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또 올게 - 아흔여섯 어머니와 일흔둘의 딸이 함께 쓴 콧등 찡한 우리들 어머니 이야기
홍영녀.황안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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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어떤 입장에서든 마땅히 행하여야 하는 도리라는 것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일례로 국가는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그 역할에 충실해야 하고, 국민 역시 나라에 충성의 의무를 다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가정에서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부모를 위한 효의 기본적인 도리를 다해야 하는 것이며, 부모 역시도 자식을 보호하고 사랑하며 건전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양육의 책임을 지는 것이 바로 부모의 도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회든 행위를 하는 그 주체가 주어진 자신의 도리를 다하지 못할 때, 그에 속한 국가와 사회는 결국 온전하게 지탱될 수 없는 것이며, 가정 또한 붕괴의 위험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어머니라는 존재를 생각할 때 그로인해 자유로울 사람은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머니란 우리들의 가슴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지닌 존재이며, 세월의 온갖 풍파에 맞서 결코 이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견디어내었으면서도, 오직 가정과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며 사랑으로 헌신했던 가장 인간다운 표본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지금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가난과 굶주림이 흔했던 예전 우리의 어머니들은 대부분 그랬다.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연약한 체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가족의 안위와 자식의 앞날을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힘든 노동을 해야 했으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자식들을 돌보고 자신을 희생했었다. 이로 인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서 말이다. 행여 자식을 밖에 내어 놓으면 남의 눈밖에 날까 자신은 정작 굶어가면서도, 조바심에 먹을 것이며 입을 것이며 신경을 쓰시다가 조금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세월의 한을 가슴속으로 삭혀가며, 한평생을 보냈던 인생이 바로 우리들 어머니의 자화상이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부터 그러한 일들을 자신들이 해야 할 필연적인 의무라고 생각했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어머니들은 그러한 자신의 희생적인 행위를 두고 자랑스럽게 이를 남 앞에 드러내 보이거나 자식들로 하여금 결코 대접 받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 책은 칠순이 넘은 노모가 손자의 도움으로 늦게 한글을 깨우치면서, 한때 남편을 잃고 험하고 거친 세상에 남겨진 6남매를 홀로 키워내면서도, 자식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여자로서 또 어머니로서 모진 세월을 견디어야 했던, 그러는 동안 하나 둘씩 자신의 가슴 속에 켜켜이 쌓여진 이야기들이 진솔하게 적혀져 있으며,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큰딸의 이야기가 함께 엮어져 있는데, 독자의 입장에서 벅찬 감동과 모성애의 생생한 느낌이 전해져올 만큼 애틋하고도 아름다운 감성이 샘솟는 에세이라 할 수 있겠다. 늦게 배운 한글을 통해 노모가 남긴 글 속에는 자식들을 향한 애절하고 눈물겨운 사랑과, 남편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90평생을 살아오면서 자연과 세상살이에 부대낀 자신의 솔직한 심정들이 여과 없이 나타나 있는데, 글 하나하나마다 그 진심이 짙게 배어있어서 글을 읽는 내내 독자의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책 속 어머니는 며느리로서 시아버님의 상을 치루면서 집안일에 정신없이 지내다가 자신의 아이를 이질로 잃어버리면서 평생 가슴의 한으로 남게 된 사연이며, 자식들이 성장하여 가정을 이루게 되자 행여 자신이 짐이 되는 것을 꺼려하여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 혼자 텃밭을 일구며 자연을 벗 삼아 살아온 나날들, 그리고 팔순에 이르러 암과의 투병이야기들은 묵직하게 우리의 가슴으로 다가와 심금을 울려 놓는다. 팍팍하고 힘든 세상을 마주하며 90평생을 살아온 이 책 어머니의 인생이야기는 몇 십 권의 책으로 담아낸다 해도 아마 다 채우지 못할 것이다. 책 속 이야기에서처럼 우리들 어머니의 인생은 그렇게 고달프고, 외롭고 험난한 가시밭길의 여정으로 가득 차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태어나서 부모의 보호를 받고 자라다가 때가되면 부모가 둘러쳐준 울타리를 벗어나지만, 우리들의 어머니는 그러한 우리들이 마치 냇가에 내어놓은 자식인 것 같아 언제나 마음을 졸이며 행여 자신이 그래왔던 것처럼 세상의 고약함에 넘어질세라, 가슴을 조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어디에선가 분명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와 같은 어머니의 숭고하고 순수한 마음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싶다. 마치 자기 혼자 스스로 커온 것처럼 혹은 자신을 낳은 어머니의 책임이기에 당연히 그래야 된다는 식으로 여기듯 말이다. 어머니의 작은 잔소리 하나에도 그 바탕에는 깊은 사랑이 문득 배어 있었음을 우리는 때로 잊고 살아가는 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우연하게 알게 되었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학교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가출하여 자살을 생각했던 한 소녀가, 자신에 가방 속에 있던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열어보았다가, 뚜껑의 표면에 알알이 모인 수증기로 인한 물방울이, 마치 자신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눈물인 것 같아 차마 그렇게 행동할 수 없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어머니란 우리에게 있어, 언제어디서나 우리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자식을 위해 한손을 희생해서 내어주었다가, 그것이 모자라다 싶으면 또 한손을 내미는, 또한 자식의 아픔과 눈물을 대신해서 흘려주는, 그래서 어찌 보면 세상의 풍파에는 강하지만 자식 앞에서는 한 없이 작고 약해지는 그런 존재일 것이다. 따라서 어머니의 얼굴과 손등에 깊게 패인 주름살은 단순히 살아온 인생의 흔적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가족과 자식을 위해 헌신한 세월이주는 가치 있는 훈장으로 봐야 할 것이다. 바라 건데 이 책을 통하여 많은 독자들이 오늘 우리 자신을 위해 남모르게 힘든 고통과 아픔을 감내해야했던 우리 어머니의 인생을, 이전보다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에 머무르거나 안주하지 말고, 그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다시 보답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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