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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트 블랑슈 ㅣ 이언 플레밍의 007 시리즈
제프리 디버 지음, 박찬원 옮김 / 뿔(웅진)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많은 영화 팬들에게 국내 개봉된 여러 영화중에서 기억에 남는 영화시리즈를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그 순위의 상위권에 007시리즈가 들어 있지 않을까 싶다. 살인면허를 가진 주인공 제임스 본드가 국경을 넘나들며 가상의 첩보이야기를 펼쳐가는 이 시리즈는, 화려한 액션과 극도의 스릴감을 독자들에게 유감없이 보여주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로만 23편이 제작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만 놓고 보아도 독자들이 생각할 때 007시리즈의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듯해 보인다. 사실 이 시리즈는 1952년 영국의 작가 이언 플레밍의 소설에서 처음 세상에 선보인 이후, 후속으로 12편의 소설로 이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1억 부가 넘게 팔리는 인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익히 알다시피 영화로도 크게 흥행에 성공을 거둔 작품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왔다. 그런데 카르트 블랑슈(백지위임장) 이 작품이 이전과는 달리 조금 특이한 것은, 이언플레밍 재단의 요청으로 링컨라임 시리즈로 우리에게 알려진 미국의 범죄 소설작가 제프리 디버에 의해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독자들의 입장에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그의 작품 내용과 견주어 보았을 때, 이 소설 역시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탄탄한 스토리에 넓은 무대를 배경으로 박진감 넘치는 스릴은 물론이고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긴장감이 작품 전반에 흐르고 있어 상당히 기대해도 좋을듯하며, 특히 픽션임에도 전개되는 내용이 사실에 근접한 이야기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어, 이러한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흥분과 짜릿한 쾌감을 불러 일으켜 주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이 소설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는 30대 초반으로 180미터의 키에 다부진 체격을 지녔으며 한때 해군 중령으로 근무했으나 예편 후에도, 그의 치밀한 상황 분석력과 빠른 판단력 그리고 절체절명의 위기에도 침착하고 뛰어난 임기응변이 가능한 영국 국방정보부가 자랑하는 최고의 스파이다. 그는 그동안 영국정부로부터 백지위임장을 부여받아 여러 가지 특수 임무를 홀로 진행해오다가 최근 새로운 기관에 영입되었는데, 영입되자마자 그가 받은 임무는 유해한 물질을 가득 실은 세르비아의 기차가 테러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며,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갈 것 예측되는 이 상황을 즉각 저지시키라는 것이다. 세르비아의 현장으로 급파된 본드는 조사 결과 이 테러의 배후에 아일랜드 출신의 니얼 던이라는 사람에 의해 자행된 것임을 밝혀내지만 그의 행적을 뒤쫓는데 실패한다. 그러나 영국으로 돌아온 본드는 그가 수집한 현장의 증거물을 통해서 암호가 적힌 단서를 하나 찾게 되는데, 암호 해독 결과 이 테러계획에 또 다른 인물이 관계하고 있음이 새롭게 드러난다.
이 새로운 인물은 하이트라는 이름을 가진 산업폐기물이나 쓰레기를 소각처리해주는 다국적 기업가였는데, 영국 정보부의 조사에 의하면 그의 지금까지 행해온 지난 과거의 여러 행적들에서 테러 행위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 위험인물이 아닌 것으로 파악됐지만, 본드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저번 세르비아의 열차 탈선 사건에 연루된 니얼던이라는 인물이 그와 함께 동행 하면서 움직인다는 것과, 이들 둘이 무언가 모종의 계획을 꾸미고 있으며 이 계획의 일환으로 곧 두바이로 출발할 것이라는 정보를 알아내기에 이른다. 결국 이들의 뒤를 쫓던 본드는 이들의 테러 거사 계획이 조만간 이루어질 것이라는 새로운 정보를 알아내고, 사업가로 위장하여 이들의 내부에 잠입하여 그 자세한 내막을 파헤치려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 역시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본드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그곳에는 그들이 파놓은 위험한 함정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으며, 이들은 마침내 서로 간의 피할 수 없는 목숨을 건 불꽃 튀는 한판의 승부가 펼쳐진다.
우리가 이전의 영화 007시리즈에서 보아왔듯이 이 작품 역시 세르비아, 두바이,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같은 여러 나라를 걸치며 국가와 국가를 넘나드는 소설 속 이야기 전개 스케일이 상당히 방대하다는 것과, 시종일관 위태하고 아슬아슬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통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은 물론이고, 특히 이야기의 후반부에서는 예측 할 수 없는 반전의 반전이 펼쳐지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가고 있어서 기존의 007시리즈에 버금가는 재미를 우리에게 선사해준다. 게다가 007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 중 하나인 주인공 본드와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본드걸과의 로맨스적인 내용인데, 중간 중간에 이들의 감미로운 이야기가 적절하게 등장하여 작품이 액션과 같은 외형적인 면으로 너무 쏠리지 않도록 했다는 것과, 또한 본드가 사용하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엿듣거나 미행을 위한 추적을 용이하게 해주는 최첨단 장비들의 등장도 빼놓을 수 없는 흥미의 요소가 아닐까 싶다. 특히 신분을 위장하거나 누군가와의 접선을 위해 취해지는 그들만의 암호적인 대화나 특이한 행동에 관한 것들은, 다른 소설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첩보소설의 또 하나의 매력적인 부분이어서 이점에 있어서도 독자들이 한번 눈여겨 볼만한 대목으로 보인다. 이 작품이 언제 영화로 등장하게 될지 아직까지 언급된 소식은 들리지 않지만, 혹시 영화로 만들어 진다면 기존의 작품 이상의 좋은 장면들이 연출되지 않을까 싶은 개인적인 생각을 해본다. 기존의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를 버리고 조금은 더 신사적이고 침착하면서도 예리한 시각을 가진, 새롭게 변모된 30대 초반의 건장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시 돌아온 그를 통해, 많은 독자들이 이 기회에 영화가 아닌 책으로서 007의 색다른 묘미를 느껴보는 것도 좋을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