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1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1
퍼트리샤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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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미스터리와 관련한 여러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 중 하나는 사건을 풀어나가는 그 대상들이 대체적으로 명탐정에 비견할 만한 어느 형사에 주로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복잡하게 얽힌 사건의 상황을 논리적으로 풀어가며 범인이 장치해놓은 교묘한 트릭의 함정을 한 꺼풀씩 걷어 내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의 과정을 지나, 최종적으로는 하나의 작은 단서에서 명쾌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이야기의 전개에서 우리는 추리라는 장르의 영역을 통해 독서의 즐거움을 충분히 맛보았던 것 같다. 계절이나 어떤 유행에도 상관없이 여전이 줄기차게 출간되어 독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여러 추리 소설 중에서, 이 책이 나에게 눈길을 끌게 만든 것은 이제껏 보아왔던 사건과 관련하여 그 해결의 주체가 형사의 시각이 아닌 법의관의 입장에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조금은 의외이기도 했고, 이에 따라 사건의 전개부분에 있어 범죄에 대한 다양하고도 심층적인 이야기가 펼쳐져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즈음의 수사기법은 예전처럼 끼워 맞추기식의 주먹구구적인 형태가 아닌 TV 드라마에서 나오는 CSI의 수사방식처럼 철저하고도 과학적인 근거에 따라 증거물을 제시하여 범인을 가려내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다. 또한 시대가 변하면서 오늘날 벌어지는 일련의 범죄의 행위가 점차 치밀해지고 계획화 되어가는 점에서 범죄 심리분석가인 프로파일러의 양성이나 혹은 범죄의 현장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는 법의학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이 날로 높아졌음을 볼 때, 이 책은 그러한 관점에서 독자들에게 추리에 대한 신선하고도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으며, 내용의 접근에 있어서도 기존의 추리소설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짜릿하고 환상적인 스릴러는 물론이고 현대 과학 수사의 다양한 기법들을 간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어서 이러한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권할만한 좋은 작품이라 여겨진다.

책을 펴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지만 이 책이 외국에서 크게 호평 받았다는 것 외에도 개인적으로 작가에 대한 적잖은 호감을 주었던 이 작품은, 법의학자인 스카페터라는 한 여성의 시각을 중심으로 연쇄 살인범을 추적해 가는 과정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는 다소 독특한 작품이다. 그녀는 미국 버지니아 주의 신임 법의국장으로 자신의 법의학적 업무와 관련하여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섬세하고도 치밀하게 수행해가는 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인데, 그런 그녀 앞에 최근 혼자 사는 독신 여성들을 상대로 벌이는 연쇄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죽은 시체의 상태로 보아 동일인으로 보이는 이 사건은 범행수법이 잔인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범행현장에서의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으며 검시 과정에서도 특이한 점을 찾지 못하면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는커녕 점점 미궁으로 빠지는 결과를 낳고 만다. 한편 다음 피해대상자가 누구일지 알 수 없는 의문의 연쇄살인이 신문과 방송으로 보도 되면서 불안함을 느낀 시민들은 경찰의 치안에 문제점을 두고 압박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고, 시 당국은 그 불안을 증폭시키는 원인을 법의국에 초점을 맞추면서 스카페타는 위기에 몰리게 되는데, 급기야는 최우선적인 보안으로 유지되어야 할 법의국내의 컴퓨터 시스템에 누군가에 의해 정보를 빼내기 위한 해킹의 흔적이 발견됨으로서 사건은 또 다른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또한 책 속에는 주인공인 스카페타 외에 형사부장인 마리노 형사와 FBI 심리분석관인 벤턴이라는 인물이 등장 하는데, 이들은 각기의 영역에서 때로는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 협력하면서 범인의 행방을 쫒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책 속으로 몰입을 돕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이 다른 어떤 추리물과 비교해서 흥미로운 점은 예를 들어 여타의 추리 작품들이 하나의 사건을 둘러싸고 트릭과 반전의 과정을 통해 논리적인 최종적 해결에 도달하는 식의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다루어졌다고 보면, 이 작품은 그와는 좀 더 다른 관점에서 다양한 전개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연쇄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다른 어떠한 증거물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범죄의 원인은 과연 어디에 있으며, 범인은 무슨 근거로 이러한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고, 어떠한 방법으로 범죄자를 찾을 것인가에 대해 사건과 관련한 여러 가지의 시각들이 재미있게 연결되어져 있는 점이다. 등장인물에서 보듯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주인공 스카페타의 법의학에 근거한 과학적인 시각이 존재하며, 범죄 심리학자인 벤턴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범죄자의 심리학적인 측면과 그리고 범죄와 관련하여 주변 현장을 직접 탐문함으로서 사건을 해결하려는 마리노 형사의 이야기 등 세 가지의 과정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하나의 사건을 두고 여러 가지 상황을 설정한 저자의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작품에는 안개처럼 희미하게 가려져 있는 미스터리 또한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스릴적인 내용과 인물들의 심리적인 묘사가 섬세하게 잘 나타나 있어 추리물을 좋아 하는 독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큰 즐거움을 주지만 기존의 작품에서 흔히 등장하는 반전의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그러나 독자들로 하여금 단 한순간도 허점을 드러내지 않을 만큼 극적인 장면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는데다가 법의학과 과학수사의 요점들이 흥미롭게 펼쳐져 있어서 독자들에게 충분한 재미를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어서 관심 있는 독자들이 있다면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해보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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