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촌 기행
정진영 지음 / 문학수첩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판타지에 대한 선입관적인 생각이나 잘못된 인식을 가져서 일까 아니면 주로 외국의 판타지 소설을 접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사실 이 작품 읽기 전까지는 판타지의 내용을 담은 작품들이 대개 그렇듯이 신화적인 내용과 비슷하거나 혹은 마법이 난무하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다룬 화려한 이야기의 전개가 펼쳐져 있을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서양의 판타지 문학에서는 느꼈던 그러한 현란한 내용을 다루지 않고도, 동양 특유의 전원적이면서 자연의 목가적인 향취를 감상할 수 있고 우리의 정서에도 부합하는 환상적인 면이 있음을 새로이 인식하게 해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신선하고도 반갑게 여겨졌던 작품으로 기억 된다. 또한 그동안에 우리 국내에서 발표되었던 많은 작품들을 생각해보면, 판타지의 이야기를 담은 장르가 지금껏 너무 침체되어 왔었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본다. 단조롭고 반복적이며 답답한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고 느껴질 때면, 누구나 간혹 상상력을 동원하여 자신만의 이상향의 세계를 그려내곤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 속에서 마치 자신이 창조주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그 누구의 간섭받지 않으면서 새로운 인물과 색다른 환경을 만들어내고 이를 맘껏 자유롭게 자신만의 이야기로 재미있게 꾸며내었을 것이다. 물론 그런 것이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가상적이고 실현불가능 것들이어서 생각과 달리 때로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겠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가중되는 스트레스를 받고 현대인이라는 삶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상상 만으로라도 즐거운 삶을 누리는데 일종의 작은 윤활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바로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다소 독특함이 느껴지는 소설로 여겨진다.

이 작품은 구성적인 면에서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생활의 이야기에 환상적인 가상의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그 전개를 이끌어 가고 있지만, 그것이 독자의 입장에서 저기 멀리 있는 별나라에서나 존재하는 괴리감이 느껴지는 것이 아닌, 우리 주위 가까이 어디에선가 있을 법한 친숙한 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우선하여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읽혀진다는 것이 눈에 띤다. 마치 우리가 잠깐 동안의 잠에 빠져 달콤한 꿈을 경험한 것처럼 말이다. 주인공 범호라는 친구는 낼모레 나이 40을 바라보는 사법고시생으로 올해까지를 포함해 수차례 시험에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고독한 청년이다. 그는 1차 시험 낙방을 핑계로 후배와 술 한 잔을 마시고 쓸쓸히 자신의 고시촌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에게 경계를 보이는 낮선 고양이를 만나 고양이의 뒤를 따라 우연히 걷다가, 어느 순간 도화촌이라고 명명된 색다른 세상 속에 있는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자연과 어울려져 목가적인 풍경 속에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이곳은, 돈에 구애받지 않을 만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어 어떻게 보면 자신이 바라던 이상향의 세계였지만, 현실로 되돌아가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상한 곳이다. 하지만 그는 심각한 고민 끝에 현실에서 고달프고 힘들었던 생활에서 벗어나 이곳에 정착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전에 무심코 사두었던 40억 원의 당첨금이 걸린 로또복권에 당첨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곧 현실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면서 이야기는 다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 작품은 선을 내세워 악을 물리치는 이야기도 아니고 호쾌한 액션이나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줄만큼 스릴적인 요소를 거의 다루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재미있게 읽혀지는 것은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이 생각날 정도로, 누구나 한번 살아 보고 싶을 만큼 도화촌이라는 이상향의 세계를 실감이 날 정도로 작가가 사실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고, 중간 중간 웃음이 날 정도로 코믹적인 요소와 함께, 주인공 자신이 지금까지 경험해왔던 불편하고 힘든 현실에 어느새 순수함을 잃고 부정적이고 탐욕적으로 변해버린 모습에서,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을 통해 이를 깨달아간다는 긍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독자들에게는 재미와 함께 현재 우리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의미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다만 좀 아쉬운 것은 판타지 작품임에도 환상적인 요소가 그리 크게 부각되지 않고 평범하게 다루어져 있다 보니, 다양한 상상력이 동원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기존의 판타지 소설과는 사뭇 다른 동양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겨지는 색다른 느낌을 주고 있어서, 이전의 여러 작품들에서 식상함을 경험한 독자들이 있다면 한번 관심을 가지고 읽어본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 우리에게 있어 현재 직면해 있는 상황들이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어렵고 고통스러운 방향으로 흘러간다 하더라도, 이를 부정하거나 도피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생각났던 건 자신이 바라던 이상향의 세계란 아마도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닌, 어쩌면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다만 그것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예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미리 단정 지어버리거나, 엉뚱한 방향에서 찾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