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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1 - 미천왕, 도망자 을불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 우리의 역사 내용을 사실적이면서도 재미있게 다룬 책을 접해야지 하면서도 내게 있어서 그 동안 많은 망설임과 주저함이 있었던 것은, 행여 사료에서 벗어난 단지 흥미만을 끌기 위한 것이거나 사실을 다소 왜곡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 아닐까 싶어 한동안 멀리 했었다가, 최근 이 책을 통해 일단 그러한 우려감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하여 반갑게 느껴진 작품이 아닌가 싶고, 우리 고구려 역사의 그 세부적인 내용을 소설의 형태로 박진감이 넘치면서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어 독자의 입장에서 책에 쉽게 몰입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근래에 보기 드문 좋은 작품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 동안 우리가 역사 교과서에서 배웠듯이 삼국시대 중 우리가 고구려 하면 문득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유려하고 부드러운 그런 이미지 보다는 웅장하고 진취적인 기상 같은 힘이 느껴진다는 것인데, 그것은 아마도 지리적인 위치관계로 인한 이민족과의 수없는 투쟁의 역사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일종의 근성 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이유에서 인지 몰라도 이 책의 내용 역시도 그러한 특색을 작품 속에 잘 살려내지 않았나 싶다. 저자가 이 책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그동안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우리의 고대 역사내용을 토대로 하여 심층적으로 다루었던 국내 문학 작품이 전무했다는 것이 독자의 입장에서 정말 아쉬웠던 점인데, 이제라도 이런 작품을 통하여 우리 선조의 숨결을 간접적으로 느끼면서 그들의 발자취를 되돌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본다.
이 작품은 고구려의 700년 제국의 역사 중에서 15대 군주를 지냈던 미천왕 을불의 일대기를 역사자료에 근거하여 저자가 만들어낸 탄탄한 짜임새에 의한 극적인 요소들이 조화롭게 잘 이루어져 있어 마치 독자가 한편의 대하 역사사극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게 할 만큼 대단한 역작으로 보여 진다. 고구려 13대 서천왕의 손자이며, 돌고의 아들이었던 미천왕은 자신의 아버지가 장자계승원칙에 따라 왕위에 오른 그의 형 봉상왕의 폭정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뒤, 이후 그 여파가 자신에게까지 이르자 한때 아버지의 충직한 부하였다가 지금은 국왕의 책사가 된 창조리의 조언을 듣고 궁궐을 도망쳐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저가라는 어느 부호의 집에서 기거하면서 그 곳에서 자신의 안위를 돌보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를 잡기 위해 시시각각으로 죄어오는 여러 눈길 때문에 그는 어느 한곳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했고, 그러한 이유로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는 과정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따랐던 일부 추종세력들과 개인적인 인연으로 여노라는 친구와 고구려 출신으로 낙랑에서 큰 부자가 된 주태명이라는 상인을 만나면서 그들의 도움으로 이를 지렛대로 삼아 도탄에 빠져 정치 경제적으로 망국의 지름길에 들어선 자신과 아버지의 조국인 고구려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 그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하는데 골똘하게 된다.
이 소설의 전개 방식을 보면 등장인물이나 시대적 배경의 장황한 묘사에 치중을 두기 보다는 상황 설정에 의한 사건 중심의 빠르고 간결한 문체를 바탕으로 그 구성의 단계가 역동적으로 펼쳐져 있는데다가, 그 내용이 매우 흥미롭고 긴장감 있게 진행되고 있어서 어느 독자가 보더라도 책으로 몰입에 쉽게 빠져들게 하는 상당한 흡인력을 지닌 작품으로 보여 진다. 따라서 그 동안 중국의 삼국지나 일본의 대망과 같은 소설에서 재미를 느낀 독자가 있다면 그것과 비교해서 한번 관심 있게 봐두면 좋지 않을까 싶고, 설사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책을 통해 우리의 고대 역사의 주요한 부분이었던 고구려의 그 시대적 상황을 상세하게 살펴보면서 우리가 잠시나마 잊고 지냈던 자주적인 역사 인식을 우리의 가슴 속에 다시 한 번 일깨우고 그리하여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존재 가치를 과연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자각의 시간을 제공해주고 있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나름대로의 독자들에게 충분한 의미가 되고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요즈음 우리의 사회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 심각하게 불거져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의 원인은 바로 우리의 역사 인식의 부재에서 모두 기인하는데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따라서 산둥이북과 요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고구려의 광활한 영토 확장에 그 시발점이 되었던 미천왕의 시대를 흥미진진하게 엮어나간 이 책의 내용을 따라 그 당시 활약했던 여러 인물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면서 생생한 우리 역사의 그 현장을 저자와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답사해 봄은 어떤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