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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번 진짜 안 와
박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인생이란 생각해보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잘 진행되어지는 것 같아 이대로 행복한 순간이 마냥 이어질 것 같으면서도 어디쯤에서인가부터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하여 그것이 마침내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점점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그래서 세상이 나를 몰라주느니 시대를 잘못타고 태어났다느니 하는 하소연 섞인 푸념을 습관처럼 늘어놓게 되다가도, 문득 눈을 돌려 혹시라도 다른 방향으로 발자국을 한걸음 내딛으면 사라졌던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섞인 기대감으로 방향을 바꾸어보기도 하는 것처럼 이러한 일련의 행동의 반복이 바로 인생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의 삶도 따지고 보면 망망하고 어두운 밤바다 위에 표류해있는 작은 조각배와 같은 것이며, 그 어딘가에 자신의 길을 밝혀줄 등대의 불빛을 쫓아 한치 앞도 가늠 할 수없는 끝없는 항해의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 안에서 저마다 선택을 위한 갈림길에 서서 수없는 갈등의 시간들과 싸워야 한다. 선택한 이후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는 없겠지만 이에 대한 책임은 그 누구도 아닌 본인 스스로가 짊어져야 할 몫이며, 다만 그것이 설사 완전한 자신의 패배로 규정되어진다 하더라도 결코 좌절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그것이 새로운 방향으로 거듭나기 위한 하나의 일시적인 과정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이 작품은 우리들 중 누군가가 한번 겪었을 법한 혹은 앞으로 또 그 누구인가 겪게 될지도 모를 인생의 한 단면을 과감하고도 거침없는 문체의 형식으로, 자신의 이상과는 사뭇 다른 고리타분하고 획일적이며 추악한 사회 현실에 맞서 악전고투하는 한 젊은 청년에 삶의 일부분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당신은 오늘 무엇을 위해 살고 있고 무엇을 바라며 살고 있는지, 그래서 그렇게 선택하고 결정한 삶이 당신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조용히 되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대 후반인 책 속 주인공 고남일은 순수열정주의자를 지향하며 무한한 자유와 자신의 열정을 마구 샘솟게 해주는 롹음악에 심취해 오늘도 훌륭한 기타리스트를 꿈꾸면서, 오늘도 그 안에서 삶의 작은 행복을 맛보며 살아가는 평범한 친구다. 거창하고 화려한 삶은 아닐지라도 그럭저럭 유쾌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의 삶에, 어느 날부터인가 슬슬 일이 꼬이기 시작하더니 사랑하던 애인이 절교를 선언하면서 훌쩍 떠나버리고, 자신이 이끌고 있던 밴드는 공중분해 되는 상황을 맞이해야 했으며, 마침내는 다니던 일자리에서마저 쫓겨나는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엉망이 되는 현실 앞에 서게 된다. 한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는 점점 꼬질꼬질해지고 비참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견디지 못하게 되고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 즉흥적인 런던으로의 여행을 결심하게 된다. 아무런 계획도 대책도 없이 도착한 런던에서 막막한 나날을 보내다가 우연하게 이전에 헤어졌던 자신의 애인을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자신에게 무언가 새롭고 긍정적인 일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되지만 결과는 그의 뜻대로 되지 않고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작품 속에는 순수한 자유주의를 꿈꾸는 한 청년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모순된 구조를 은근히 비판함과 동시에, 비록 가진 것 없고 많이 배우지는 못했어도 자신의 옳다고 생각해왔던 가치관과 이념을 어느새 헌신짝처럼 버리고 사회 통념이 만들어낸 획일적이고 틀에 박힌 비굴한 삶에 무조건 맞장구치고 동의하며 살아가기보다는, 그것이 설사 자신의 목을 처참하게 죄어 온다 하더라도 때로 반항이 필요할 때는 스스로 떨쳐 일어나 반항해야 하는 것처럼 굳이 자신까지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냉정하게 거부하고 있는 듯하다. 주인공은 자신이 선택한 길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회피하지 않고 과감하게 부딪쳐 그곳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한번 꼬이면 그 매듭이 쉽게 풀리기보다 점차 더 엉망으로 꼬여가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안쓰럽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자기 자신에게로 향한 무한한 애정을 보이며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보는 그의 긍정적인 측면은 비겁하게 살아가는 다른 어떤 이의 삶보다 훨씬 아름답게 느껴진다.
사람마다 주어진 자신의 운명은 애초 조금씩 각기 다를지라도 인생을 꾸미고 가꾸어 나가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행복이라는 목표로 귀결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대체적으로 모두 비슷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했던 삶의 방법이 비록 아무리 많은 시간을 들여 신중에 신중을 기한 최선의 것이었다고 해도 그것이 행복하고는 거리가 먼, 혹은 새로운 발판을 위한 기회가 되지 않고 때로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자신을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 어이없는 것일 수도 있으며, 또는 독이 묻은 화살의 촉수가 되어 자신의 영혼의 갉아 먹는 고통스런 아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명 그것이 우리 인생의 전부는 아니며 끝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언젠가는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한 어딘가에는 있을 그 무엇을 위해 지금의 좌절이 잠시 내게 온 것이라고 가정해보면서, 이 책 주인공이 언제 올지 모를 15번 버스를 기다리는 것처럼 기다림 속의 미학을 한번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