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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의 위대한 길
김용만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세계의 역사 속에 존재했던 정복군주들을 떠올리자면, 아마도 역사상 가장 넓은 대륙을 점유한 몽골 제국의 칭기즈칸이나,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으며,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한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한 알렉산더 대왕, 혹은 프랑스 황제의 자리에 올라 제1제정을 수립하고 유럽 대륙을 정복했던 나폴레옹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우리의 국내역사에서 그들에 버금가는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구려의 19대 왕이었던 광개토대왕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국내 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다 기억하고 있을 그의 영웅적인 면과는 달리, 그의 업적과 관련한 상세한 역사의 내용을 다룬 책은 그리 많지 않은듯하다. 그것은 우리의 고대사에 관한 역사의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에 기인하겠지만,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광개토대왕이 거의 무명에 가까운 인물로 치부되었다고 하니, 만약 누군가에 의해 지금까지 광개토대왕비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그가 이루어놓은 위대한 역사의 내용은 그대로 땅에 묻히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도 일본인에 의해 만주에서 광개토대왕비를 발견함에 따라, 그동안 감추어졌던 그의 역사기록들이 빛을 보게 되었지만, 그곳에 적힌 비문을 둘러싸고 일본과 국내 역사학자들의 제각각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는 점은, 그만큼 역사 연구에 대한 우리의 노력들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역사학자들의 그러한 저마다 다른 시각을 뒤로하고, 광개토대왕의 비문을 중심으로 현존하는 우리의 고대사에 관한 역사의 기록들과, 당시 삼국시대 역사 상황을 고려하여 광개토대왕의 업적과, 그가 이루어 낸 역사의 사실이 후손인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분석해놓은 것이어서, 독자들이 한번 관심을 가지고 주목해볼만 하다 하겠다.
저자는 이 책에서 먼저 광개토대왕은 단순한 한 국가의 왕이 아닌, 국내 역사상 최초로 연호를 제정해 사용했으며, 여러 국가들을 정복했다는 점에서 제국의 지배자를 뜻하는 명칭인 태왕으로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광개토대왕은 단일한 민족을 다스린 것이 아닌 다원적인 민족과 문화를 아우르고 있었다는 점을 우리가 우선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우리의 고대사에 관한 역사자료들이 너무 적은 관계로, 광개토대왕의 주요 업적은 그의 아들 장수왕이 세운 비문에 주로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비문을 토대로 그의 주요 행적을 우리가 유추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비문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위세를 나타내기 위한 과장은 있을지언정 거짓을 적을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본다면, 어떤 역사서보다 사실적이고 객관적일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다.
광개토대왕은 알다시피 고구려의 제19대 왕으로 서기 319년 18살의 나이로 왕에 올라 412년까지 재위하며 고구려 역사의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광개토대왕이 정복군주로서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즉위하기 이전 소수림왕 때부터 고국양왕에 이르는 기간 동안 북쪽으로는 거란과 선비족 남으로는 백제의 견제를 받으면서도 내치에 힘을 써왔기 때문이며, 특히 북쪽의 선비족이 중심이 된 전연은 때로 고구려와 대치관계에 있으면서도, 고구려가 불교를 받아들이고 율령을 제정 선포하며, 관리제도와 같은 사회정치 문화발달에 하나의 밑거름으로 작용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따르면 광개토대왕이 왕위에 올라 가장 먼저 했던 것은 거란을 정벌한 일이다. 그러나 사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거란보다는 자신의 조부였던 고국원왕이 백제 근초고왕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조상의 치욕을 되갚는 백제를 치는 일이 우선이었을 법했지만, 그가 거란 정벌에 우선을 두었던 것은, 한때 거란이 고구려를 침략하여 약탈해갔던 1만 여명의 자신의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였으며, 부차적으로 소와 말 같은 가축과 소금을 얻는 경제적인 효과와, 훗날 후연을 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거란 정벌에서 큰 힘을 얻은 광개토대왕은 속민으로 있던 말갈족을 앞세워 백제의 요새였던 관미성을 빼앗으면서 본격적인 백제 정벌에 나서게 되는데, 그는 백제와의 전투에서 수륙 양쪽을 군사를 동원하여 백제의 58개에 달하는 성을 모두 함락시키고 한강 유역을 차지하게 되는 가시적인 성과를 올린다. 이후 광개토대왕은 동북쪽의 숙신을 속국으로 만들고, 왜구의 침입에 힘들어하던 신라의 구원요청을 받아들여 5만여 군사를 이끌고 백제와 왜군의 연합군을 격퇴했으며, 이듬해 고구려 북쪽에 위치했던 후연을 정벌하고 후연이후 등장한 북연마저 굴복시킴으로서 요동을 포함한 만주 땅의 대부분을 정복하였고, 끝으로 동부 지역의 있던 동부여와 연해주를 공격하여 64개성을 모두 빼앗음으로서, 마침내 명실상부한 삼국 최대의 군주로서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이 책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중 하나는, 광개토대왕이 그저 남의 나라를 침략을 위한 단순한 정복군주로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소수림왕 이후 법과 제도를 재정비함은 물론,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한 폭넓은 종교 정책과 농업의 향상에 힘써왔으며, 특히 정벌에 따른 국토 재개편을 위해 평양천도에 박차를 가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주변국 정벌에 그 바탕의 배경을 고구려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 고구려인의 기상을 드높이며, 사방으로 둘러싸인 외적을 물리쳐 나라를 평안하게 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는 점을 볼 때, 이는 다른 어떤 국가의 왕과 비교하여 유능한 통치자가 아니었나 싶은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서, 진정한 제국이란 물리적인 힘으로 영토를 확장하는데 열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구심력을 토대로 주변국들의 문화적 역량을 흡수하여 중앙 권력을 힘을 변방에까지 투사할 수 있어야 하며, 정치 경제 문화적인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 비추어 본다면 비문을 통한 사실에 근거한 광개토대왕의 지나온 정복의 흔적들은, 저자가 이야기한 진정한 제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여 진다. 자신의 역사는 자신이 만들고 지켜가는 것이지 남이 만들어주고 지켜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한반도라는 작은 땅에서 고구려 역사의 새 길을 열고 대륙정복의 꿈을 키워갔던 한국사 최초의 태왕이 된 그의 업적들이 많은 독자들에 의해 깊이 인식되었으면 싶고, 또한 주변국들에 의해 왜곡되지 않도록 하는데 그 의무를 다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