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베이커 자서전 : 성장
러셀 베이커 지음, 송제훈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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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른들로부터 흔히 듣는 말 중 하나는 자신에 인생 역경의 과정을 책으로 쓰면 아마 몇 권 정도는 족히 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즉 이 말은 아마도 우리의 인생사가 그리 만만치 않은 험난한 과정의 연속임을 증명시켜주는 대다수 사람들의 실질적인 증언이라고 간주해도 별 무리는 없을 듯싶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이 보는 각도에 따라서 길다고 생각 하면 길 것이고 짧다고 생각하면 짧게 여겨지겠지만, 그 안에 구성되어 있는 자신의 삶의 과정을 반추해 보노라면 처절하고도 고독한 몸부림에도 희망을 추구하려는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은 분명 존재해 있었을 것이고, 때로 삶의 무게에 고통스럽게 짓눌린 채 망연자실한 스스로의 모습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멋지게 살아온 인생도 돌이켜 보면 회한의 순간은 어느 정도 있게 마련이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야말로 초라한 인생을 설사 살아왔다 해도 몇 번이고 다시 머릿속에 되뇌고 싶을 만큼 가슴 속이 뭉클하고 행복했던 소중한 추억의 장면들은 누구나 공통적으로 조금은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목적에 가치가 있고 없고의 판단을 떠나서 주어진 환경에 자신을 얼마만큼 제대로 적응해 갈수 있는지를 끝없이 시험하며 이를 어떻게 극복해갈지에 대한 자신과의 혹독한 투쟁의 과정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일련의 시간 속에 일부는 어쩌다보니 낙오자라는 누명 아닌 누명의 테두리를 가슴에 달고 인생의 끝자락에 와있으며 더러 일부는 행운인지 노력인지 알듯 말듯 모호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게 본받을 만한 성취자로의 표본으로 남기도 한다. 그러나 윤동주 시인이 노래했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시의 내용처럼 스스로를 돌아다 본 솔직한 자신의 인생이 진정 아름다운 생이었는지는 아니었는지는 어느 때고 한번 깊이 생각해 볼일이다.

이름을 말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 인사의 자서전을 더러 읽기는 했어도 이처럼 나에게는 무척이나 생소한 어느 한 인물에 대한 자서전을 읽기는 사실 처음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 읽기를 원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단순하고 편협적인 생각일지는 모르겠으나, 이 자서전이 1982년 미국의 권위 있는 퓰리처상을 거머쥐었다는 이유와 도대체 어떤 근거를 토대로 이 자서전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게 되었는지 그리고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 자서전이란 인물의 비중이 크게 좌우할 듯싶음에도 불구하고 그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것 같은 조금은 특이한 자서전이 아닐까 생각되는 일종의 호기심이 가미된 내 개인적 판단에서다. 이 책의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본다면 우리가 흔히 자서전 하면 생각 할 수 있는 보통의 다른 어떤 위인들의 자서전에 비해 내용에서 상당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다른 그 무엇보다 큰 특징이라 할 수 있겠고, 자서전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어렵고 힘든 고통의 과정을 강제적이고 일방적으로 주입 시키려는 외부적인 힘이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는데 있다.

젖먹이의 시절을 이제 막 떼고 한창 천진난만하게 뛰어놀 나이에 집안의 기둥이 되었던 아버지를 여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의 어린 시절은 최악의 대공황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던 시기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어린 나이에도 거리로 나가 신문을 팔아야 했던 불우한 배경은 청소년기를 지나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어떤 일에도 적극적이며 교육열이 강했던 어머니와 달리 소극적이며 자신감이 적었던 저자는 자라면서 주변 인척들에게서 삶의 교훈을 조금씩 배워가며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야함을 깨닫게 된다. 문학을 좋아했지만 문학에 빠져들기에는 거리가 먼 불편한 현실의 삶을 살아야 했고, 어려운 집안 환경으로 어렵사리 우여곡절 끝에 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까지의 과정과 순진하고 숫기가 별로 없었던 그의 젊은 시절, 만남과 이별의 반복과정을 거치며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그의 결혼에 관한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잔잔한 미소를 잃지 않게 만드는 우리들의 삶과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는 어떤 동질감을 유발하고 있는 듯하다. 치매를 앓고 요양소에서 남은여생을 보내고 있는 어머니의 병문안을 시작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마치 한 편의 전원적인 어느 조그만 시골마을의 영상을 세밀하게 그려가듯 담담하게 써내려간 이 자서전은 희극 안에 비극적인 요소를 비극 안에 희극적인 요소를 동시에 담고 있는 듯해서 한 인물의 전기를 읽으면서도 독자가 책을 읽는 내내 전혀 불편함을 느끼게 만들지 않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본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성장과정이나 사춘기를 벗어나 성인의 시기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사회인으로서 남들에 비해 크게 두각을 나타낼 만한 어떤 극적인 성취의 과정이나 이를 본받을 만한 어떤 교훈적인 내용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려 하기보다는, 누구나 성장과정에서 한두 번 쯤은 겪을 수 있는 가슴 아픈 순간이나 심각한 갈등의 국면에서도 인위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 사실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표현하여 마치 독자가 저자의 성장 과정을 옆에서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이야기의 전개 방식을 취하고 있는듯해 보인다. 게다가 글을 읽는 독자가 자칫 자신도 모르게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그 어떤 부담감도 가급적 배제시켜주고 있어서 책을 읽는 즐거움은 물론 그 속에서 느껴지는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서서히 가슴 가득 밀려들게 하여 이야기 속으로 독자가 저절로 동화되어 가는 보이지 않는 매력이 이 책속에 짙게 배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의 삶도 그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 살아온 인생의 길은 다를지언정 그 자체로 의미 없는 삶을 살아 간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볼 것은 언젠가 자신의 생을 돌아다보았을 때 이 책의 주인공처럼 객관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모두 외부로 드러냈을 때라도 타인으로부터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는 극히 자연스러운 삶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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