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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점 ㅣ 홍신 세계문학 2
미우라 아야코 지음, 최호 옮김 / 홍신문화사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마음의 색깔을 지니고 있으며 다양한 인격을 지닌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사람마다 상황에 따라 그 때마다 표현되는 방식이 제각각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며, 특히 인간관계에서 행해지는 여러 행동들의 특이성을 보면 이러한 점은 더욱 뚜렷하게 부각되어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사람을 지칭하여 말할 때 순수해 보인다거나 혹은 간사해 보인다 하는 말들은 그 사람이 지닌 마음의 색깔 중 자신의 눈에 각인된 면을 깊게 받아들여 단정 지어 말 하는 것뿐이지, 그 말이 곧 그 사람의 전부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며 이는 그 이면에 숨겨진 다른 어떤 면이 존재함을 우리가 애써보려 하지 않거나 또는 인위적으로 당사자에 의해 교묘하게 가려져 있어 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음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인간이 지닌 이러한 다양성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함에 있어, 우리가 단순히 인간의 본성이란 바로 이렇다 라며 말하기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평생을 법 없이 살아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스스로의 내면에는 법에 준거하지 않는 일탈적인 면이 있게 마련이고, 정신적인 결함이 없음에도 끔찍한 살인을 서슴없이 저지른 사람의 그 속성에도 부드럽고 온화한 부분은 분명 존재 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언제든 악행의 모습으로부터 부디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도덕과 양심으로부터 계속해서 견제를 받아야 하고 감시 받으면서 끝없이 스스로의 행동에 이성적인 자기검열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여하튼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던 것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냉철한 이성을 지녔다고는 하지만 그 누구도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내과의사인 게이조는 감정조절이 서투른 자신의 아내인 나쓰에의 실수로 자신의 딸인 루리코를 잃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한두 번쯤의 실수는 하기 마련임에도 그는 아내에게서 용서와 화해를 선택하기 보다는 자신이 아닌 외간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그 비열한 행동에 책임을 물어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딸의 목숨을 앗아간 후 돌연 자살해버린 그래서 홀로 고아로 남겨진 범인의 딸 요코를 자신의 입양하기에 이른다. 한편 그의 아내인 나쓰에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스스로 인정하며 아무것도 모른 채 새로 입양한 요코를 자신의 딸에게 못 다한 사랑을 베풀며 지극 정성으로 키워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남편의 서재에서 우연하게 발견한 일기장을 통해서 요코가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의 딸임을 알게 된다. 그녀는 남편이 그러한 사실을 알고도 비밀리에 그것도 고의적으로 범인의 딸을 입양시켜 남편으로부터 자신이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지난날 자신의 실수를 망각한 채 다시 자유분방한 과거의 상태로 돌아가려고 애쓴다. 이와는 달리 새로운 가정에 입양된 요코는 자신의 처지가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하고 명랑하고 밝은 성격으로 커가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부모로부터 점점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점점 소외되어간다는 느낌을 받기에 이르고, 마침내는 제 3자로부터 자신이 입양되어 왔다는 것을 알고 잠시 충격에 빠지지만, 오히려 그녀 스스로는 자신을 키워준 양부모를 위해서라도 더욱 착실하고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요코에게 놓인 주변의 환경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만큼의 충분한 요건이 되지 못하고 점점 걷잡을 수 없는 암울한 상황으로 전개된다.
이 작품은 사실 예전 학창 시절에 한번 읽었던 기억이 있는 책이다. 완역본 이어서 그럴까 몰라도 그 당시 읽었던 느낌과 감동보다는 지금에 와서 읽은 그 감흥이 더욱 커진듯하다.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선과 악이라는 이중적인 면을 철저하게 파고들어 소름이 돋을 만큼 적나라하게 표현한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대중적인 면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통속적인 진부한 냄새를 풍기고 있어 일부의 비판을 피할 수는 없어 보이지만, 우리가 의외로 사소하게 넘겨버리게 되는 인간 본연의 속성을 사실적인 표현과 극적인 효과를 가미하여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는 점에서 때로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자기합리화에 빠져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되돌아보게 하는 누구나 한번쯤 읽어 볼만한 좋은 작품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본다. 특히 다양하면서도 개성적인 성격을 가진 여러 등장인물들을 보면, 이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되는 사람들이거나 혹은 우리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어쩌면 똑같은 인생을 하고 살아가는, 그래서 작가에 의해 전혀 가공되지 않은 인물들인 것처럼 여겨져 생생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물론 이야기를 전개함에 있어 그 전제가 왜 하필 범죄자의 딸을 입양하는 것인가 하는 현실에서는 조금 상상하기 힘든 억지스러운 설정이었다 해도, 그것과는 별도로 우리가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에서 가늠해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인간이 지닌 본능적인 탐욕의 부분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이 책 등장인물들의 행위들을 보고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인간은 선과 악이라는 경계에 놓여 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과정에 있을 때, 더러 그것을 이성을 통한 도덕과 자신의 양심에 호소하기는 해도 대개는 그 행위가 악의적으로 흘러갈 것 인지를 알면서도 자기합리화에 입각하여 이를 방치하는 나약한 인간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는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빙점의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가 이 점이 무엇인지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그만큼 도덕적으로 자신 있게 살아왔거나 아니면 그 부분을 무시할 만큼 이미 자신이 추하게 타락했음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