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오단장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살고 있는 오묘한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저마다 원인과 결과가 있고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그리고 각 사건의 진실은 분명 그 안에 존재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겉모습의 내용들은 보는 이의 시각과 주관적 판단에 따라 진실과 거짓이라는 제각각의 평가들이 내려질 수 있으며, 그것은 또한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자신만이 갖는 고유의 권리이며 자유의 영역이어서 타인이 함부로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때로 이러한 각 개인의 평가에 의한 누적된 결과가 언제나 진실로만 귀결되지는 않는듯하다. 이 작품은 그걸 대변이라도 하듯 숨져진 진실의 향방을 쫓아 그 과정의 내용을 미스터리의 형식으로 극적인 긴장감을 잘 나타내어 주었음은 물론, 작가의 치밀한 구성과 전개가 돋보이는 그래서 독자의 입장에서는 근래보기 드문 좋은 소설을 읽은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지 않았나 싶다. 생각해보면 진실이 언제나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해도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하나의 간절한 소망과 같은 기대감일 뿐, 실제 하는 현실의 결과들은 간혹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나타나기도 해서 우리를 당혹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작품을 보면서 하나의 작은 사건이 어떤 이에게는 하루에도 수없이 발생되는 일종의 하나의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할 일로 간주 될 수도 있는지 모르지만, 당사자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전체적인 삶과도 맞바꿀 만큼 중대한 일일 수도 있으며 이는 어느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만큼, 그 결과를 두고 아무렇게나 맘대로 재단하여 규정짓고 단정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잘못된 것인지 개인적으로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를 주지 않았나 싶고, 추리 미스터리 치고 이전에 보았던 어떤 미스터리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문학성과 대중성을 잘 조합한 소설이라는 생각이다.

이 작품의 세부적인 구성을 보면 전체적인 하나의 이야기 속에 다시 짧은 5개 이야기가 부연적인 소재가 되어 등장하는 형식으로 전개되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초반 분위기가 생각보다 너무 음울하게 전개되는 것은 아닌가 싶었는데, 본격적인 내용이 시작되면서 작가가 이 작품에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과 연관하여 생각해보니 나름대로의 적절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주인공 요시미츠는 급작스런 집안의 사정으로 대학을 휴학하고 당분간 큰아버지가 운영하는 어느 고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카나코라는 여성으로부터 어느 날 자신의 아버지가 오래전에 썼던 다섯 편의 단편 소설이 게재되어 있는 서적들을 찾아달라며 상당한 보수를 동반한 우연한 제의를 받게 된다. 의뢰를 받은 그 소설들은 모두 20여 년 전에 발표되었고 일반사람들에 의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일부 작가들의 소수 동인지와 같은 곳에 실려 있었는데, 의뢰인이 알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여러 수소문 끝에 그가 찾아낸 이 소설들은 극히 짧은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결말의 내용이 없는 미스터리의 형식을 담고 있다. 그런데 요시미츠는 이 책을 쓴 작가가 왜 이런 기묘한 형태의 미스터리 소설을 발표했는지 하는 의문점을 생각하다가, 책의 소재를 알려준 어느 정보제공자로부터 이 다섯 편의 작품이 오래전 신문에 떠들썩하게 발표되었던 어떤 살인사건과 연관되어 있으며, 각 단편 안에 담겨있는 내용이 의뢰인이었던 딸과 아버지인 작가의 어떤 미묘한 관계가 있음을 새로 알게 되면서,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처한 불편한 상황과 맞물려 예기치 않은 혼란스러움에 직면하게 된다.

대개 사람들은 타인에게 드러내놓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감추어두고 싶은 한두 가지의 비밀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 중 일부는 의도적이었든 아니었든 간에 평생 자신이 풀 수 없는 멍에가 되기도 하며, 남들은 도저히 느끼지 못하는 가혹할 만큼의 커다란 고통을 수반하기도 한다. 따라서 작품 속 아버지와 딸이 어느 날 우연히 겪게 되는 하나의 사건에서 자신들의 기억에 남겨진 진실의 내용들은 아마도 바로 그와 같은 맥락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뜻하지 않은 일을 급작스럽게 당하게 되면서 경험하게 된 하나의 사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잊어질 것이라고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지만, 일부의 경우에는 그것이 반대로 더욱 크게 부각되어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 자신의 내면을 갉아 먹어간다는 것을 우리는 때로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작가는 이 책에서 하나의 사건을 매개체로 하여 그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부분을 독자들에게 일깨워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접하면서 개인적으로 그동안 미스터리를 자칭하는 여러 작품들을 읽어보아 왔지만, 과연 이만한 작품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내게는 여러 가지 면에서 흡족함을 주기에 충분했던 상당히 괜찮았던 작품으로 기억 된다. 따라서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가 있다면 관심을 가지고 한번 읽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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