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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사랑한 베르사유 - 역사의 숨결, 예술이 스민 베르사유 문화 산책
강문정 지음 / 샘터사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역사 속에 실제 하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온전하게 보전되지 않고 상당량 파괴되거나 소실되어버려 오늘날 그 흔적만이 남아 있는 건축물들이 있음을 볼 때,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의 크레타 크노소스 궁전은 화산폭발과 그로 인한 지진으로 사라졌으며, 영국의 세인트 폴 성당의 경우도 화재로 소실되어 이후 재건축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도 임진왜란과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국보급 건축물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파란만장했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그 위용을 자랑하는 건축물들 있는데, 이 중에서 그 하나를 꼽자면 아마도 프랑스 황금시대를 자랑했던 베르사유 궁전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전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며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이 건축물은, 궁전이 차지하고 있는 겉으로 나타난 그 규모면에서만 봐도 엄청나다 할 수 있을 것이지만, 내부적으로도 다른 여러 나라의 궁전들에 비해 호화롭고 화려하게 꾸며져 있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이끌기에 충분해 보인다 하겠다. 그러나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의 이면에 베르사유와 연관한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극히 일부분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더구나 그 일부분에 있어서도 왜곡되거나 사실과는 다른 내용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더러 있는듯하다. 이 책은 베르사유 궁전이 한때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였고 그러한 가운데 찬란한 영광의 나날이 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어둡게 드리워진 슬픈 운명의 역사들이 상세하게 적혀져 있어서, 개인적으로 독자들에게 유익하고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베르사유 궁전은 당시 시대에 맞는 교양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중요하게 여겨졌던 궁정예법과 문화적인 행동양식의 표본이 될 만큼 왕족과 귀족의 본거지였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도 익히 알려진 에티켓 문화 중 대부분은 바로 이 베르사유 시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베르사유라는 이름은 원래 이 땅의 소유주였던 어느 영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이곳은 애초 교회 본당을 포함한 마을과 넓은 대지와 숲으로 되어 있었는데 백년전쟁 이후로 황폐화 되었다가, 이후 알베르 공디라는 귀족에 의해 매입되어 왕족들을 영접하는 곳으로 변모되었다. 부르봉 왕조 앙리 4세는 프랑스 왕위에 오른 뒤 이곳에서 사냥을 즐기기 위해 왕세자였던 루이 13세와 함께 자주 찾아 왔는데, 어느 날 앙리 4세가 갑작스런 암살당하면서 왕위에 오른 아들 루이는 어머니의 섭정으로 의기소침해하면서도 아버지와의 한때 베르사유에서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을 위해 그곳에 성을 만들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왕권을 못마땅하게 여긴 그의 어머니가 자신을 제거하려는 역모의 경험을 겪고 난 뒤, 그는 왕권의 권위를 한층 더 강화하기 위해 이미 건축된 베르사유 궁전을 더 웅장하고 화려하게 증축하기에 이른다. 이후 그가 죽고 나서 뒤이어 왕위에 오른 루이14세는 자신의 아버지가 강화시켜놓은 왕권에 더욱 확고히 하면서 “짐은 곧 국가요, 국가가 곧 짐이다”이라는 유명한 말에서처럼 절대왕권을 확립하게 되는데, 그는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 만들어진 베르사유 성의 본체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외형적으로 더욱 폭 넓게 확장시키기기 위해 재능 있는 건축가와 설계자를 모두 불러들이고, 마침내 궁전이 완성되자 베르사유 궁전을 두고 프랑스의 공식적인 왕궁임을 천명한다.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16세 때에 이르러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면서 절대왕정이 무너진 틈을 타서 일부 시민들에 의해 집기와 물건들이 도난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하고, 파리를 침공한 독일군에 의해 점령당하기도 하지만 건물이 파괴되는 불상사 없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 책이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은 베르사유 궁전의 건축과는 별개로, 루이 13세부터 16세 때까지 걸친 왕가 주변의 이야기와 프랑스 대혁명의 과정이 사실을 바탕으로 상세하고도 흥미롭게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이중에서도 백미인 것은 루이16세와 그의 부인이었던 마리 앙트아네트와의 비운의 역사 이야기다. 이 두 사람은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면서 왕실의 재정을 파탄시키고 국민들의 삶을 어렵게 했다는 이유로 결국 단두대에 이슬로 사라지게 되는데, 사실 왕실 재정 파탄의 근본적인 이유를 이들에게 책임을 묻기에는 다소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 보인다. 루이14세는 다른 왕들이 대개 일찍 죽은데 반해 그는 77세까지 이르는 장수를 누렸지만 자식 복이 없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의 아들과 손자들은 일찍 죽어버렸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왕위를 증손주인 루이15세에게 물려주어야만 했다. 당시 유럽에서의 왕실 결혼은 대개 국가 간의 정략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졌던 것이 일반적이어서, 루이15세는 자신의 왕세자비로 오스트리아 황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이었던 마리 앙트와네트를 맞아들인다. 왕세자비는 왕실에 환영을 받긴 했지만 정작 이들 부부의 관계는 애초부터 원만하지 못했다. 즉 루이16세는 조용하고 무뚝뚝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어서 어려서 시집을 오게 된 부인에게 다정다감하게 대해주지도 못했으며 남편으로서 해야 할 의무도 다하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왕실에서 외롭게 지내게 된 마리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파리의 가장무도회를 다녔는데, 거기서 스웨덴의 귀족 페르젠이라는 귀족을 만나 서로 연민의 정에 빠지기도 하고 도박과 화려한 사치 생활을 통해 자신의 우울함을 달래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오빠의 도움으로 이들 부부가 이후 좋은 관계로 발전하게 되지만, 당시 희대의 사기극이었던 다이아몬드 귀걸이 사건에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연루되고 결국 이 문제가 이상한 소문으로 퍼져갔고, 또한 묘하게도 그 시기에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면서 왕실의 재정파탄의 책임과 왕권다툼에서 밀려나면서 이들 부부는 말년에 쓸쓸한 죽음을 맞게 된다.
베르사유 궁전은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할 만큼 화려하고 찬란했던 시절을 구가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슬픈 운명의 역사를 지닌 곳이다. 시대가 흘러 그 곳의 주인공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궁전 곳곳의 자리에는 당시 거주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숨결들이 분명 애절하게 배어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역사를 배움에 있어 남의 나라일이라고 간단하게 치부해버리는 것은 극히 잘못된 인식일 수도 있다. 세계사는 어떻게 보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유기체 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남의 나라일은 곧 우리나라의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한때 몽고나 일본의 지배하에 놓여있었던 것은 남의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프랑스 역사의 극히 일부분만을 다룬 것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교훈으로 삼고 배워야 할 역사의 내용들은 분명 있다고 본다. 따라서 베르사유와 관련한 역사 인물들의 이야기를 둘러보면서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야만 했던 그들의 이야기에 잠시 귀를 기울여 봄은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