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프리모 레비 지음, 김종돈 옮김 / 노마드북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전쟁은 누구도 원하는 형태의 것이 아님에도 우리의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전쟁의 참혹한 과거로 점철되어 왔다. 그러나 이점에 있어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이러한 전쟁의 원인이 다름 아닌 바로 우리의 탐욕스런 시기와 질투 그리고 증오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것은 오로지 잔혹한 죽음과 파괴만을 부르며 결코 쉽게 치유되지 않는 정신적 고통의 시간만을 우리에게 안겨다 줄 뿐이다. 그래서 어떤 이유라 하더라도 우리는 과거 쓰라린 전쟁의 역사를 교훈삼아, 다시는 그와 같은 폭력의 도구가 재현되지 않도록 하는데 우리의 온힘과 노력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아마도 빨치산이란 말을 흔히들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 단어를 두고 마치 빨갱이라는 동일한 의미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사실 이 말은 원래 정규군과는 별도로 적군의 배후에서 기습과 같은 방법으로 타격을 입히며 게릴라식의 전투를 벌이는 파르티잔이라는 러시아어에서 따온 말이다. 익히 아는바와 같이 우리나라에도 이와 같은 빨치산들의 많은 활약이 있었는데, 강압적인 일본의 국내 침략에 맞서 항일무장투쟁을 하던 일제 강점기 시대와 그리고 6.25 전쟁을 계기로 단지 이념적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리산을 근거지로 하여 활동했던 세력이 바로 그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한때 겪었던 전쟁의 상황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동안 자신이 몸담고 있던 조국의 패망을 시작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같은 동족들이 무참히 유린당해야만 했던 당시 독일 나치 부대를 상대로, 유태인의 빨치산 부대들의 고난의 역사를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고대 로마제국 랍비들에 의해 기록된 잠언의 내용처럼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나를 위해 대신 살아줄 것인가, 또한 내가 나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과연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라는 말에서 보듯,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시킨 전쟁이 남긴 그 비극적인 현장의 실상을 담은 이 책은, 아마도 우리에게 있어 여러 가지 많은 물음을 던져준다 하겠다. 따라서 독자의 입장에서 그들이 나라를 잃고 어쩔 수 없이 빨치산이 되어야만 했고 더구나 유태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환영받지 못했던, 그들의 고단하고 처절했던 삶의 과정을 담아낸 이 책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전쟁의 피해자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통의 순간을 맛보아야 하는 그들의 처절한 행로를 통해, 오늘 우리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주인공 멘델은 유태인의 피를 가진 러시안 인이다. 나치에 의해 저질러진 전쟁으로 인해 자신의 조국을 위해 힘껏 싸우다가 그 패배의 결과로 부인과 가족을 모두 잃고 홀로 남게 된 그는 침략자의 손에 넘겨진 자신의 터전을 뒤로하고 나치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빨치산이 되기 위해 정처 없는 유랑의 길에 나선다. 그는 유랑 도중 레오니드라는 청년을 만나 곳곳에 숨어 있는 나치의 부대와 밀고자의 눈길을 피해 안전지대로 이동하면서 숲속과 야산의 한 모퉁이에 위치한 빨치산 부대의 일원이 되어, 크고 작은 전투에 참가하면서 독일군의 부대에 타격을 입히며 많은 활약을 한다. 그러나 당시 빨치산의 구성원들 대부분이 러시아, 폴란드 등 유럽의 여러 국가의 국민들로 구성되어 있고 같은 국가라 하더라도 민족이 서로 다름에 따라 내부분열의 소지가 많았으며, 이런 이유로 이곳저곳에 흩어져 산발해있던 빨치산들끼리의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 있어 여러 위험한 요소들을 안고 있었다. 더불어 대부분의 나라가 나치의 침략적인 행위에 대해 항거하는 것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전쟁 이전에 러시아나 폴란드 같은 나라에서는 이미 유태인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더러 피해를 입으면서 환멸을 느끼고 있었기에 유태인으로 빨치산의 일원으로 존재 한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신의 이러한 처지의 원인제공자가 바로 독일군이었기에 이에 항거해야 한다는 것이 목표가 하나 있었고, 당시 시대 상황으로 볼 때 유랑민의 처지에서 빨치산의 일원임에도 의심받고 차별받는 대우를 받았긴 했어도, 그나마 나치의 눈을 피해 안전하게 자신의 삶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때로 스파이에 밀고 당하기도 하고 나치의 교묘한 수법에 의해 다시 흩어지고 모아지는 과정을 통해 여러 빨치산 부대를 전전하다가 결국 그들은 연합국의 승리로 어렵고 힘들고 유랑의 길을 마치고 러시아를 거쳐 폴란드와 독일을 지나 마침내 이탈리아에 안착하게 된다.

저자는 한때 파시스트를 반대하는 레지스탕스와 빨치산으로 활동하면서 체포되었다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끌려가고 난 뒤, 이후 어렵게 그곳으로부터 벗어나 우연히 만났던 친구의 기억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작가는 작품 속 주인공 멘델의 눈을 통해 전쟁의 화마가 휩쓸고 간 그곳에 허름한 나무십자가 만이 즐비한 모습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죽은 자는 무덤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 산 자는 무덤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그리고 무덤 속의 죽은 자는 오래 기억될 의무가 있고 무덤 밖의 산자는 그들의 오래 기억할 의무가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전쟁은 선택과 거부, 권리와 의무를 모두를 빼앗아 가버리며 우리 자신을 바로 그와 같은 상태 만드는 하나의 지독한 존재라고 의식한다. 누구라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쟁의 현장에 서 있었다면,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 살아주지 않음을 그래서 삶이란 오로지 내 의지와 생각 그리고 나의 선택된 행동에 의해서만 지탱되는 것임을 직시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우슈비츠에서는 아무도 기도하지 않는다. 신이 없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은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던져 주는듯하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독자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를 깊게 고민해보는 시간을 한 번 가져보는 것은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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