시안 군으로 전향하여 또 다시 독소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고, 러시아 군의 일방적인 패배로 독일군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독일군으로 전향하여 마침내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저지작전에까지 나서게 되는 기구한 운명에 직면하게 된다.

이 작품은 일제 치하에서 2차 세계 대전의 최대 격전지였던 노르망디 전투까지 역사의 사실을 배경으로, 김길수라는 인물을 내세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국의 전투에서 총알받이가 되어야 했던, 그의 기구한 운명의 과정을 섬세하고도 극적으로 다루어 내어, 당시 시대상황을 재조명 했으며, 또한 작품 속에 휴머니즘적 요소를 담아 독자들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의 여운을 느끼게 한다. 특히 이 작품은 내용을 통해 여러 가지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는데, 스키타라는 인물을 통해 조국을 등지고 일본인 행세를 했던 친일파들의 행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또한 군국주의 사고방식에 물든 일본군들의 잔인하고 파렴치한 행위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이를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더불어 조국의 광복을 위해 만주등지에서 힘겨운 전투를 벌이던 독립군들의 실상, 그리고 주인공을 통해 전쟁 광기에 사로잡힌 일부 정치가들에 의해 무자비한 살육이 벌어지는 전쟁의 참상을 작품 속에 생생하게 재현해내어, 이에 대한 무의미함과 허무함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다만 독자의 입장에서 아쉬웠던 것은, 작품구성의 과정에서 조금 더 치밀하게 다루었으면 하는 것과, 인물 관계의 설정이 약간은 억지스럽지 않나 싶다. 평범한 대장장이의 삶에서 훗날 독일 나치의 독일군이 되기까지 한 인물의 기구한 삶을 장엄하고도 숙연하게 담아낸 이 작품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의 비극과 슬픔을 단적으로 보여주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자각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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