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전 1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시공사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이 작품은 1800년대 초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은 유럽 전역을 굴복시켜 그의 영향력 아래 두고, 당시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무역대국이었던 영국을 제압하려다 넬슨 제독에 의해 저지당하면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 영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대륙봉쇄령이 내려지게 되는데. 당시 유일하게 프랑스군에게 점령당하지 않은 스페인의 남부 작은 항구도시 카디스를 배경으로 비극적인 로맨스와 연쇄살인의 이야기 등 다양한 소재를 복합적으로 다룬 역사 스릴러 소설이다. 상당한 분량의 소설임에도 스페인과 프랑스의 간에 벌어졌던 물고 물리는 치열한 공성전투의 이야기를 밑바탕으로 하여 흥미롭고도 박진감 넘치는 전개와, 여러 등장인물들에 대한 사실적이고도 섬세한 심리적 묘사, 또한 전쟁이라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새로운 삶을 구가하고자하는 여러 계층들의 운명적인 삶의 모습들이 잘 나타나 내고 있어 관심과 주목을 이끄는 듯하다. 특히 이 소설의 특징이랄까 싶은 것은 공성전이라는 커다란 테마 안에,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가 조화롭게 잘 배치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점은 그동안 단편적인 이야기에 식상한 독자들에게는 더 없는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다.

우선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당시의 시대 배경을 조금 이해해 두는 것이 좋을 듯싶다. 당시 스페인의 작은 도시 카디스가 처한 상황을 살펴보면, 영국을 고사시키기 위해 프랑스 나폴레옹에 의해 갑작스런 대륙봉쇄령이 내려지면서, 그동안 영국과 교역이 어려웠던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불만이 많았다. 스페인 역시도 프랑스에 의해 대부분의 지역이 점령당하면서 당연 그들에게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었는데, 카디스 지역은 외부로부터 방어가 가능한 지리적인 여건으로 아직까지 점령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이 지역을 점령해야만 했던 것이고, 그 유일한 방법은 대포를 이용한 공성전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책의 내용은 대략 크게 세 가지의 이야기로 크게 구분되어 동시에 진행되는데, 그 하나는 바로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이다. 전인구 10만의 작은 도시 카디스는 심심찮게 벌어지는 공성전의 상황에도, 활발한 해상무역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해안가에 채찍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된 소녀의 시체가 발견된다.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던 터여서, 카디스 경찰국은 형사반장 티손에 의해 조사를 벌이지만 사건 현장에 특별한 증거나 목격자가 없는 이유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미궁에 빠지게 된다. 그로부터 몇 주 후에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이는 또 하나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범행수법은 더욱 잔인해졌으며 역시 증거나 목격자는 없었다. 카디스 경찰 당국은 그렇지 않아도 전쟁으로 어수선한 도시의 일상에 연쇄 살인으로 인한 시민들의 불안감이 확대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사건이 외부로 새어 나가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만약 사건 해결의 징후가 보이 않을 경우를 대비해 최후의 방법으로 엉뚱한 사람을 가해자로 몰아 마무리 할 것을 계획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사건을 담당한 티손 형사는 오랜 조사 끝에, 연쇄살인사건이 프랑스군에 의한 공성 포격과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음을 의심하면서, 범인을 자기 손으로 잡고 말겠다는 의지를 더욱 키워가게 된다.  

또 하나 이 작품의 주축을 이루는 이야기는 롤리타 팔마라는 여인과 로보 선장 간의 비극적인 로맨스다. 해상무역으로 큰돈을 벌면서 명맥을 이어온 팔마 가문은, 롤리타의 오빠가 전쟁에서 전사함에 따라 그녀에 의해 현재 간신히 유지되고 있지만, 직면한 전쟁으로 인해 정상적인 방법의 해상무역이 어려워지자 다른 방법을 모색하게 되는데, 그것은 나라에서 허가한 해적선을 운용하는 것이다. 즉 이것은 프랑스와 무역거래를 하는 적국의 배를 공격하고 나포하여 이득을 취하는 것인데,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혼이었던 롤리타와 그녀가 투자한 해적선의 선장이었던 로보가 우연한 만남을 하게 된다. 롤리타는 냉정하고 침착한 그러면서도 사려 깊은 그의 행동에 점차 매력을 느끼고, 로브는 그녀의 절제되고 지적인 품위와 미모에 이끌리면서 서로 연민의 정을 품는다. 하지만 이들은 롤리타가 운영하던 무역선 마르코 브루토 호가 귀국 도중, 해상에서 프랑스군에 의해 강제 나포되면서 이를 계기로 뜻하지 않은 비극적인 운명으로 엇갈리게 된다. 나머지 하나는 평범한 물리교사로 재직하고 있다가 카디스와의 공성전이 전개되면서, 국가에 의해 강제적으로 복무를 하게 되는 데스포소 장교와 카디스에 스파이로 잠입하여 그를 돕는 동물박제 연구가인 푸르갈의 이야기다. 프랑스 군은 배치된 대포의 사거리가 짧은 이유로 카디스에 효과적인 공격을 치루지 못하고, 오히려 간혹 벌어지는 스페인군의 게릴라적인 공격에 의해 커다란 타격을 받는다. 결국 대포의 사거리를 늘리라는 국가의 명령에 의해 이를 수행하기 위하여 그는 대포와 포탄제조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고, 한편 푸르갈은 카디스 영내에 떨어진 프랑스의 대포 탄착점을 찾아 그의 연구에 상당한 도움을 주게 된다. 이들은 전서구를 이용해 정보를 주고받으며 비밀리에 작전을 펼쳐가지만, 어느 날 누군가의 밀고로 어려운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또한 이들은 나중에 연쇄살인사건과 관련하여 운명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이 작품이 주목되는 것은 단편적인 하나의 이야기에서 머무는 것이 아닌, 실제 하는 역사의 사건을 중심으로, 그 안에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데에 있다. 그러 면에서 이 소설은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때로 스릴 넘치는 섬뜩한 추리의 이야기가 전개되다가도, 문득 전혀 예상치 않았던 두 남녀 간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로맨스가 조용히 펼쳐지기도 하며, 또한 스페인과 프랑스 간의 긴박하고 치열한 공성전과 게릴라전을 벌이는 여러 상황을 통해서 적잖은 재미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이 작품은 전쟁 소설이자 역사 소설이고, 추리소설이자, 로맨스 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의혹만을 더해가는 연쇄살인범의 행위와 이를 추적하는 형사와의 숨 막히는 대결, 그리고 애틋한 사랑을 전개하던 그들의 사랑이 왜 비극으로 밖에 끝날 수 없었는지, 많은 독자들이 당시 두 나라의 역사의 배경을 생각해보면서 다양한 운명을 지닌 그들의 삶에서 잔잔한 감동의 여운을 느꼈으면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