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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이름 1 ㅣ 왕 암살자 연대기 시리즈 1
패트릭 로스퍼스 지음, 공보경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현실의 일들이 가끔 따분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건, 그동안 반복되어왔던 거의 모든 것이 이전에 그래왔던 것처럼 어제도 그러했고 오늘도 당연히 그렇게 되리라는, 그래서 앞으로 예상되는 일들이 어느 정도 쉽게 가늠해지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우리는 현실에 맞지 않은 놀랍고 엄청난 일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감내지 두려움을 표하면서도, 이상하게 그러한 일들을 대해 시간과 공간을 자기 마음대로 넘나들면서 자신만의 상상 속의 세계를 꾀하는 것에 관해서는 오히려 이를 은근히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실과 동떨어져 어떻게 보면 황당한 이야기의 전개임에도 그동안 해리포터나 나니아 연대기와 같은 초자연적인 판타지 형태의 소설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작품 속 내용에 따른 저자가 풀어가는 전개과정이 화려하면서도 긴장감을 주는 스릴이 가득 담겨 있어서 행여 다음 장면이 어떻게 펼쳐질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치밀한 구성과 설득력 있는 훌륭한 문장들이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겠지만, 그러한 이면에는 우리가 그동안 상상 속으로만 이해해왔던 공상적인 부분을 그와 같은 작품을 통해서 대리만족해하는 부분이 분명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는 사실 판타지 계통의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었는데, 근래 들어 간혹 그러한 작품이 주는 또 다른 세계에 매력을 조금씩 맛보게 되면서 그 나름대로의 짜릿한 흥미를 느끼곤 했는데, 이 작품 역시 독자에게 있어 상당한 재미와 흥분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은 물론,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로 푹 빠져들게 할 만큼의 탄탄한 스토리의 전개가 뒷받침 되어 있어서 한번 읽어볼만한 판타지 작품이 아닐까 싶어 추천해본다.
이 책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두 가지 플롯을 띠고 있다. 그런데 작품이 대서사적인 상당히 장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앞부분에서 음산한 분위기 속에 펼쳐지는 이야기의 배경과 상황이 독자들에게는 쉽게 적응되지 않는 조금은 답답하고 지루한 면이 느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후부터는 손에 책을 놓을 수 없을 만큼, 작품 속 주인공의 성장 이야기가 아기자기하면서도 흥미를 동반한 긴박감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서, 그만큼 책 속으로 몰입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하는 매혹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작품의 내용 안에는 주인공 크보스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신비술사가 되기 위해 겪게 되는 다양하고 신비로운 모험의 이야기와 더불어 애틋한 로맨스가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고, 이후 그가 벌이는 호쾌한 영웅담의 내용은 많은 독자들에게 아마도 분명 즐거운 독서의 시간을 제공해 주지 않을까 싶다.
주인공 크보스는 한때 일반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큼 악인으로 명성을 떨쳤으나 어떤 이유에서 인지 자신의 이름과 지난 과거의 행적을 숨긴 채, 어느 작은 도시에 여관을 운영하며 자신의 제자인 배이튼과 함께 은둔자적하며 지낸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그는 거대한 독거미에 의해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된 귀족이자 왕국 연대기 작가를 구해주게 되는데, 이 작가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그의 모습을 보고 그가 어느 왕국의 전설적인 영웅이었음을 알아차리고, 그의 지나온 행적에 대한 이야기를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크보스라는 인물의 지난 과거의 일들이 서서히 밝혀지게 된다. 주인공 크보스는 왕국의 신화를 수집하며 유랑극단을 운영하는 부모를 따라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겨 다니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애번시라는 마법사를 만나 신비술사로의 꿈을 키우게 된다. 하지만 크보스는 어른으로 채 자라기도 전에 악마의 제왕으로 불리는 챈드리언과 그의 부하들에 의해 그의 부모를 잃게 되는 운명을 맞게 되고, 이후 고아가 되어 이리저리 떠돌다가 어느 술집에서 어느 서사 시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부모를 죽인 악마에 관한 어떤 암시가 들어 있음을 알고, 위대한 마법사를 배출하는 대학에 우여곡절 끝에 입학하면서, 왜 자신의 부모가 그들의 손에 죽게 되었는지 그 비밀을 하나씩 밝혀나가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짜임새 있게 전개되는 주인공 크보스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여러 상상력을 동원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더불어 비록 현실과는 이질적인 세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비로운 마법과 순수한 사랑, 그리고 앞으로 예상되는 자신의 부모를 죽인 악마의 제왕과의 한판의 결투 등의 이야기는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질 만큼 그 묘사가 사실적이고, 중간 중간 가슴에 와 닿는 서정적인 문장들은 우리의 감동과 이해를 전달해 주기에 충분해 보이지 않나 싶다. 따라서 한편의 멋지고 아름다운 판타지 소설을 기다렸던 독자가 있다면, 주인공 크보스와 함께 화려하게 펼쳐지는 그의 영웅담의 대열에 동참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고, 무한한 환상 속의 세계로 여행을 잠시 즐겨보는 것도 좋을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