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 백
슬라보미르 라비치 지음, 권현민 옮김 / 스크린셀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국내에 개봉되는 영화 중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간혹 관객들에게 지면에 올리기에는 다소 거북할 정도의 혹평을 받는 경우가 있음을 본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중성을 위해 재미를 극대화 한다는 측면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원작이 담고 있는 등장인물이나 배경에 대한 섬세한 묘사 부분이 제대로 나타나 있지 않다든지, 원작이 담고 있는 내용이 상당함에도 시간적인 제한에 따라 제대로 된 감동을 느끼지 못하게 될 때가 아닌가 싶다. 얼핏 생각해보면 대개는 시각적인 극대화를 주는 영화에서 더 감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영화에서 보는 느낌보다는 원작을 통해 받아들여지는 감동이 의외로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작품 역시 원작에 대한 영화가 이미 예정되어 있지만 이 책의 내용이 자유에 대한 무한한 갈망을 그린 실화라는 것과 그런 연유로 등장인물들의 내면적인 심리부분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며, 죽음을 무릅쓴 진정한 용기를 통한 인간 승리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영화가 이를 얼마나 잘 표현해 줄지 모르겠지만 기나긴 대장정 속에 펼쳐지는 다양한 줄거리의 전개 내용을 볼 때 원작에서 이를 감상하는 것이 좀 더 좋지 않겠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극한의 상황에서도 생사를 넘나드는 탈출의 스릴 넘치는 과정이 잘 묘사된 쇼생크 탈출이나 빠삐용과 같은 죄수들의 탈옥에 관한 작품들은 통해서, 아마도 많은 독자들은 그 안에서 적잖은 감동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이 작품은 숨 막히는 탈옥의 과정을 넘어 처참하고 고통스런 상황이 지속되는 순간에도 결코 좌절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자신의 조국을 찾아 나서는 생존을 위한 인간의 의지가 아름답게 승화되어 있어서, 가슴 뭉클한 감동은 물론이고 경이로운 기적을 일으킨 인간의 위대한 모습을 많은 독자들이 생생하게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이 작품은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재산 피해와 인명을 앗아간 2차 대전의 초기, 즉 독일이 폴란드의 서쪽 침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련이 그 동쪽을 무력으로 밀고 들어가면서 소련의 지배체제하에 놓인 폴란드의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주인공 슬라보미리는 자신의 조국을 지키기 위해 2차 대전에 장교로 참전하여 귀향했다가 며칠 후 소련의 첩보기관으로부터 독일과 내통한 간첩으로 오인 받아 체포되면서 모스코바의 형무소에서 온갖 고문에 당한 채, 재판에서 25년형을 언도 받고 시베리아 수용소로 이송되어 진다. 그는 열차에 실려 이송되었는데 도중 중간에 문제가 생기면서, 추위에 그대로 노출 되어 쇠사슬에 묶인 채 도보로 천육백 킬로미터라는 머나먼 길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동료들이 하나둘씩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든 자신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키우는 계기를 얻게 된다. 수용소에 도착해 힘든 노역을 하면서 그는 매일같이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억울하게 자신의 일생을 평생 수용소에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탈옥을 결심 하게 되는데, 마침내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다른 동료 6명과 야밤의 느슨한 경계를 틈타 생사를 건 수용소 탈출을 감행하게 된다. 그들은 무사히 탈옥에 성공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그들 앞에 놓인 것은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이라는 고통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극한의 상황에 처해있으면서도 비록 불투명하지만 희망이라는 한 가닥 실낱같은 꿈을 결코 버리지 않고 생존을 향한 본격적인 모험에 나서게 된다.

전쟁이라는 소용돌이 속에 소련의 지배체제하에 놓인 뒤 아무런 이유 없이 체포되어 비굴하고 치욕스런 수용소의 무의미한 삶에 과감하게 맞서, 자유와 생존을 향한 한 인간의 애절하고도 극한의 투쟁적인 모습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이 작품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많은 교훈적 이야기는 물론 많은 독자들에게 가슴 벅찬 감동을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또한 탈옥 기간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하기로 맹세했던 동료 3명을 잃으면서도 오로지 자신의 조국을 찾아 가겠다는 일념하나로 단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고, 고비사막과 히말라야의 험난한 고봉을 넘으며 11개월 동안 6500 킬로미터의 대장정을 마친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은 작은 상처에도 쉽게 의지를 꺾고 마는 나약한 우리의 그것과 비추어 볼 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하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생각이 든 것은 우리 인간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는 아마도 힘들고 고통스런 극한의 과정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으면서 진정한 용기를 가지고 이를 실천할 때가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실로 오랜만에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했던 이 작품은 저자가 직접 경험한 실화의 내용이 바탕이 되어서 인지 몰라도 그 고통과 아픔의 정도가 다른 어떤 작품보다 가슴 깊이 다가온 듯하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일종의 경외감까지를 느끼게 하는 이 작품이 앞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즐거운 독서의 시간은 물론 무한한 감동의 도가니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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