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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독 ㅣ 귀족 탐정 피터 윔지 3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1년 9월
평점 :
추리소설의 등장은 19세기 문학이 상품화 되면서 문학 본래의 순수함에서 벗어나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는 대중문학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고 하며, 이를 기점으로 이후 여러 추리 단편들이 등장 하다가 1920년대부터 추리소설의 부흥기라고 할 만큼, 다양한 내용을 담은 많은 추리소설이 출간되었다고 한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아가사 크리스티도 이 시기에 많은 작품들을 내놓은 바 있는데, 당시 그녀의 명성 못지않게 좋은 작품으로 많은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가 바로 도로시 세이어즈다. 그녀는 1923년 첫 소설 ‘시체는 누구’라는 작품으로 시작으로 15년 동안 수많은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훗날 평단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왔는데, 특히 그녀의 작품 중 대표할 만한 것으로 피터 윔지 경 시리즈를 꼽을 수 있겠다. 이 작품은 괴짜 귀족 탐정이었던 피터 윔지 경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그 세 번째 이야기로, 자신의 연인을 독살했다는 죄명으로 체포되어 법정에 서게 된 한 여인에 대해, 피터 윔지 경의 활약으로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되는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맹독이라는 섬뜩함이 느껴지는 책의 제목과는 달리,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은 재미있는 유머와 달콤한 로맨스의 분위기가 잘 어울려져 있어서, 독자들이 치밀하게 구성된 사건의 전개 양상과 더불어 낭만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생각 된다. 또한 작품의 배경을 통해서 1920년대 당시 영국 시민 사회를 간접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과, 범죄 사실에 대한 주인공 피터 경의 예리하고 논리적인 추리기법의 과정은 독자의 눈을 충분히 즐겁게 만들어 줄 것으로 보인다.
작품의 간략적인 내용을 살펴보자면, 추리소설작가를 직업으로 삼고 있던 해리엇 베인이란 여성은, 자신이 한때 사랑했던 연인 필립 보이스를 비소라는 독약을 이용하여 살해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어 법원 배심원의 판결을 받게 된다. 자신의 연인을 독살시키려 했다는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면서, 대중들의 여론은 그녀에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렀고, 재판정에서 사건의 정황을 토대로 여러 증인들의 증언들을 종합한 결과, 피의자였던 베리엇에게 유죄가 내려질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러나 최종적인 배심원 회의에서 그녀가 무죄라는 일부 의견들이 대두되면서, 결국 만장일치를 보지 못하고 재판이 무효화 되는 상황을 맞는다. 한편 재판의 과정을 그동안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던 귀족출신의 탐정 피터 경은, 그녀는 분명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으며 억울한 무고의 혐의를 받고 있다고 확신하며, 다음 재판을 위해 대기 중인 그녀를 찾아가, 자신은 범인을 잡는데 최선을 다하겠노라는 말과 함께, 이 사건이 원만하게 해결되면 자기와 결혼해달라는 이해할 수 없는 묘한 제의를 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현재 나타나 있는 거의 모든 증거와 증언들이 피의자에게 불리한 상황에서, 피터 경은 어떤 이유로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되며 그리고 무슨 방법으로 이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작품은 사건의 전개 내용을 통해서 여타의 추리소설들과는 달리 눈길을 끄는 몇 가지 특징들을 보이는데, 우선 사건과 관련하여 범죄자에 의한 실제 범행의 과정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로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이야기 전개에 있어 다소 스릴감이 반감되어 자칫 흥미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보이지만, 작품내용을 읽다보면 오히려 그런 우려감 보다는 피터 경의 논리적이면서도 치밀하고 놀라운 추리능력과, 더불어 따뜻하고 감성적인 인간미가 느껴지는 그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되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는 작품의 배경과 관련하여 봉건주의적 잔재가 남아있는 당시 시대적 흐름에 반하여, 변화의 조짐을 보이는 여성들의 모습을 이 작품을 통해 간접적이나마 확인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사건을 해결하는데 있어 주인공인 피터 경의 활약이 상당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탐정요원으로서 그에게 적극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은 여성들이 있었는데, 이점에 있어 작가는 한때 차별받고 사회로의 진입에 어려움을 겪었던 여성들의 긍정적인 모습을 작품 속에 등장시켜 이를 적극 반영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작가는 독자들이 사건의 실제 범인이 누구일지 어느 정도 쉽게 예측할 수 있도록 했으면서도, 이를 억지가 아닌 증거를 통해 어떻게 논리적으로 풀어 갈 것인가 하는 방법적인 측면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도, 추리장르를 좋아 하는 독자들에게는 흥미로운 부분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사건에 관련된 피의자의 모습을 보고 연민의 감정을 느끼면서도, 감정에 치우치기 보다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사건 속에 감추어진 은밀한 음모를 파헤쳐가는 탐정 피터 경의 활약이 돋보이는 이 작품에, 독자들의 많은 관심이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